아름다운 퇴장

                                                                                           이 옥 란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미술 선생님이 정년 퇴임식을 가졌다.

행사는 학교 가까운 백화점 내 갤러리에서 치뤄졌다. 정년 퇴임식은 대개 큰 연회석을 빌리거나 학교에서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번 미술 선생님의 정년 퇴임식은 좀 색달랐다.

호가 소한인 미술 선생님은 평교사로서 정년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전시회 준비로 바쁜 중에도 교단을 떠나는 날까지 더욱 열심히 수업에 임하셨다. 머리가 하얗게 세어서 신선이니 도사니 하는 별명을 갖고 있었고, 늘 웃음 띤 동안에다가 소탈한 성품을 지닌 분이었다. 국악이나 다른 예술행사에도 관심을 가지고 동료 교사가 참가할 때면 그 행사를 비디오 카메라에 담아주기도 했다. 참 멋있게 사는 분이어서 늘 호감을 갖고 있었는데, 벌써 학교를 떠난다니 무척 섭섭했다.

나는 행사장으로 가는 길에 정년을 맞은 그 선생님께 뭐라고 인사말을 삼아야 하는 게 좋을까 하고 저으기 고민이 되었다.

입구에는 다섯 번째 소한 선생님의 작품전이라고 입간판이 서 있었고, 들어서자마자 비상하는 새의 얼음 조각이 인상깊게 우리를 맞이했다. 선생님께 뭐라고 분명한 말로 인사를 하지 못한 채 그저 평소에 그분을 대하듯이 반갑다는 표정만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행사가 시작되어 정년 퇴임식의 축사를 맡은 교장 선생님은 그 첫 마디에 내가 조금 전에 걱정했던 그 인사말에 대해 언급했다.

소한 선생님이 교직에 몸담아 정년까지 일해 온 것은 본인의 축복이고, 뒤이은 후배 교사에게도 귀감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소한 선생이 건강하였기에 가능했고, 또 교직에 보람을 느꼈기에 정년을 맞을 수 있었으므로 당연히 축하의 말을 드리는 것이 옳다고 했다. 게다가 마지막까지 개인 전시회를 열어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덧붙였다. 건강하게 정년까지 일해 왔다면 그 자체만으로 그것은 이미 성공한 삶이며, 축하를 받을 일이라는 그 말이 내게 깊은 공감을 주었다.

나는 정년 퇴임식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정년 퇴임을 맞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자꾸 생각났다. 아버지는 반 년 전에 돌아가셨다. 정년을 이 년 앞두고서. 평소 건강하셔서 정년은 문제없이 맞이할 줄로만 알았는데, 암 수술 후 아버지가 아픈 몸을 이끌고 몸담은 학교에서 사직 인사를 함으로써, 건강하게 정년을 맞이하는 바람은 접어야 했던 것이다. 발병을 해서 수술하고 눈 감기까지 꼭 일 년. 나는 마지막까지 아버지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견딜 수 없을 정도의 통증 속에서도 의식은 끝까지 또렷이 남아 당신의 모습과 우리의 모습을 낱낱이 지켜보셨다. 통증을 겪는 모습이 너무도 안쓰러워 차라리 혼수상태에라도 빠졌으면 싶었지만, 아버지는 꼿꼿하고 단정함을 결코 잃지 않으셨다. 특히 아버지가 남긴 일기장과 가족의 이력과 제반 행사의 기록 등 새로 꼼꼼히 정서를 해서 정리해 둔 책을 나중에 읽어 보았다. 아버지는 혼자서 생을 정리하고 계셨으나, 우리는 보내는 준비를 제대로 못해 드린 것 같다. 아버지의 눈엔 그런 우리가 어떻게 비쳐졌을까. 나는 아직도 아버지를 떠올릴 때면 인생의 그림을 못다 그린 채 떠나신 것만 같아 가슴이 아프다.

비록 아버지는 짧게 사시다 가셨지만 아버지의 뒷모습은 참으로 단아했다. 평생을 그러하셨듯이 욕심 없는 자세, 깔끔하고 빈틈없이 정리하신 모습, 남은 가족들의 어설픈 병구완에도 언짢은 기색 한 번 내지 않고 고마워하셨고, 끝까지 가족에게 예의를 지키셨던 점. 무엇보다도 찾아온 집안 친척들을 먼저 용서하시고 얽히고 설킨 매듭을 모두 풀어주고 가신 점이다.

친척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죽음이 친척들 간에 화합을 이루고 가기도 하고 불화를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는데, 큰아버지는 정말 모두를 하나되게 하고 가셨다”고.

내게 아버지의 뒷모습은 가신 그날의 날씨처럼 맑고 깨끗한 모습으로 내 가슴에 남아 있다.

그렇게 아버지를 잃고 보니, 오늘 소한 선생님의 퇴임식 자리가 참으로 값지게 보였다. 정년 퇴임만으로도 위대한 업적인데, 소한 선생님은 우리에게 그 떠남의 아름다움까지 보여 주고 있었다. 선생님은 곧 중국 여행을 할 것이고, 시간에 쫓겨 하지 못했던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겠다고 답사를 통해 밝혔다. 그리고 특히 본인이 아직도 건강하다는 것과 계속 일하는 모습을 기억하게 하고 떠날 수 있어서 기쁘다고 했다.

정년을 새로운 시작이라고 하듯이, 소한 선생님의 정년 퇴임은 새로운 시작이었다. 가고 싶은 곳으로 훌훌 떠나 그리고 싶은 그림을 정열적으로 그릴 것이고, 다음 개인전에는 또 우리들에게 전시회의 초대장을 보내올 것이다.

정작 떠나는 사람은 얼굴이 밝은데, 오히려 보내는 사람들의 얼굴은 갑자기 무거워졌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 오히려 보내는 사람들은 무작정 달려만 온 삶을 돌아보기 시작한 것 같았다.

누구나 떠나는 순간이 있다. 힘을 다하여 세상을 떠나든, 오랜 직장을 떠나든 간에 자신의 뒷모습을 보일 때는 평생의 이력이 새겨지는 순간이 아닌가 싶다. 모든 정신력과 인품과 업적은 훗날 우리가 떠날 때에 평가받는 것이 아닐까.

떠나는 순간은 그 사람 생전의 모습 전부를 말해 주는 순간이기도 하고, 보내는 사람들의 자세로 그 사람의 평가를 볼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한 것이다.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그 사람 평생의 작품이기도 하리라.

전시장에는 소한 선생님의 아름다운 뒷모습 같은 그의 작품이 가득 빛나고 있었다. 직장 일과 취미활동을 똑같이 아름다움 작품으로 이루어낸 소한 선생님은 시종일관 웃음이 얼굴에 가득했다. 그 웃음은 그림의 색채처럼 마냥 부드럽고, 선생님의 눈빛은 동양화의 여백처럼 많은 미래를 품고 있었다.

나는 전시장을 한 바퀴 돌면서 동양화 같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