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동물

                                                                                       李 京 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아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토끼 한 마리를 사달라고 조른다. 아파트 상가 앞 가게에서 토끼를 판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강아지이더니, 햄스터에서 병아리로, 이젠 토끼이다. 이번엔 사달라고 조르는 폼새로 보아 쉽게 포기할 것 같지 않다.

나는 늘 잘 써먹는 수법대로 아파트에서 동물을 키우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고, 동물의 대소변과 털들이 어린아이들에게 얼마나 나쁜가를 열심히 설명했지만, 영 막무가내이다. 아파트가 안 되면 단독 주택으로 이사를 가면 될 것이고, 또 다른 사람들은 잘만 키우는데 왜 엄마만 매번 안 된다고 그러냐며 조목조목 따진다. 아이는 자기도 동물을 키우면서 사랑할 권리가 있고, 엄마는 동물을 키우는 걸 싫어하니 나쁜 사람이라는 등 별소리를 다하더니 눈물까지 글썽인다. 자식 앞에 약한 게 부모라더니 약간 측은한 생각마저 든다.

내가 아들 아이 나이였던 때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밥상 위에 닭백숙이 놓여 있었다. 배고플 텐데 얼른 먹으라는 어머니의 말에 닭다리를 하나 집어들었다. 그런데 한 입 베어먹다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집마당을 돌아보며 우리 집 닭이 왜 안보이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오늘 우리 닭을 잡은 것이라며 태연하게 말하였다. 같이 먹던 남동생과 나는 동시에 눈이 마주치면서 후다닥 마당 한가운데 있는 세수간으로 갔다. 신물이 올라올 때까지 우리 둘은 토악질을 했다. 그리고는 어떻게 우리 집 닭을 잡아먹을 수가 있냐며 어머니께 대들었다.

그때 처음으로 사람이란 참으로 잔인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모이를 주고 병아리일 때부터 쭉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가족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식인종이 아닌 다음에야 어찌 그럴 수가 있을까 하였다. 정말로 그 순간만큼은 그런 말을 하는 어머니가 미워서 심지어는 우리 어머니가 아니길 바랐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한동안 닭요리를 잘 못 먹었다. ‘우리 닭’이라고 한 어머니의 말이 목에 가시처럼 걸려 있어서 잘 넘어 가질 않았다. 지금은 먹긴 하여도 백숙 요리만 보면 그때 생각이 나서인지 소화가 잘 안 된다. 아직도 내게는 마당에서 왔다갔다하던 닭과 밥상 위에 죽어 있던 닭 ─ 삶과 죽음의 두 장면이 서로 겹쳐져 마음 속에 남아 있다.

한번은 아이들 등쌀에 청거북이 3마리를 키운 적이 있다. 작긴 해도 커 가는 모습이 귀여워 네 식구가 나갔다 들어오기만 하면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처음부터 약간 비실비실하던 한 마리가 죽었다. 그 빈자리가 어찌나 서운한지 얼른 새로 사다 집어넣었다. 그렇게 2년을 키우자, 제법 커져 집에서 키우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시어른 말씀대로 밥과 나물을 만들어 가지고 이른 새벽 거북이 기원제를 한 뒤 호수에 풀어 주었다. 좁은 데에서 살던 놈들이라 넓은 호수에서 헤엄이나 잘 칠까 하는 우려와는 달리 유유히 앞으로 나아갔다. 답답한 감옥 속에서 자유의 세상을 만난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것을 보며 죽이지 않고 이렇게 놓아주게 된 것이 너무나 다행스러워 돌아오는 길에 속이 다 후련했다. 다시는 애완동물을 키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이라 한다. 사실 부모라면 누구든 자식에 대한 정과 집착, 걱정이 없을 수는 없다. 아무리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고 독립된 존재니 뭐니 하여도, 죽을 때까지 눈에서 마음에서 못 떼는 것이 부모의 심정일 것이다. 나는 때로 자식에 대한 이런 끊어지지 않는 집착이 힘에 겨워 다 던져 버리고, 어디 산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하물며 애완동물까지 키워 마음에 부담을 안고 싶질 않다.

이런 내가 너무 이기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애완동물을 키우며 즐거워하는 마음보다, 잘못되었을 때의 죽음의 고통과 이별 등을 견뎌낼 자신이 내게는 별로 없다. 만남의 기쁨보다는 만남 뒤의 이별의 긴 그림자를 생각하면 애초에 시작을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생명은 언젠가는 죽게 되어 있다. 이런 죽음을 보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인간에게 없다. 사람이 살면서 무엇이든 간에 마음을 주지 않고 산다는 것이 힘들지만, 마음은 나누고 살되 소유욕으로 집착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 범위만이라도 줄여야 한다. 이게 내가 애완동물을 멀리하는 나의 궁색한 변(辯)이다.

하지만 훗날 이런 집착이나 죽음의 두려운 그림자마저 이마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을 때가 오면 나도 강아지 한 마리 정도는 키워볼 엄두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경은

‘56년 서울생. 숙대 중문과 졸업.

SBS 드라마 극본 공모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