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회 추천-

 수 필 

                                                                        한 원 준

 친구녀석이 그제 저녁에 찾아와 이야기 끝에 가장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수필을 하나 써보라고 했다. 나는 웃었다. 굳이 이유가 있어서 웃은 것은 아니었지만 녀석은 그 웃음을 장담으로 생각하고 술내기를 제안했고, 나는 너무 쉬운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난 그림처럼 아름다워서 읽으면 눈물이 나거나 아름다움에 한숨이 나올 수필을 쓰기 위해 앉아 있었다. 어제 저녁부터 비좁은 방안을 맴돌고, 현관에 나가 별을 바라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가장들의 환한 얼굴과 시름겨운 얼굴과 피곤에 지친 얼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기도 했건만 얻어낼 것은 없었다.

백과사전을 들춰보았고 책을 꺼내 읽었다. 그래서 내가 아는 버섯에 대해 몇 줄을 써 내려가다가 멈추고, 황어와 연어의 귀향, 그 처절한 종족 보존의 본능에 대해, 그리고 볼 수도 없는 새끼들에 대해 다시 몇 줄을 써 내려가다가 멈췄다.

아주 아름다운 그림처럼.

그러나 그것만이 머리 속에 맴돌 뿐 실제 수필은 한 줄도 써 내려가지 못했다.

‘내 낡은 머그 잔에서 커피가 향기를 풍기고’, 또 ‘별이 가득한 밤 정원에 젖은 풀로 모깃불을 피워 올리면, 나는 연기가 매워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더 이상 펜은 나가지 않았다. 그저 이해할 수 없는 도형만이 그려졌을 뿐이었다.

소년의 한 방울 눈물처럼 순결한.

어린 날 읽었던 동화를 지금 다시 읽는 것처럼 어리고 허황된 이야기여도 좋았다. 나는 매달리듯 내 주변의 모든 것을 떠올렸다. 늙은 내 아버지의 거친 손과 시장 바닥에 쪼그려 앉은 나물장수 할머니의 퀭한 눈, 동네 어귀에 마지막 남은 대장간의 대장장이. 그리고 땀으로 번질거리는 그의 가슴, 하지만 손가락을 만년필의 잉크로 더럽힌 것밖에는 한 짓이라고는 없었다.

너무 아름다워서 서러운.

마치 연극대사를 외우듯 계속해 중얼거리며 목이 아리도록 담배만 피워댔다. 그러나 밤이 깊어도 귀뚜라미는 울지 않았고, 창을 열고 내려다 봐도 달맞이꽃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웃을, 꽃과 노래를, 그리고 세상과 자연까지도 원망하는 나는 한 편의 어리숙한 수필도 써지지 않는 것이 내 탓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눈물이 나도록 아름다운.

새벽녘, 이웃집 아기의 울음소리에 놀라 깬 나는 다시 펜을 들었지만, 애꿎은 종이만 구겨 버렸다. 그러나 그것으로 종이 장미를 접고, 종이 학을 접고, 종이 거북이를 접었다. 그래도 친구가 말하던 아름다운 수필은 써지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과 어울려 웃지도 못하고 혼자 버티고 앉아 있는 시간들만 억울해졌다. 그래도 포기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새벽이 다가오는 산을 바라보다가 할아버지께 드릴 약숫물을 뜨러 가는 어린아이를 보았다. 나를 향해 웃어 주는 아이의 웃음이 너무 맑아 어지러워졌다. 나는 아이가 무안해 할 만큼 굳은 얼굴로 아이를 바라보고는 이내 고개를 돌려 버렸다. 너무도 해맑아 두려운 아이를 피해 달아난 나는, 아이에게 화난 듯 찌꺼기로 남은 식은 김치찌개로 아침을 먹으며 소주로 반주를 했다.

그 아름다움에 죽고 싶을 만큼.

한 줄도 글로 만들지 못한 채, 허풍 같은 자존심으로 가슴만 부푼 채, 이제는 술로 머리 속까지 오염되어 흐릿한 정신으로 책상에 앉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잠도 들지 못하고 깨어나지도 못한 채 공연히 대상도 없이 화를 내다가 술로 어지러운 몸을 깨우기 위해 샤워를 했다. 면도를 하다가 턱에 두 번 핏자국을 만들고, 아름다운 것을 찾기 위해 길로 나서려다가 밝은 햇빛에 창피해졌다.

너무 아름다워서 울고 싶은.

그래서 세상에 하나뿐인 내가 아니면 쓰지도 쓸 수도 없는 그런…….

스스로 삶에 열심인 사람들의 삶을 비웃음으로 바라보며, 두어 발을 옮기다가 쓸데없이 유치하기만 한 스스로의 행동에 한숨을 짓고 난 다시 좁고 더러운 나의 방으로 돌아와야 했다. 방 한구석에 쪼그려 앉아서야 안심이 된 나는, 너무 해맑아 두려웠던, 그래서 급히 도망쳐야만 했던 아이의 환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리고 언제였던지 나 스스로도 그 아이의 웃음처럼 미소가 해맑았고, 가슴은 더욱 순결했던 때를 기억했다.

그리고 그것이 화려한 단어로 꾸며진 유치한 내 말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아 우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난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오래된 기억으로 스스로를 울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