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림 자

                                                                                             金 時 憲

 밀고 또 밀고, 나뿐 아니라 옆에 앉은 나체의 장년도 비슷한 동작이다. 어두운 곳에 때가 더 있다. 손을 밀어 넣어 비누거품을 부글부글 일으킨다. 물을 부어서 몇 번이나 씻어낸다. 그런 후에 샤워 물 꼭지 밑에 서서 또 씻어내린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물줄기 밑에서 나는 다시 태어나는 쾌감에 젖는다.

어머니 뱃속에서 처음 태어날 때도 이러했으리라. 그때는 쾌감 같은 것을 느끼지 못했다. 행복은 의식이 따라가야 행복하다고 했던가.

목욕을 마치고 세수도구를 들고 밖으로 나오면 바람이 와서 나를 끌어안는다. 아주 다정하게…….

안긴 채로 걷고 있으면 수많은 차가 지나간다. 어떤 차는 나를 거기 서 있으라는 듯이 앞질러 간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나는 항상 약자가 된다.

계속 발을 옮기고 있으면 2백 미터쯤 간 곳에 큼직한 어항이 몇 개 있다. 메기, 향어, 붕어, 은어들이 제각기 자기 통에 갇혀 헤엄을 치고 있다. 손바닥만한 바다 꺽지도 있다. 어항 속에 갇혀 있으면서도 꺽지는 자기의 위엄을 잃지 않는다. 눈을 크게 부릅뜨고 좌우를 예리하게 살피면서 지느러미를 억세게 세웠다. 죽는 날이 와도 비겁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보인다.

인간 사회에도 꺽지 같은 사람이 있다. 죄를 짓고 경찰관에 붙잡혀 가면서도 당당한 자세를 잃지 않는다. 옳아! 그래, 죽을 때 죽더라도 비겁하지는 말아야지… 하는 공감이 갈 때가 있다.

그렇게 해서 버틴다 해도 고기의 목숨은 며칠을 넘기지 못한다. 그 집은 탕집이다. 메기탕, 매운탕, 은어탕, 알탕 하는 말이 유리창에 붙어 있다. 강물에서 거기까지 왔으면서 고향에 대해서 까막이 되고 있다. 자기 집이 어디인지, 부모 형제는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차라리 그것이 편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오는 대로 오고, 사는 대로 살고, 가는 대로 가는 것, 그것이 자연 아닌가.

신호등을 건너려다 발을 멈춘다. 바로 옆 십자로에 수많은 차가 엉켜 붙어 있다. 나 먼저 가겠다고 서둘다가 머리를 맞대는 꼴이 되었다. 꼼짝도 않고 가만히 있다.

저걸 어쩌나? 보고 있는 나는 걱정인데 차 안에 앉아 있는 기사님들은 정작 태연하다. ‘어디 해 보려면 해 보아라’ 하는 표정이다. 자존심인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빵빵’ 하는 경적이 울린다. 돌아보니 어깨를 뒤로 젖힌 장년이다. 빨리 풀어 보라는 명령 같기도 하다. 누군가가 양보해야 한다. 그래야 실마리가 풀어진다.

인간이 겪는 사건에도 그런 것이 많다. 꼬이면 풀 사람이 나와야 한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고 하지만 그 실행은 어렵다.

신호등이 파란 불로 바뀐다. 나는 엉킨 차들 사이로 들어간다. 나의 권리를 찾는다는 감정도 오면서, 사이를 누벼야 하는 불쾌감도 있다.

사람이 귀중하냐 차가 귀중하냐 하는 자존심이다. 그놈의 자존심이 어디엔가 숨었다가 때가 되면 고개를 든다.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고 자신에게 많이도 타이르면서 그것이 잘 안 된다. 식욕과 성욕 같은 본능에 속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 건너간 뒤에 엉킨 차를 뒤로 하고 천천히 걷는다. 바람이 와서 다시 안아준다. 잊지 않고 찾아주는 친구와도 같다.

가슴을 펴고 하늘을 바라본다. 일요일의 아침 하늘은 평화롭다. 하늘에 평화가 있을 리 없지만 내 마음 속에 평화가 있기 때문이리라. 그 평화를 만끽한다. 모처럼 얻은 평화를 오래 가지고 싶다. 어느덧 곧 깨어지리라. 그것을 나는 안다. 알기 때문에 더욱 현재가 소중해진다.

세상은 그림자로 일렁거리고 있다. 왔다 갔다, 갔다 왔다 한다. 비어지면 곧 무엇인가가 와서 채운다. 차지 않는 공간은 한 곳도 없다. 바다에는 고기가 있고, 하늘에는 새가 있고, 땅에는 기고 걷는 동물이 있다. 그래도 남는 곳이 있으면 식물이 난다. 비가 오면 어디에 숨어 있다가 수많은 잡초가 싹을 내민다.

가고 오고, 오고 가고 제자리에 영원히 있는 것은 한 가지도 없다. 그래서 그림자처럼 일렁거리고 있다. 실체가 무엇인가? 그림자가 있자면 실체가 있어야 한다. 그것을 찾아내는 사람도 있다.

하느님, 부처님, 창조주, 에너지, 기(氣) 등 온갖 이름을 다 붙인다. 있는 것처럼 없고, 없는 것처럼 있는 것이 세상의 순환이다. 그 순환 속에서 사람도 같이 돌고 있다.

인간은 주어진 대로 살아야 한다는 진리를 나는 믿는다.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로 가느냐 따위는 묻지 말아야 한다.

콕콕 길을 쪼다가 사람이 가까이 가면 후루룩 날아서 비둘기는 지붕에 올라간다. 조금 후 다시 내려와서 길을 쫀다. 아무것도 없으면 먼 곳으로 아주 날아버린다.

그것뿐, 옛곳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기러기가 옛곳을 찾아가는 것은 그리움 때문이 아니다.

사람도 크게 보면 그렇다. 문제가 있다면 그것들을 생각하는 의식이다. 의식이 행복도 주고 불행도 준다. 그 의식을 묻어 없애려고 종교가 있다. 하느님에게 취하면 의식이 없어진다. 부처님에게 취해도 의식이 없어진다. 의식의 전체화, 그래서 나를 전체에게 맡기자는 운동이 곧 종교이다.

집으로 돌아가서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창 밖에 하늘이 트였고, 그 한 자락에 구름이 떠간다. 내가 구름이고 구름이 나이고 싶다. 그렇게 하나가 되어 둥둥 뜨는 동안 나는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