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은 싸목싸목

                                                                                          최 병 호

 “산신령 같네요.”

함께 산을 올랐던 어느 시인의 말이다. 감이 잡히지 않아 그냥 웃었다. 앞서 가는 걸 보고 따라붙으려고 기를 써도 한 구비 돌고 보면 어느새 나는 또 저만치 멀어져 있더라는 것이다. 산을 그렇게 작전하듯 빨리 걸어도 되는 것이냐고 그녀는 충고인지 칭찬인지 알 수 없는 촌평을 했다.

산신령이라? 당찮은 얘기다. 그런 역을 맡을 재간도 없지만 또 그럴만한 풍신도 못된다. 어쩌다 내 움직임이 좀 앞섰다 할지라도 그건 그녀와 나의 해찰스런 길 버릇의 차이에서 온, 말하자면 시와 산문의 거리일 것이다. 내 걸음이 그렇게 잰 편도 아니지만 그렇게 서둘 생각도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섭섭한데요.”

시인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나는 근엄한 표정으로 “만일 내가 아무개 씨와 비슷한 또래였다면 산신령이라 하지 않고 도깨비나 홍길동이라 했겠지요. 산신령으로 나를 점잖게 묶어 놓고 나로 하여금 처음부터 어떤 도깨비짓이니 길동이짓도 할 수 없도록 차단해 버리는 갸륵한 음모가 거기 있었던 거 아니오?”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니 무슨…….”

반박이 우레처럼 쏟아졌다. 재빨리 시인이 나의 걸음걸이를 데생했다. 힘은 하나도 들이지 않은 채 어쩌면 껑충대는 것 같고, 어쩌면 사뿐대는 것 같고, 뛰는 것인지 추는 것인지 좌우간 묘하게 빠르고… 웃음과 갈채가 범벅이 되었다.

문우들과의 산행은 좀 유다른 맛이 있다. 길과 계곡과 숲으로 열린, 해와 바람과 하늘로 맞닿은 푸짐한 기언(奇言), 교언(巧言)들이 한껏 생기를 북돋는다. 눈, 코, 귀, 입, 살갗, 호흡, 근력 등등이 한데 얼려 색칠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하나로 뒤섞인 그 교감, 그것은 그대로 통령(通靈)의 열쇠가 아니던가! 그 교환(交驩)이 상큼하다. 재미가 난다.

‘산은 늘 그리운, 산은 늘 너그러운 / 산은 늘 따스한 / 여인의 품, 어머니의 품 / 아버지의 품’인데, 그 품에 안겨 부질없이 서둘 까닭이 없다.

나더러 빠르다고 하지만 그것은 내가 빠른 게 아니라 시인 구름이 나보다 ‘산으로 가는 날은 내가 산을 사는 날 / 산이 나를 사는 날 / 내가 나를 사는 날’의 경지를 진지하게 엮으면서 오른 탓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나의 건성댐을 오히려 탓하지 않고 재치 있는 데생으로 폭소를 쏟게 한 것이다. 그 넉넉한 분위기가 더없이 그윽했다.

내 산행의 수습은 그 인연이 독특하다.

태평양 전쟁 말엽, 일제는 극심한 유류난 해소를 위해 식민지 초등학생들에게도 관솔을 따오게 했다. 나는 곧 신준에게 부탁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퇴비 증산을 위한 풀 모으기에 그의 도움을 톡톡히 받은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준은 한 마디로 딱 거절했다. 이런저런 실랑이 끝에 결국 산에는 데리고 가겠다는 약속을 끌어냈다.

“호야, 너 어른더러 신준이가 뭐냐.”

“장가도 안 갔다며 어른은 무슨 어른?”

“그래도 어른은 어른이여.”

“피이…….”

“관솔이고 뭐고 난 모른다.”

“예, 그럼 뭐라고 불러?”

“음~, 박 선생님이라 불러라.”

“머슴더러?”

“호야, 너는 어째 그리 모른 것이 많냐. 내가 너네 집 머슴인 것처럼 선생님은 너네 학교 머슴이여. 형편에 따라 집 머슴이 학교 머슴도 되고, 학교 머슴이 집 머슴도 되는 거여. 알것냐.”

“……?”

머쓱해진 내 모습이 딱해 보였던지 신준은 “호야, 어째 내가 너네 선생님이것냐, 아재(아저씨)라고 불러라. 일본에 있는 너네 아재하고 내가 동갑이다.” 하고 한 발 물러섰다.

나는 잠자코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러나 아쉬울 땐 신준 아재라고 불렀지만, 그렇지 않을 땐 노상 ‘신준아…’까지 소리를 내고 ‘재’ 소리는 황급히 죽이며 혀를 날름대는 망나니짓을 했다.

신준 아재를 따라 나는 몇 번인가 산엘 갔다. 마을을 벗어나 신작로를 타고 북쪽으로 가다가 바른 편으로 살짝 굽어 들길을 지나고 나면 이내 ‘바랑골’ 산길이 나온다. 제법 가파른 길이다. 숲 길이 이어지는가 하면 확 트인 바윗길이 나오고, 계곡을 가로지르기도 한 요요한 길이 끝이 없다. 새 소리, 벌레 소리, 바람 소리, 더러는 그냥 산 소리라고 여길 수밖에 없는 묘한 소리들이 오싹 가슴을 조이게도 했다.

신준 아재의 걸음걸이는 산마루에 들어서면서부터 전혀 딴사람의 것이 되었다. 느릿느릿 세월아 가거라였다. 상머슴이 그리 금방 힘이 파하나? 늦장부리긴가? 보아란 듯이 내가 앞장 서 빨리빨리 걸었다. 어느새 뒤를 돌아보곤 해도 아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괜히 신명이 났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와락 무섬기가 들었다. 돌던 필름이 갑자기 멈춘 것처럼 사위가 조용해졌다. 불쑥 호랑이라도 덤벼들 것 같은 두려움을 어찌할 수 없었다. 나는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되돌아 뛰었다.

“오야, 니가 사내냐? 띳, 띳, 띳…….”

할 말을 잃은 나, 고개를 떨군 채 묵묵히 뒤를 따랐다.

“호야, 산이 어디냐? 내 교실이여, 교실. 산에 대해서는 내가 너네 선생님보다 선생님의 선생님일 거여. 잘 배워.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 알제. 누가 이겼냐. 너는 토끼고 나는 거북이다. 산에서는 촐싹대는 것 아니여. 잘 보고 따라 해. 알것냐.”

발을 내딛을 때마다 신준 아재는 내딛는 쪽으로 체중을 모으는 것 같았다. 몇 발짝 떨어져서 보면 상체가 좌우로 느릿느릿 뒤뚱대는 모습이었다. 발을 뗄 때마다 오금을 쭉쭉 펴는 것도 또한 특이했다. 까닭을 물어보았다.

“호야, 산에서는 원래 싸목싸목 힘을 태워 걷는 것이여. 알것냐. 왜 그래야 하는지는 너네 선생님한테 물어봐라.”

귀중한 지식을 함부로 알려줄 수는 없다는 투가 역력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나는 ‘이강산’이라고 하는 독특한 이름의 산 입구에서 우거(寓居)한 일이 있었다. 그야말로 산이 있어 거기 오를 수밖에 없는 혼자만의 산행이 이루어졌다. 심심해서 오르내린 탓인지 걸음걸이는 저절로 느릿느릿 했다. 아니 어느새 나는 신준 아재를 그대로 흉내내고 있었다. 내 산행의 패턴은 아마도 여기서 정초된 것 같다.

산행이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일반화되면서 많은 모임들이 생겼다. 나도 그 축에 더러 끼어 보았다. 그러나 모두들 왜 그리 바쁜가? 하나같이 허겁지겁이다. 나만 번번이 지치곤 했다. 그러나 문우들과 산행에선 내가 오히려 급진파가 되었다. 그만큼 시심의 해찰이 미흡한 탓이 아닌가 싶다.

산행은 싸목싸목!

그것은 내 산행의 신조이다. 산을 정복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사랑의 대상으로서 받드는 작은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