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루 붓이 되어

                                                                                            韓 季 珠

 졸저 "전화 여행"을 들고 어느 창작 교실에 갔을 때의 일이다. 강좌를 맡고 계신 J 선생님이 “저자도 한마디 하시오.” 한다.

인사말이라도 해야지 하고 일어났으나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얼떨결에 한다는 소리가 “나는 글을 빨리 쓰지 못합니다.” 하고 말았다.

나는 글을 빨리 쓰지 못한다. 원고지 열다섯 장 안팎의 글을 쓰는데 몇 달이 아니라 몇 년이 걸리는 것도 있다.

나의 수필집의 제목으로 쓰인 "전화 여행"도 그러하다.

어느 모임에서 고독을 이기려고 10년 동안 편지를 썼다는 무기수(無期囚)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 무기수가 부칠 곳도 없고 쓸 의욕도 잃어 끝내 붓을 꺾고 말았다는 말에 나는 가슴이 내려앉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지금 이 시간도 전화로 울적함을 달래고 있을 남편이 떠올랐던 것이다.

내가 그런 말을 했더니 옆에 있던 R 선생님이 글감이 된다고 생각했음인지 ‘전화 여행’이란 제목을 달아주셨다. 그러나 나는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상대방이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남편의 일방적인 통화가 그럴 의욕을 앗아갔던 것이다. 친구들을 찾는 남편의 끈질긴 노력이 잃었던 동창들을 찾게 되고, 아버지의 새벽 전화에 잠을 설친다던 아이들이 그 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서야 글이 풀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 책에 수록된 ‘존재의 집’의 경우도 그러하다. 아이들이 주민등록이라는 존재의 집에서 하나둘 떠나가고, 우리 부부만 남게 된다. 그러다 우리 부부도 그 존재의 집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을 생각하니 허전함을 달랠 수가 없었다. 우리에게 뼈와 살을 남기고 얼을 심어주신 조상님들을 떠올림으로 해서 비로소 위안을 얻었던 것이다.

남편의 병을 다룬 ‘讚歌’라는 글도 예외는 아니다. 부자가 천국 가기는 낙타가 바늘 구멍 지나기보다 어렵다고 했다. 남편이 몸이 성할 때는 나는 가진 것보다 내게 없는 것이 크게 보였다. 남편이 쓰러진 다음에야 그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게 되었으니, 나를 철들게 하기에 남편이 치른 대가는 너무 크지 않는가. 그가 창 밖의 눈부신 신록을 보고 애국가를 부르지 않았다면, 남편으로 해서 세상을 달리 보게 되었다는 ‘찬가’라는 글은 쓰지 못했을 것이다.

난생 처음 내놓은 수필집을 손에 든 내 소감은 ‘이제는 가져갈 것이 하나 생겼구나’ 하는 안도감 같은 것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무엇 하나 해놓은 것이 없다. 작심삼일이다보니 학교 다닐 때도 개근상이나 정근상 같은 것을 타본 적이 없었다. 그런 사람이 느지막이 글공부를 시작해서 수필집 한 권을 엮어 놓았다. 글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거기 쏟은 정성과 진지한 자세는 저세상까지 가져가고 싶은 것이다. 이승에서 얻은 권세와 재물은 모두 버리고 간다지만 맑은 영혼만은 가져간다고 들었다.

내게 있어 글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三無男便’이란 글에서도 말했지만, 남편이 병이 나지 않았다면 나는 글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산다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해서 그래저래 한 생(生)을 흘려보냈을지도 모른다.

십수 년을 몸이 불편한 남편과 군소리 없이 지낸다 해서 ‘열녀’라는 말을 쓰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자기 희생적인 냄새가 물씬 나는 그 호칭을 나는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오만일지는 모르나 나는 누구를 위해 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소중한 만큼 상대방도 소중하기에 그가 나를 필요로 할 때 옆에 있어 주는 것이 부부라고 알고 있다. 오랜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주어진 운명이라기보다 내가 선택한 길이라는 자부심 때문일 것이다.

뿌린 만큼 거두고 원한 만큼 살고 간다고 한다. 예사롭게 들었던 그 말이 나이가 드니 가슴에 와 닿는다. 나는 무엇을 원했으며 얼마만큼 살다 가는 것일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바랄 수야 없지만, 그래도 치사하게 살지는 말아야 할 터인데,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내 의식 속에는 참으로 많은 내가 살고 있다. 산사의 범종 소리는 가사 장삼을 걸친 스님으로 나를 그 자리에 서게 하고,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하는 품바의 각설이 타령은 어쩌면 그들이 가장 정직하고 속 편하게 한세상 살다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단심(丹心)을 노래하는 춘향이가 있나 하면,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살다간 황진이도 있다. 마음씨 착한 흥부와 탐욕스런 놀부도 있다. 수많은 얼굴들이 더러는 욕망으로 더러는 한으로 내 의식 속에 공존하고 있다.

생각은 인(因)이 되고 인은 과(果)를 낳는다 했다. 얼마나 많은 생을 살아야 그 욕망의 불꽃을 잠재울 수 있을까?

한 자루의 붓은 나의 윤회의 수레바퀴를 대신해 줄지 모른다. 더러는 춘향이가 되고 진이가 되어 걸림이 없는 삶을 살게 하고, 그 한을 불사르게 할지 모른다. 그렇게 하나하나 마음을 비우다 보면 그 맑을 순수와 동심의 세계로 나를 거듭나게 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