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외출

                                                                                        백 임 현

 연세가 높은 노인들은 돌아갈 때가 되면 마음이 변한다고 한다. 평소에 까다롭고 강했던 노인이 갑자기 풀이 꺾여 매사에 의욕을 잃고 온순해진다던가. 그와 반대로 그렇지 않던 분이 갑자기 사납고 날카로워져서 가족들을 당황하게 하는 경우를 듣게 되는데, 노인의 이러한 변화는 심상치 않은 징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구십 가까이에 타계하신 우리 시어머님도 그러셨다. 성품이 온화하고 착하시어 평생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번 할 줄 모르시던 분이 노경에 이르러 그전 같지 않으셨다. 기억력이 쇠퇴하면서 불만도 많아지고,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을 드러내놓고 미워하기도 하는 등 그분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셨다. 돌아가신 후에 생각하니 그것은 말기의 징후였는데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힘들어 하였던 것이다.

사람은 과연 죽음을 예견할 수 있는 것인가. 죽을 사람에게는 어떤 징후나 암시가 있는 것인가. 경지에 도달한 도인이나 철인은 자신의 종말을 시간까지 오차 없이 예견하고 맞춘다는 말을 들은 바 있고, 간혹 유명한 점술가는 사람의 운명과 죽음까지도 짚어낸다고 들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암시도 받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것 같다. 병사(病死)인 경우에는 병세의 진전에 따라 어느 정도 시기를 가늠할 수 있지만, 느닷없이 당하는 돌연사일 때는 속수무책이었다는 말이 맞다.

친지 중에 한 사람이 강가로 물놀이를 갔다가 세상을 떠났다. 졸지에 눈앞에서 남편을 잃은 젊은 아내는 넋을 놓고 몸부림을 쳤다. 시간이 흘러 슬픔이 다소 진정된 후에 사람들이 물었다. 죽기 전, 무슨 불길한 징조라도 있었는가를 궁금해 하였다. 그 얼마 전부터 꿈자리가 좀 뒤숭숭하였을 뿐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한다. 다만 전날 밤, 집 주위에서 밤새도록 고양이가 시끄럽게 울어서 잠을 설쳤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이유 있는 근거가 될 수 없다.

꿈이 불길한 일을 암시한다는 말은 많이들 한다. 꿈에 신발을 잃어버린다던가 이가 빠지면 가까운 사람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기고, 죽은 사람과 산길을 걸으면 죽을 수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날마다 눈감으면 꾸게 되는 수천 번의 꿈 속에 어떤 꿈인들 없겠는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사람의 불확실한 삶이 이런 꿈에라도 의지하려는 나약함일 것이다.

나도 뒤숭숭한 꿈을 자주 꾼다. 언제나 꿈이 현실보다 불안하고 편치 않아 꿈을 깨고 나면 안도하게 되는 때가 많다. 어릴 때의 꿈은 현실보다 행복할 때가 많은데 어른이 된 후의 꿈은 현실만 못하다. 그것은 어쩌면 다행한 일인지도 모른다. 꿈이 현실보다 즐겁고 행복하다면 잠이 깨고 났을 때 얼마나 허망할 것인가. 또한 놓쳐버린 꿈 때문에 얼마나 현실이 환멸스러울 것인가. 다행이 나쁜 꿈에 시달리다 잠이 깨면 현실은 악몽에서 나를 구해준 편안한 세상이 되는 곳이다.

동생이 세상을 떠날 무렵이었다. 어느 날, 꿈이 매우 산란하고 이상하였다. 십 년이 훨씬 지난 아버님의 묘소를 이장한다고 무덤을 헐었는데 무덤은 물이 가득 고여 있고, 그 속에서는 진흙물에 젖은 볏단이 계속 나오다가 맨 밑에서 맑은 물이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유골은 찾지 못하고 잠이 깨었다. 아무리 꿈이지만 너무 예사롭지 않아 동생에게 이야기하였더니,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하니까 그런 꿈을 꾸었을 것이라며 마음쓸 것 없다고 하였다.

이것 말고도 그 즈음 많은 꿈을 꾸었을 것이다. 꿈이 옛날 어른들의 말처럼 무엇인가를 암시하는 것이라면 그 중에 한두 가지쯤에서 어떤 예시를 느꼈어야 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동생이 간 후에 나는 그가 떠나기 전 그래도 죽음을 앞둔 사람으로 무엇인가 예사롭지 않은 어떤 기미가 있었을 것 같아 이런저런 일들을 더듬어보곤 한다. 그렇게 엄청난 일을 앞둔 사람이라면 무엇인가 달랐어야 하지 않을까. 그날도 아침부터 눈코 뜰 사이 없이 바빴다고 한다. 다음 날 유학 길에 오르는 딸의 출국 준비는 아무리 챙겨줘도 미비하다고 생각되었을 것이다. 죽기 30분 전, 다녀와서 저녁을 먹겠다며 황급하게 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할 일이 많아 다른 날보다 서두른 감이 없지 않으나 늘 일에 쫓기며 사는 생활 속에 그날의 일도 어느 하루의 일과였다. 죽음도 일상의 시간 속에 한부분이었을 뿐 특별한 것이 아님을 동생은 일깨워준다. 살고 있는 우리에게 죽음보다 더 큰 일은 없다. 그런데도 이런 큰 일에 앞서 어떤 징후가 없는 것은 보다 높은 차원에서 볼 때 죽음이라고 해서 특별한 일이 아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동생의 죽음도 어느 날의 외출처럼 일상의 한부분이었는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며 형벌 같은 비탄을 달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