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의

‘그 믐 날’

 

일  시:1998년 6월 20일

장  소:수필문우회 회의실

참석 인원:21명

사  회:허세욱

정  리:권일주

 

사회 : 안녕하십니까? 계간 수필이 4차 연도에 들어섰습니다. 지금부터 계간 수필 제13호를 위한 합평회를 시작하겠습니다. 합평 대상 작품은 월파(月坡) 김상용선생의 ‘그믐날’입니다. 시인이 쓴 수필이라는 특수성과 긴 수필이지만 ‘나’라는 말이 없는 3인칭 수필이라는 점, 그리고 구성과 기교가 특수하다는 점을 들어서 이 작품을 오늘의 합평 작품으로 선정했습니다.

月坡의 생애와 문학 전반을 잠시 살펴보면, 月坡 김상용은 1902년 경기도 연천에서 태어나, 1951년 4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5세에 상경하여 경성제일고보에 입학했으나 1919년에 일어났던 3·1운동 사건으로 제적되어 낙향했다가, 19세에 보성고보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 건너가 릿교 대학(立敎大)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난 뒤에 1928년부터 1943년까지 이화여전 영문과 교수를 지내는 등 약 20년을 교직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강원도 지사라든가, 공보처 고문, 코리아 타임즈 사장 등을 잠시 지냈고, 또 1943년부터 1945년에는 꽃가게를 경영하는 등 특이한 생애를 보냈습니다.

이분의 문학 생애는 세 가지 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가 詩人으로서의 月坡입니다. 자유시, 시조, 민요 등 다양한 창작 활동을 했습니다. 1926년에 ‘일어나거라’라는 시로 데뷔했으나, 1930년에 동아일보에 쓴 ‘무상’이라는 시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39년 ‘남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시로 문단에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현재 1939년 5월 문장사에서 나온 왆좡?이라는 시집이 유일한 시집으로 남아 있습니다.

수필 활동은 1931년에 ‘잃어버린 소리’라는 작품을 발표하는 것으로 시작했으며, 1950년에 왳薔솰삐?방랑기왃遮?풍자적 수필집을 내어 현재까지 남아 있습니다. 이분의 수필에는 ‘조선의 산악기’라든가, ‘여름 등산’ 등 등산 수필이 20여 편 있고, 그 외에는 대부분이 사회 풍자적 수필입니다. 그리고 이분의 문학 생애의 또 한 가지 면은 번역 시인으로서의 月坡입니다. 토마스 하디의 왍틂뻗?위하여왆?비롯하여, 투르게네프, 워즈워스의 시를 단편적으로 변역했습니다.

이상으로 김상용선생의 프로필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합평의 약정 토론자는 송규호, 박재식, 최순희 선생입니다. 평소 등산 수필을 많이 쓰시는 송규호 선생과 요즈음 들어 풍자적이고 시사적인 글을 쓰시는 박재식 선생, 또 영문학을 전공한 최순희 선생, 이 세 분의 시각이 다를 것이라는 기대로 세 분을 모신 것입니다. 정선모 선생께서 본문을 낭독해 주시겠습니다.

 

(본문)

그 믐 날

 

연말이 되니, 외상값이 마마 돋듯한다. 고슴도치는 제가 좋아서 외를 진다. 그러나 그는 심성이 원래 지기를 좋아해서 빚을 진 것은 아니다. 굳이 결벽(潔癖)을 지켜보고도 싶어하는 그다. 그러나 벽(癖)도 운이 있어야 지키는 것 ─ 한데 운이란 원래 팔자소관이라 맘대로 못하는 게다. 그도 어쩌다 빚질 운을 타고났을 뿐이다.

 

“이 달은 섣달입니다. 이 달엔 끊어 줍쇼.” 한다.

언즉시야(言則是也)다. 정월서 열두 달이 갔으니 섣달도 됐을 게다. 섣달에 청장(淸帳)하는 법쯤이야, 근들 모를 리야 있겠느냐?

또한 “줍쇼, 줍쇼.” 하는 친구들도 꼭 좋아서 이런 귀찮은 소리를 외며 다닐 것은 아니다. 그들도 받을 것은 받아야 저도 살고, 남에게 줄 것도 줄 게 아닌가? 듣고 보면 그들에게도 눈물 겨운 사정이 있을 적도 많다. 그러나 손에 푼전이 없을 때 이러한 이해성은 수포(水泡)밖에 될 것이 없다. 정(情)도 그러하고 의(義)도 역시 그러하나, 현실의 얼음은 풀릴 줄을 모르고 그의 딜레마엔 비애의 구름이 가린다.

“물론 주지, 그믐날 줄 게니 집으로 오소.” 하였다.

그는 이 순간 감히 물론을 ‘주지’ 위에 붙일 정도로 돈키호테가 되었다. 그러나 이 ‘물론’이 전연 영에서 출발한 물론은 아니다. 그도 4년 전에 50원(圓) 하나를 어느 친구에게 꿔준 일이 있다. 딱한 사정을 듣고 나서, “무슨 방도로라도 그믐께쯤은 갚아드리리다.” 하는 답이었다. 이것이 그에게 ‘물론’을 내뱉게 한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서 빚을 얻고 그 빚을 4년이나 못 갚았다면, 그 친구의 실력도 짐작할 만하다. 이런 때의 문제는 실력이지, 성의 유무가 아니다. 들어올 가능성 1에 못 들어올 확실성이 9쯤 된다.

이런 것을 믿다니… 과연 어리석지 아니한가? 그도 산술 시험에 70점을 맞아 본 수재다. 그만 총명으로 이 믿음의 어리석음을 모를 리가 없다. 말하자면 그는 이 어리석음을 자취(自取)한 데 불과하다.

이런 때 떠내려오는 지푸라기를 안 잡는댔자, 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여튼 그는 ‘그믐’이란 안질 환자의 파리채로 빚쟁이들을 쫓아버렸다. 이마를 만져보니 식은땀이 축축하다.

 

하늘은 선악인의 지붕을 택(擇)치 않고 우로(雨露)를 내려준다. 게까지는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채(債)의 권무(權務)를 가리지 않고 ‘그믐’을 함께 보내심은 항혜(恒惠)가 지나쳐 원망의 눈물이 흐른다. 마침내 빚쟁이들에게 ‘줍쇼’ 날이 오는 날, 그에겐 주어야 할 ‘그믐날’이 오고 말았다.

 

이때 기다리는 50원이 나 여기 있소 하면야 근심이 무에랴? 그러나 스무 아흐렛날이나 그믐이 돼도 들어와야 할 50원은 어느 골목에서 길을 잘못 들었는지 종내 찾아들 줄을 모른다. 그에겐 “물론 주지! 그믐날 집으로 오소.” 한 기억이 반갑지 못한 총명 덕에 아직도 새파랗다.

“집으로 오소.” 해놓았는지라, 빚쟁이들이 다행 일터까지는 달려들지 않는다. 평온한 하루 속에 일이 끝났다. 일이 끝났으니 갈 게 아니냐? 제대로 가자면 그믐날도 되고 하니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게다. 그러나 천만에… 이런 때 집으로 가는 건 맨대가리로 말라리아 모기 둥지를 받는 것과 똑 마찬가지다.

그는 오며오며 만책(萬策)을 생각해 본다. 생각해 봐야 다방 순례밖에 타계(他計)가 없다. 가장 염가의 호신피난법(護身避難法)이다. 그러나 군자(軍資)는? 그는 다 떨어진 양복 주머니에 SOS를 타전한다. 일금 30전야유(錢也有)의 보첩(報牒)! 절처봉생(絶處逢生)은 만고에 빛날 옥구(玉句)다.

 

그는 다방 문을 연다. 보이의 “드럽쇼!”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이 소리에 대해 모자를 벗지 아니할 정도로 오만하다. 30전 군자는 그에게 이만한 오만을 가질 권리를 준 것이다.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활동화보나 들치며, 세 시간을 있어도 여섯 시간을 있어도 당당한 이 집의 손님이다. 그는 우선 거미줄 같은 니코틴 망 속에 무수한 삶은 문어 대가리를 보았다. 그는 그들을 비예(目卑 目兒)하며 가장 점잖게 좌(座)를 정해 본다. 한 푼에 투매되는 샤리아핀의 ‘볼가의 뱃노래’는 그 정취가 과도로 애수적이다.

그는 커피 한 잔을 명하였다. 얼마 아니해 탁(卓) 위에 놓여진다.

“오 ─ 거룩하신 커피 ─ ㅅ잔” 하고 그의 기도는 시작된다. 어서 염라대왕이 되사, 이 하루를 옭아가 주소서 하는 애원이다. 어쨌든 그의 군자가 핍진(乏盡)키 전에 그는 이날 하루를 착살(鑿殺)해야 할 엄훈하(嚴訓下)에 있다.

 

겨울 밤이 열 시 반이면, 밤도 어지간히 깊었다. 그는 이 사막에서 새 오아시스를 찾노라, 30필의 낙타를 다 잃은 대상(隊商)의 신세다. 그는 지금 가진 것을 다버린 가장 성결(聖潔)한 처지에 있다.

“지금까지야 설마 기다리랴?”

“지금 또야 오랴?”

비로소 안도의 성(城)이 심장을 두른다. 거리의 찬바람이 휘 ─  지날 때, 그는 의미 모를 뜨거운 두 줄을 뺨에 느꼈다.

누가 그의 왼볼을 치면, 그는 진심으로 그의 바른볼을 제공했으리라.

문간을 들어서자,

“오늘은 꼭 받아야겠다고 다섯 사람이나 기다리다 갔소.” 한다.

이건 누굴 숙맥으로 아나, 말 안하면 모를 줄 아나봐, 대꾸를 하고도 싶다. 그러나 부엌을 바라보자마자 그의 배가 와락 고파진 이때, 그에겐 그 말을 할 만한 여력이 없다.

그는 꽁무니를 뒷마루에 내던졌다. 그리고 맥풀린 손으로 신발 끈을 끄르려 한 이때다. 바로 이때다.

 

바로 이때,

“참 아까, 50원 가져왔습니다!” 한다.

귀야, 믿어라! 이 어인 하늘의 음성이냐?

“무어? 50원을 가져와? 50원을!”

이럴 때 아니 휘둥그래지면 그의 눈이 아니다.

자 ─ 기적이다! 기적을 믿어라. 이게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래도 기적이 없다는 놈에겐 자자손손 앙화(殃禍)가 내려야 한다. 오! 고마우신 기적의 50원!

 

열한 시가 다 뭐냐? 새로 한 시 아냐, 세 시라도 좋다.

50원아! 가자, 감금된 청백고결을 구하러. 50원아, 십자군의 행군을 어서 떠나자!

어느 놈이고 올 놈은 오라. 그래, 너희들이 받을 게 얼마냐? 주마 한 그믐날이다. 주다뿐일까, 장부의 일언을 천금 주어 바꿀 줄 아는가?

 

그에겐 지금 공복도 피로도 없다. 포도를 울리는 그의 낡은 구두는 개선 장군의 발굽보다 우렁차다.

S 상점의 문을 두드린다. 아무 대답이 없다.

고연놈들! 벌써 문을 닫다니… 받을 것도 안 받고 벌써 문을 닫았어, 고연놈들!

“문 열우.” 하고 또 문을 두드린다.

“누구십니까?”

한참만에야 문이 열렸다.

“내요. 돈 받으소. 아까 왔더라는 걸. 어~ 마침 친구에게 붙들려서… 하하, 친구에게 붙들리면 어쩔 수가 없거든…….”

“그렀습죠! 하하.”

“줍쇼.” 때에 비해 그의 음성은 간지러울 정도로 보드랍다.

“어~ 한데 사람이란 준다는 날은 줘야지! 그렇지 않소. 어~ 한데, 모두 얼마더라…….”

S 상점의 셈을 마치고 다시 개선 장군의 말굽 소리를 내며 그는 다음 상점을 찾아가는 것이다.

 

 

 

사회 : 본 합평에 들어가기 전에 여러분께 부탁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최근 이 합평회에 참여하는 회원 수가 점점 많아져서 여러분의 말씀 가운데 중복되는 부분이 자연히 생기게 됩니다.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 객석의 회원들께서는 되도록 중복을 피해 주시고, 내용의 밀도를 위해서 논리를 분명히 하여 새롭고 핵심적인 말씀들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먼저, 이 글의 주제가 과연 있겠는가 하는 점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송규호 : 간단히 말해서, 저는 이 글의 주제가 가난한 문인의 결벽성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보충하자면, 문인들의 풍속도라고 할까. 만성적 생활 양식이라고 할까. 즉 그 당시 문인들의 다방 드나듦과 같은 일상 생활의 일맥들이 보입니다. 이것은 자기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일반적인 문인들의 이야기를 쓴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당시의 일반적인 풍속도라고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박재식 : 섣달 그믐날 빚에 쫓기는 서민의 절박한 심정을 지적 에스프리로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질감 높은 작품입니다. 안빈낙도하는 선비적 기질을 해학적 화법으로 처리해서 잘 그려냈습니다. 가난한 서민이 맞는 궁핍과 따분함, 그러면서도 의를 지키고 싶어하는 선비다운 정신, 기개, 그런 것을 다룬 작품이라고 봅니다. 언뜻 백결 선생의 방아타령을 연상했습니다.

최순희 :  ‘나’라는 말이 전혀 없이 소설적으로 쓰여졌어도 저는 수필로 읽었습니다. 송 선생님 말씀대로 이것은 일반적인 풍속도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글쓴이 자신이 겪은, 또 겪을 법한 이야기로 보았습니다. 돈의 학대에 휘둘려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가난한 자신을, 거리를 두고 제3자적 입장에서 보며 해학적으로 쓴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 주제를 더 좁힌다면?

최순희 : 그믐날의 답답한 심경을 일면 자조적이며, 일면 해학적으로 그렸다고 봅니다.

 

사회 : 감사합니다. 객석에서 이상 주제면에 대해 세 분이 말씀하신 것과 다른 견해가 있으신 분이 말씀해 주십시오.

문혜영 : 저는 이 글을 읽고, 돈이라는 것은 돌고 도는 것이어서 사람을 채권자가 되게 하고, 동시에 채무자가 되게 하기도 한다라는 것과 1년이라는 해의 단위와 한 해가 끝나려 할 때 채무를 정리하고 싶어하는 서민적인 풍습, 그런 것이 함께 들어 있는 글이라고 보았습니다.

정진권 : 돈 없는 소시민의 애환이 주제라고 봅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는 이 글에 ‘그’가 하는 말이 선비의 말투가 아닙니다.

 

사회 : 이 글에 선비라는 말은 없지만, 언어의 분위기나 어법이 선비적이라는 말씀이 아니신가요.

정규복 : 이 글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아주 힘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와서 세 분의 말씀을 듣고 도움이 많이 되고 공부도 많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이분의 시에 ‘왜 사냐건 웃지요’라는 것이 있습니다. 李白의 ‘山中問答’을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이분은 그 시대 사람 가운데서는 드물게도 정상적인 교육 과정을 받아 후에 영문학을 한 사람인데, 한학에 기초를 둔 것이라든가 한학에 조예가 깊은 것이 시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글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이 글에서도 ‘絶處逢牛’이라든지 ‘言則是也’라는 말을 썼습니다만.

 

사회 : 제일고보에서 제적된 후에 이분은 고향에 내려가서 한문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주제면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기로 하겠습니다만, 오늘 불참하신 윤모촌 선생과 유경환 선생은 각각 ‘그믐날에 채귀에 시달리는 작자의 심리 상황’ 또는 ‘인생의 페이소스를 느끼는 글’임을 밝혔습니다.

이번에는 이 글의 구성과 기교면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글은 시각적으로도 특이한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장이나 수사, 기교도 다른 글들과 퍽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말씀들을 나누어 주십시오.

송규호 : 글의 전개는 고슴도치의 심성에 빗대어서 하고 있습니다. 외를 잘 지지만 심성이 좋아서 지는 것은 아니다로 시작해서 고슴도치를 설명하고, 거기에 대한 풀이가 글 전체를 이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빚을 져서 갚기까지 주인공의 심리 과정의 변화가 일곱 단계로 나뉘어져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번째가 고슴도치의 심성 설명, 두 번째는 빚 독촉이 있지만 분전이 없어서 갚지 못하는 안타까움, 세 번째는 “물론 주지.” 하며 결벽을 뒷받침하는 내용, 네 번째는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피신, 다섯 번째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 여섯 번째는 팔자 소관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가 갈등 해소인 해결, 즉 빚갚음입니다.

박재식 : 희곡적이며 소설적인 구도에 시적 수법으로 치밀하게 쓴 글입니다. 소설적 요소로 보는 것은 화자를 3인칭, 즉 ‘그’로 한 것입니다. 지적인 내용을 ‘그’로 객관화 시켜서 엎치락 뒤치락 극적으로 전개시켰습니다. 그 극적인 처리가 효과를 보았으며, 또한 30년대의 구술형 문체, 즉 소설적 문체가 수필을 살렸습니다. 중간에 나오는 여러 가지 궁상스런 사유는 마지막 클라이맥스를 위한 소도구로 여겨집니다. 소설적 수법이지요. 또 문단을 띄어놓은 것이 구성에 있어서 속도감과 긴장감을 주었습니다. 또 이 글이 시적인 수법을 취했다라고 보는 것은 행간을 띄우면서 이미지 형상을 시도했고, 시적인 언어 선택과 과감한 생략으로 시가 주는 밀도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최순희 : 일부 중복되는 면이 있지만, 저는 구성면과 기교면을 나누어 생각해 보았습니다. 구성면을 볼 때 이것은 소설적 수필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적 리얼리즘 소설처럼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소설에서의 고조법, 상승법이 있고, 클라이맥스에서 반전이 이루어집니다. 그 상승미가 효과를 내어 아주 짤막한 소설 같은 느낌을 줍니다. 수사학적으로 보면 ‘그’라는 3인칭을 내세운 점이 탁월합니다. ‘나’가 아니고 ‘그’로 쓰면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객관적인 눈으로 따라갑니다. ‘그도 산술 시험에 70점을 받아본 수재다’라든지, ‘50원은 어느 길목에서 길을 잘못 들었는지 종내 찾아 들 줄을 모른다’나 ‘오 거룩한 커피 잔’ 등의 표현이 독자가 동참할 수 있는 여유와 해학을 가져왔다고 봅니다. 또 주어가 없으므로 문장이 간결하고 어미나 연결어가 과감히 생략되어 표현에서도 감각이 신선하며 문장이 힘이 있고 효과적입니다. 또 하나는 현재형으로 상황 묘사와 심리 묘사를 했기 때문에 소설적이고 직선적이며 생동감이 있습니다. 또 인용표 안의 문장, 그 대화법 또한 소설적 효과를 배가시킵니다. ‘지금 또 오랴?’가 아닌 ‘지금 또야 오랴?’ 등의 표현이 그것입니다. 또 ‘그’를 내세운 것이 여유로움과 관조적인 느낌을 주며 자기의 가난까지도 해학의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지를 주었고, 효과적인 소설적인 수필을 만들어 냈다고 봅니다.

 

사회 : 경이로운 발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세 분께서 조직적이고 치밀한 분석을 해주셨습니다. 정리를 하면 송 선생께서는 빚을 갚는 과정을 심리적, 행위적 변화의 7단계로 표현한 구성이 치밀하다는 말씀이셨고, 박 선생께서는 소설적 구도에서 희곡적이며 시적인 요소를 잘 배합해서 지적인 효과를 발휘한 구성이다. 특히 분단을 함으로써 속도나 긴장감을 주었다라는 말씀과 3인칭 객관화의 성공 점을 지적하셨습니다. 새로 입회한 최순희 선생은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분위기의 고조법, 점층법, 반전법, 상승법을 활용하여 소설적 구성을 발휘했다. 수사면에서는 생략법과 현재형, 대화법, 3인칭 등을 잘 운용하여 여유 있고 해학적이며 생생한 수필로 만들었다라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럼 세 분께 다시 반문을 하겠습니다. 대개 성공적인 구성과 수사만을 지적하셨는데, 부정적인 면은 없다고 보십니까?

박재식 : 상식적으로 볼 때 수필의 지문 속에서 약어를 쓰지 않습니다만, 이 글에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그인들’을 ‘근들’이라 했고, ‘그만한 총명’을 ‘그만 총명’이라 했습니다. 이런 것은 이분이 詩人이니까 언어 감각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겠지만, 단점으로 장점으로도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송규호 : ‘채(債)의 권무(權務)’라든가 ‘30전야유(三十錢也有)’, ‘커피 한 잔을 명하였다’ 등이 귀에 거슬립니다. 아까 해학적이라는 말씀들을 하셨는데 저는 그것을 비유라고 해석하고 싶고, 또 지나친 비유는 자칫 만담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50원아! 가자, 감금된 청백고결(淸白高潔)을 구하러’ 등의 표현이 너무 신파조 같은 느낌이 들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최순희 : 쉼표가 남용되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대부분의 문장에서 주어가 생략된 것이 효과가 있었지만, 어미와 연결부호가 너무 많이 생략되어서 한두 군데 뜻이 모호한 곳이 있었습니다. 또 전편에 걸쳐 계속 ‘그’라고 일관되어 나오는데 이것이 수필이라고 하니까 수필이지, 콩트나 소설이 아닌 진짜 수필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정봉구 :  재미있게 잘 쓴 글이라고 생각했지만, 수필의 구성에서 화자의 위치를 어디로 두어야 하나, 수필의 허구론이 이런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생소한 언어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런 것은 글을 틔게 하는 좋은 시도이며, 우리가 글을 쓸 때 독자를 생각하고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또 이 글 속에 트릭을 많이 사용한 것을 보고, 앞으로 수필의 나아갈 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진권 : 비평가들의 여러 평들이 있지만, 저는 여기서 다른 사람의 평과 관계없이 3인칭 시점에 대해서 잠깐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글 속에는 ‘그’라는 사람이 대단히 회화적으로 묘사되었고 진실성이 없습니다. 그것은 작가 김상용이 돈 없는 서민의 애환을 웃음 속에 전달하겠다는 의도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인물을 회화화시켜야 되는데, 1인칭 ‘나’를 그렇게 만들면 신빙성도 없고 자칫 만담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자기는 빠지고 ‘그’를 내세워서, 그의 내면까지도 훤히 아는 작가의 시점에서 글을 쓴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구성도 산만하고 문장도 그리 탄탄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다만 그러면서도 이 글이 성공했다고 보는 것은 3인칭 시점에서 글을 써서 독자들에게 그 애환을 미소 속에 전했다는 점입니다.

김진식 : 이 글에 쓴 ‘그’라는 3인칭 대명사는 작가 자신이라고 보기보다는 그 당시 문인 일반의 자화상이라고 봅니다. 시적이며 희곡적인 요소를 많이 도입하여, 과감한 전환, 과장된 비유, 은유, 풍류가 넘칩니다. 저는 이 글이 도입 부분인 앞 4줄의 내용을 뒤에 풀어 쓴 글이라고 봅니다. 즉, 운명적인 것이 없으면 안 된다. 운명적인 요인, 인간의 한계, 그런 것을 썼다고 봅니다. 허구냐 진실이냐를 따지기보다 사유의 세계에서 문인 일반의 자화상을 자기의 심상 풍경으로 표상하는 과정이 이 글의 특징이라고 봅니다.

김시헌 : 결점을 지적하라고 하시니까 말씀드리면, 이 글에는 서술적 요소가 부족합니다. 생략, 은유, 긴축이 연속되어 있어서 난해합니다. 처음 읽었을 때 보통 독자들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곳이 많았습니다. 즉, 지식인의 언어 유희를 보는 느낌입니다.

 

사회 : 어느덧 한 시간 반이 되었습니다. 위의 구성과 기교에 대해 불참하신 윤모촌 선생은 문장면에서 산문의 논리에서 벗어난 부분을 지적하였고, 유경환 선생은 마무리에 50원 가져왔다는 부분을 허구라고 지적하였습니다.

마지막 결론이 됩니다만, 이런 수필이 우리 수필사, 우리 문단에 어떤 공헌을 했고, 또 과연 이런 수필을 어떤 시각으로 보아야 하는지 말씀을 나누어 주십시오.

최순희 : 처음 이 글을 읽었을 때 난해하다고 생각했습니만, 의미를 파악하고 난 뒤에는 일종의 안도감이 생겼고, eye open이라고 할까요, 지평이 열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요즈음 저는 수필이란 것이 내 이야기뿐이 아니라 남의 이야기도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아까 정봉구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신 것과 같이 수필의 형식적 매너리즘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어떤 타개책이 서지 않을까 하는데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어가 ‘내’가 아닌 글, 그 대안은 무엇일까 하는 것을 생각하던 차에 이 글을 읽고 ‘내’가 주어가 아닌 글에 대한 확신을 받았다고나 할까요. 수필의 매너리즘, 수필이 갖고 있는 형식의 갑갑함에서 벗어날 대안으로서 이런 형식에 조심스럽게 접근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누구인가의 이야기를 대신 하는 것이라는 단서를 글 속에 주어야 콩트나 소설과 구별될 것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박재식 : 한자어를 잘못 쓰면 부스럼이 됩니다. 난삽하고 난해한 느낌을 독자에게 줍니다만 문체를 간결하게 하는 점도 있습니다. 저는 예술을 하나의 유희라고 보는데 그런 의미에서 지적 유희의 수필, 지적인 수필이 바로 우리가 앞으로 뚫고 나아가야 할 곳이라고 봅니다. 이런 수필, 사유가 섬세한 이런 지적 중수필이 수필의 고전이 되어 후학들이 견본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시헌 : 박 선생님과 상대적이어서 한 말씀드립니다. 표현된 기교와 문학적 요소를 보는 눈은 박 선생님과 같습니다만, 긴축, 은유가 과감할 때 독자가 어떻게 볼지, 독자를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송규호 : 이런 표현과 이런 구성의 글이 앞으로 많이 읽혀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자 쓰고 양복을 입고, 양말 신고 구두 신고, 지팡이 짚고 하는 식으로, 말이 어법에 딱 들어맞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거추장스럽습니다.

고봉진 : 수필이라는 것이 원래 1인칭 글인데 ‘그’라는 3인칭이 주어가 되었을 때 소설이나 콩트와 어떻게 구분되느냐 하는 것에는 문제가 남지만, 이런 형식도 앞으로 시도해 볼 만한 형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 글에서 이백의 ‘산중문답’을 생각나게 하는 동양 선비적 바탕과 기질을 가지고 그가 전공한 영문학적 소양, 특히 찰스 램의 지적 해학, 넉살을 본받아 지적인 유희를 시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규복 : 저는 좀 회의적인 측면에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문체에 문제가 많습니다. ‘일금 30전야유(三十錢也有)의 보첩’은 일금 30전의 유보첩(有報牒)입니다. 해학도 좋지만 국문학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문법 파괴입니다.

고임순 : 저는 이 글을 콩트식 수필이라고 보았습니다. 허구적인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자기 자신이나 당시의 가난한 문인들이냐 하는 것은 저는 이 글을 시대적인 것과 연결시켜 생각해 보았습니다. 즉 일제시대의 억압에 대한 것을 쓴 작품이라고 보았습니다. 마지막에 통쾌한 빚 갚음이 나오는데 이것이 통쾌합니다. 이 수필 한 편 밑바닥에 당시의 사회 울분을 터트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숙희 : 궁핍을 이야기하면서도 따뜻한 이야기요, 교훈적인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진권 : 이 글에서 우리가 두 가지를 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3인칭 시점이며, 두 번째는 유머러스한 문체 감각입니다. 3인칭 시점은 수필이 자기 일기 내지는 자서전의 세계에서 해방될 수 있게 하며, 유머러스한 문체는 양주동 선생님의 글처럼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며 발랄하게 읽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선모 : 이 글에서 잘 이해되지 않았던 점은 비장감이 도는 단어가 많이 들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단어들은 흥분된 상태에서나 쓰는 단어들로서, 이렇게 많이 나왔을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고임순 선생님 말씀을 듣고 나서 이해가 되었습니다. ‘감금된 청백고결(淸白高潔)’은 ‘감금된 한민족의 비애’라고 해석하니까, 그런 것이 일시에 해소가 되었습니다.

변해명 : 거기에 대해서 고임순 선생님과 정선모 선생님의 말씀에 이의가 있습니다. ‘그믐날 섣달의 청장(淸帳)’이라는 것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지켜온 우리들의 유교적 전통문화에 바탕을 둔 것이고, 선비든 아니든 누구나 지켜온 것입니다. 이 글을 그렇게 해석해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봉진 : 사실 이분은 저항 시인도 아니지 않습니까?

유혜자 : 저도 이 글의 주제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서민의 애환을 블랙 코미디 식으로 썼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 이제 토론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이 수필이 제목이나 구성에서 파격적이고 이채롭고 성공적이었다는 것이 우리 합평회에서 증명되었습니다. 비록 30년대의 수필이지만 문장의 3인칭 소설적 구성이라든지, 희곡적 전개, 시적 언어, 거기에 아주 간결한 수사와 함께 점층법, 반전법 외에 해학적, 희화적이고 주지적이고 민족적이며 교훈적인 내용이 듬뿍 들어 있어서 비록 서술이 적다, 난해하다, 생략이 많다, 탈 문법적이다, 진부한 구태어가 많다라는 반면적 지적도 있었지만, 대체로 이런 수필이 서정수필의 한계를 타개하는 방법으로 한번 시도할 만하다라는 긍정적 평가를 보태 주었습니다.

62년 전에 쓰였던 작품이 오늘 이곳에서 새롭게 빛을 받게 하는 것이 우리 합평회의 의의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이 자리에 참석해서도 토론을 양보한 구양근 회원, 그리고 참석치 못하면서도 서면으로 고견을 보내 주신 여러분께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