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해서

                                                                                           윤 모 촌

 단칸 셋방을 살 때, 장차 양옥(洋屋)을 짓고 살라고 장인이 말씀하였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그때, 그런 셋돈도 힘겹던 때라서 황당한 말씀으로만 들었다. 6·25 전쟁 얼마 뒤의 일이지만 서울에도 초가집이 있던 시절이다.

그렇던 세상이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면서 의식주(衣食住)의 길이 너나 없이 궤도(軌道)를 벗어나, 분별 없는 허세와 사치의 길로 달려왔다. 급기야 나라가 이른바 IMF시대로 빚더미에 오르고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으로, 구석구석이 기찔리며 돌아가는 소리에 숨이 막힌다.

공기도 마실 수가 없고 물도 마음놓고 마실 수가 없다.

낮도깨비 같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 말 그대로 법으로는 상수원 보호구역을 지킨다고 하면서도 느느니 호화 별장이고, 오염 물질의 배출 업소이다. 땅이 썩어가고 강물이 죽어가는 원인을 몰라서가 아니고 방법을 몰라서도 아니다.

“앉은뱅이 이수(理數) 몰라서 못 가느냐.”는 속담이 있지만, 애꿎게 제 구실 못하는 법 앞에 정직하고 선량한 사람만이 그 앞에 서 있다. 이 지경이 된 것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거기엔 언제나 실체가 있다. 몰라서가 아닐 텐데, 그 실체를 알면서도 여름밤의 개구리 소리처럼 소란이다. 힘 있는 자들의 탈법이 그것인데, 이런 세월이 쌓인 상황에서나 형평성으로 논란을 빚는 법이 오늘 이 지경의 결과를 얻었다.

이런 속에서 보아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뉴스가 날이면 날마다 쏟아져 나와 답답한 하루, 네 사람 ─ 나와 백암(白菴), 탄암(灘菴), 향원(向原) ─ 은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6백 년 전의 한 분을 찾아 나섰다. 온양(溫陽) 고택(古宅)에 모셔진 조선조 청백리(淸白吏) 맹고불(孟古佛) 정승. 맹정승의 일화(逸話)는 세상이 다 알지만, 우리들은 차중에서 그분의 이야기를 하였다.

 

보고차(報告次) 온양에 내려간 병조판서(兵曹判書)가 정승의 집에서 소나기를 만난다. 집이 새서 의관을 적시고 돌아온 그가 탄식을 하면서, 정승의 집이 이와 같은데 어찌 내가 호사스런 행랑(行廊)을 지으랴 하고, 짓기 시작하던 행랑을 헐어낸다. 정승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이렇듯 호사할 줄을 모르는 이 청백리의 일화 때문에 우리는 지금 속이 상한다.

고향엘 내려다닐 때 정승은 간소한 차림으로 소를 탄다.

관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지방 관청에 들르는 일이 없다. 이런 정승이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안성, 평택 두 고을의 원이 장호원(長湖院)으로 마중을 나간다. 그런데 정승의 행차는 보이지 않고 소를 탄 사람만이 지나가서, 원이 사람을 시켜 정승이 지나가는 길이니 썩 길을 비키라 한다. 정승이 그 자에게 내가 온양의 맹고불이라 하자, 그 말을 들은 원이 혼비백산 달아나다가 지니고 있던 도장이 연못에 빠지는 것도 몰랐다.

일화 중의 공당 문답(公堂 問答)은 백 번 들어도 즐거운 이야기이다. 온양에서 돌아오는 정승, 용인(龍仁)에서 비를 만나 여관에 드는데, 말을 타고 성장(盛裝)을 한 사나이 하나가 먼저와 누상(樓上)을 차지했다. 그는 녹사(綠事) 벼슬을 한자리 얻으러 서울을 가는 영남(嶺南)의 부호(富豪). 구석에 자리잡은 정승이 그를 불러 담론을 하고 장기를 두다가, 公 字 堂 字를 운(韻)으로 하여 공당 문답을 시작한다.

정승이 먼저 “무슨 일로 서울을 가는공?”

성장한 사나이 “녹사 한자리 얻으로 간당.”

정승 “내가 한자리 얻어줄공?”

사나이 “하! 별 말씀을… 아니당.”

사나이가 아니라고 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벼슬을 얻어주겠다는 말이 곧이들리지 않아 허튼 소리를 말라는 뜻이다.

성장한 사나이, 뒷날에 녹사가 되어 정부에 인사차 들어가는데, 난데없이 공당 문답이 다시 나온다. 정승이 물은 것이다

“어쩐 일인공?”

사나이는 엎드려 “죽어지어당.”

배석한 중신들이 정승의 설명을 듣고나서 한바탕 웃었다. 녹사는 그 후로 정승의 감화를 입어 유능한 관리가 된다.

우리는 차중에서 다 아는 얘기를 되뇌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귀로에 올라 다시 답답한 공기 속으로 젖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