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끼

                                                                                       강 호 형

 장맛비도 잠시 멎은 휴일 아침이다. 아내가 마침 여행중이어서 혼자 무료하던 차에 이사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반가웠다. 초등학교 동창인 이사장의 전화가 늘 반가운 것은, 듣지 않아도 용건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뭐해?”

“글쎄, 지금 그걸 연구중이지.”

그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양평에 가서 한잔 하잔다. 양평은 그의 고향이다. 내 눈앞에는 벌써 전에도 가본 적이 있는 그의 산장이 떠올랐다. 산수가 뛰어나게 좋은데다가 원두막 같은 정자까지 있는 명당인지라 오늘처럼 무더운 날 무료하기까지 하고 보면, 불감청일지언정 고소원이다. 아무개 아무개도 부인을 동반하기로 했으니 나도 그렇게 하라는 당부였지만 따를 수 없는 것이 유감이었다.

이사장 내외가 약속한 주유소 앞에 나타난 것은 잠시 후였다. 차 안에는 그의 이웃에 사는 김사장도 타고 있었다. 모처럼 쾌청한 휴일이어서인지 아침부터 길이 붐볐다. 어린 것들을 거느린 승용차, 이웃이나 친척을 동반한 승합차, 단체 관광객을 실은 버스들이 뒤엉켜 넓은 국도가 북새통이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기회만 있으면 탈출을 시도한다. 참을성 없는 장기수 같다. 그러나 그것은 탈출이 아니라 타고난 귀소 본능인지도 모른다. 답답한 도시에 사는 동안, 두고 온 청산이 그리워 응어리진 가슴을 잠시나마 풀어보려는 일탈행위라 할까? 하기야 인간에게는 본래 도시란 없었다. 오랜 옛날에는 인간도 노루나 멧돼지처럼 산야를 누비며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하고 보면 자동차를 몰고 산으로 바다로 내달리고 있는 군상들의 속셈은 원시로 돌아가려는 잠재적 본능에 대한 보상행위라 해도 좋을 것이다. 오고가는 교통 전쟁이 예사 고통이 아닌데도 앞을 다투고 있는 자동차 행렬을 보노라며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길은 붐볐지만 산장은 그리 멀지 않았다. 이윽고 정자 앞에 차를 세운 이사장이 산기슭으로 들어서며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노루를 잡으러 가자는 것이다. 노루? 그러나 나는 벌써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산자락 밭뙈기에 콩을 심었는데 노루와 토끼가 내려와 모조리 잘라 먹는 바람에 쑥밭이 되었다는 것이다.

“약이 올라서 쫴기(덫)를 놨는데…….”

그가 말꼬리를 사리는 것은 자신이 있다는 증거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있을수록 뒤를 사리는 사람이다. 조금 가니 콩밭이 나왔다. 아닌게 아니라 순이 다 잘려나간 콩포기들이 줄기만 남은 채 부상병처럼 늘어서 있었다. 앞서 가던 이사장이 덤불 밑을 헤집어 보더니 심드렁하게 뇌까렸다.

“에계, 토끼 새끼가 걸렸네.”

그는 자못 실망했다는 듯, 그래서 다음 덫에 기대를 건 듯 내쳐 밭머리를 더듬어 나가는 폼이 그 뒷처리는 내게 맡긴다는 태도였다. 달려가 보니, 갈색 바탕에 검은 털이 섞인 중토끼 한 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필사적으로 버둥거리고 있었다. 한쪽 뒷다리의 무릎 마디 위가 톱날 같은 쇠덫에 물려 으스러져 아랫부분은 덜렁거리고 있고, 차라리 잘려나가기나 했으면 좋을 가죽만 물려 한사코 달아나려는 몸뚱이를 붙잡고 있었다.

뒤따라온 김사장과 합세하여 놈을 덫에서 빼내기는 했으나 내 손아귀에서 꽥꽥 소리치며 버둥거리는 바람에 토끼가 아니라 범의 꼬리를 잡은 기분이었다.

“산토끼가 고기 맛은 좋지.”

김사장은 벌써 군침이 도는 눈치다. 산토끼 고기라면 나 역시 맛을 본 터라, “아무렴.” 하고 맞장구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직은 두 눈을 멀뚱거리며 버둥대는 놈에게는 미안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정자 밑에는 마침 빈 양파 자루가 나뒹굴고 있었다. 놈을 가두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리하여 놈은 곧 양파 자루에 갇혀 떡갈나무 밑에 매이는 신세가 되었다.

김사장이 냇가에 간 사이, 그것도 일이었던지 목이 말랐다. 마침 사들고 간 막걸리를 한 잔 따라 마시며 바라보니 놈이 배가 고플 것 같았다.

잡아먹을 때 먹더라도 배고픈 놈을 보고만 있을 수야 있나. 칡순 몇 개를 땄다. 묶은 자루를 풀고 칡순을 넣어 주고 돌아서서 몇 걸음 옮기는데, 뒤에서 버르적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뿔싸. 그러나 놈은 벌써 자루를 벗어나 덜렁거리는 뒷다리를 끌고 수풀 속을 저만큼 달아나고 있었다.

개천에 갔던 김사장, 노루를 잡으러 갔던 이사장이 오고 뒤이어 지형과 김형 내외가 도착하자, 정자에는 아연 활기가 돌았다.

그럴수록 난감한 것은 나였다. 토끼를 놓친 죄인이 되었으니…….

“오늘은 메뉴가 뭐야?”

늦게 온 지형의 말을 이사장이 받았다.

“엄나무 닭이나 할까 했더니 별식이 하나 생겼어.”

“별식이라니?”

“산토끼!”

“산토끼?”

늦게 온 일행의 귀가 토끼처럼 쫑긋해지는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었다. 내가 나섰다.

“토끼 외출 보냈는데…….”

“외출이라니?”

이번에는 김사장, 이사장의 귀가 더 쫑긋했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하도 울어대서 잠깐만 보고 빨리 오라고 했는데 아직도 안 오네. 내가 속았나?”

잠시 어안이 벙벙했던 일행이 약속이나 한 듯 소리내어 웃었다.

엄나무 가지를 넣어 삶은 닭고기가 일미였다. 잘 먹고 잘 놀다가 돌아왔다.

돌아와 생각하니 산토끼를 놓친 것이 못내 아쉽기는 해도, 아무도 그것을 탓한 사람이 없을 뿐더러 오히려, “잘 하셨네요.” 부추기기까지 하던 부인들의 말이 큰 위안이다.

산에는 지금도 산토끼가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산토끼가 도시로 피서 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