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있는 예배당

                                                                                                    金 正 郁

 가을빛 넉넉한 시월의 마지막 주말이다. 되풀이되는 일상의 때로 우중충해진 마음을 돌리려 집을 나선다. 오래된 예배당 뜰 한켠에 그만큼 농익은 세월을 버티고 있는 은행나무를 보기 위함이다. 그 교회 뜰 가장자리에 우뚝 선 은행나무를 생각하기만 하면 가슴이 설렌다. 은행나무를 처음 본 지난 가을날의 기억 때문이다. 그 즈음에 나는 단 한점 혈육인 딸아이를 이국 땅에 홀로 떠나보내어 찬바람 넘나드는 가슴으로 지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문득 안동에 있는 그 예배당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안동에는 시댁의 선산이 자리하고 있다. 아이의 증조부가 기독교를 믿고 목사직을 수행하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그 예배당은 성악가로 활약하였던 아이의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 음악 공부를 위해 이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찬송가 반주를 하며 섬기던 곳이다. 시댁 뿌리가 안동이기 때문에 세월이 흐르면서 아무리 다른 곳으로, 먼 이국 땅으로 흩어지더라도 우리는 그 오래된 도시를 잊지 못할 터이었다. 이러저러한 까닭으로 이따금 마음에 티끌이 쌓일 때면 발 디디고 있는 땅의 뿌리를 찾듯 안동을 찾고, 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곤 하였다. 우리를 지켜보며 굳건하게 자기 뻗기를 바라는 조상의 자취가 그 땅 어딘가에 배어 있음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고국을 떠나기 바로 전에도 우리 가족은 함께 성묘를 하였다. 또 그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렸다. 부모와 함께 했던 마지막 성묘와 예배의 순간을 아이가 기억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낯선 곳으로 떠나 보낸 아이의 마음이 조상의 자취와 함께 스며 있을 듯한 그곳은 어느 틈에 우리가 즐겨 찾는 여행 목적지가 되어버렸다.

안동을 향해 가노라면 아이와 함께 했던 흘러가버린 날들의 추억이 햇살처럼 마음을 녹이게 된다. 아이의 해맑은 얼굴 표정과 보드라운 웃음소리, 가볍게 또는 진지하게 나누던 이야기들과 몸짓들, 스치고 닿던 따뜻한 살갗……. 분명히 얼굴 붉히고 목소리 높이던 때도 있으련만 우리가 같이 머물렀던 순간순간들은 눈부신 반짝임으로 우리의 가슴에 살아나게 된다. 그러면서 멀리 떨어져 있는 아이가 우리와 함께 있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1900년대 초에 지어졌다는 그 예배당 마룻바닥은 발 디딜 때마다 삐걱거렸다. 숨 죽이며 조심스레 걸어야만 하였다. 갈색 나무로 만들어진 높다란 천장과 낡은 벽은 세월의 무게를 버티어내면서 더욱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된 듯하였다. 예배는 서서히 울려퍼지는 오르간 소리와 성가대가 부르는 은은한 찬송가 속에서 시작되곤 하였다. 영혼을 어루만지는 듯한 음악 속에 파묻혀 있노라면 거친 들과 같은 세상살이에서 일어난 마음 속의 드센 물결이 찬찬히 가라앉곤 하였다.

아이를 이국으로 떠나보낸 다음 주일에도 발길이 저절로 그곳을 향하였다. 오르간 소리로 시작되는 예배를 드리면서 거칠게 출렁이던 마음의 풍랑이 잔잔해졌다. 비어진 아이의 자리 때문에 아팠던 가슴이 평안해지는 것이었다. 그때까지의 가슴앓이는 단지 눈앞에 없는 아이가 보고 싶다는 나의 이기심과 함께 있던 지난날에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지 않았다는 후회 때문이었다. 나는 온전히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된 이기적인 아픔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어미의 품을 떠난 아이는 홀로 세상과 부딪혀가면서 자신의 모난 부분이 부서지는 아픔을 맛보아야 한다. 낯선 땅에서 제자리를 지켜 굳건히 서기 위해서는 전능하신 신에게 더욱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가슴 속에 간직한 꿈이 이루어지도록 숱한 불면의 밤들을 밝혀가야 할 터이다. 시아버님과 다른 가족들이 일찍이 그러했듯이, 아이도 이국에서의 외로운 나날을 견디어내야 할 것이다. 그 모든 일들이 성숙한 사람의 인간이 되기 위한 것임을 깨닫고 나는 저절로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평안해진 마음으로 예배당을 나서면서 나는 한 그루 은행나무를 보게 되었다. 고색 창연한 예배당 건물 옆 뜰에서 오랜 세월을 묵묵히 견디어낸 거목이었다. 나무는 때마침 가을날의 맑은 햇빛을 받아 눈부신 황금덩어리로 빛나고 있었다. 무수한 잎사귀들은 한껏 펼쳐진 푸른 하늘을 노래하듯 제각각 반짝이었다. 바람결에 쉴새없이 팔랑이다가 이따금 우수수 떨어지기도 하였다. 낙엽들은 황금 카펫처럼 땅 위를 덮기도 하고, 함성을 지르듯 뒹굴기도 하였다.

보고 있는 마음을 황홀경으로 채워가면서 은행잎은 반짝이고 흩어지고 쌓이고 땅바닥에 펼쳐지는데 큼직한 나무둥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발길이 저절로 은행나무 아래로 빨려들어가 나는 한참이나 은행나무 밑에 서 있었다. 그리고는 마음 속에서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헤어져 만나지 못하는 순간이라도 믿음의 뿌리에서 갈라진 나뭇가지처럼 교통하고 있다는 것을……. 시아버님을 아이가 할아버지라 부르고 남편이 아버지라 부르듯, 우리는 한 핏줄로 서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우연일까, 식목일에 태어난 이 아이가 이제 한 그루 제대로 자란 나무로 되기까지에는 어떠한 풍랑도 묵묵히 견디어내어야 한다는 것을…….

내가 아이에게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일은, 믿는 마음으로 지켜보며, 나 또한 흔들리지 않는 나무처럼 서 있는 것이다. 그저 든든하게 뿌리내린 한 그루 나무와 같은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이제 세월이 흘러 아이는 주어진 생활에 나름대로 적응하는 듯하다. 내가 곁에서 볼 수는 없지만,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꿈꾸며 홀로 떨어져 있는 오늘을 가꾸어가고 있을 것이다. 잎과 가지가 한 나무의 뿌리로 이어져 있음을 알고 마음의 평안을 얻을 것이다.

그런 생각들로 인해 우리가 헤어져 있는 시간이 제법 견딜 만하게 되었다. 아이가 아주 보고 싶을 때면 가을 무르익어가는 어느 날, 함께 예배드렸던 교회를 찾아가면 될 것이었다. 그리하여 어느새 나는 가을을 맞게 되면 은행나무 있는 예배당을 그리며 기쁘고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