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개를 보며 생각한다

                                                                                              金 秉 圭

 소리개 한 마리가 앞 동 아파트 옥상 피뢰침 세 가닥난 곳에 앉아 있었다. 나는 내 아파트 베란다에 앉아 거의 같은 눈높이에 있는 소리개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소리개는 퍽 가까운 곳에 있어 샅샅이 관찰할 수 있었다.

그 전엔 거기 어쩌다가 까마귀가 와 앉는 때가 있었다. 그럴라치면 까치들이 몰려와 야유를 하는 일이 많았다. 사람들에 쫓겨 자취를 감춘 까마귀가 이젠 까치에 시달리는가 싶어 처량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소리개가 앉고 보니 까치들도 조용했다. 가까이서 본 소리개의 앉음앉음은 되레 초라하지만, 그게 매과라는 데 한풀 꺾인 걸까 싶었다.

소리개는 몸을 곧추세우고 머린 약간 좌우로 돌리곤 하지만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걸 지켜보고 있으니 아마 사람도 그만큼 앉아 있기란 어려운 일 같았다.

그쯤 되면 이놈은 무얼 생각하고 있는 것같이 보였다. 그렇지 않고야 그리 조용히 있을 수가 없을 것이었다.

기러기 떼가 백 마리도 넘게 지나가도, 그리고 뒤늦게 외기러기가 같은 방향으로 날아가면서 무릴 따르려고 안간힘을 써도 소리개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질 않았다.

인간만이 생각한다고 인간은 자부하고 있으나, 적어도 한 시간도 넘게 그곳에 앉아 있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었다. 그놈은 확실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같이 보였다. 인간의 경우와 무엇이 다를까 여겨지기도 했다.

새들의 생활은 우리가 생각하듯이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고 어릴 적엔 위험에 겁먹은 마음이 있고, 자라서는 사랑의 노래도 부르고, 자리싸움도 벌리고, 또한 그러는 사이에 종류가 다른 작은 새들 간의 우정도 있다고 한다.

여느 작은 새들 같으면 언제 적의 습격을 받을는지 몰라 항상 전전긍긍할 것이지만, 소리개는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 태도는 태연자약할 수가 있어 그렇게도 점잖게 앉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란 거기에도 그의 특권이랍시고 새들에게까지 생각을 강요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리개가 더러는 머릴 약간 갸우뚱거리기도 하는데, 이건 어쩌면 그렇게 애교가 넘치는 걸까 싶었다. 그건 사람이 생각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하는 모양새와 흡사하였다.

한편 나는 소리개는 실은 조용히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앉아 있을 것이란 추측도 해보는 것이었다. 그처럼 평온한 자세를 취한다는 것은 그저 까다로운 생각을 떨어뜨린 채 푹 쉬고 있는 것은 아닐까도 싶었다. 아파트 뒤가 낮은 산이라 거기가 놈의 영역일진대 거기서 먹이 사냥을 하다가 여기 와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 편안한 자세는 어떤 생각의 무게가 엿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놈은 이젠 산새라기보다는 도시새라 하여도 무방할 것이고 보면 인간이 새들의 관찰에 위안을 얻고 있은 요즘의 상황에서 이놈은 되레 이 틀을 넘어서 인간의 관찰을 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또한 새들의 생존을 위한 길일까도 싶었다. 그 침착한 태도가 나를 사로잡는 것이었다. 요즘처럼 덤벙대는 인간의 경거망동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하루는 산 속을 걷고 있는 나의 시선에 소리개가 포착되었다. 소리개는 다리 밑에 무엇을 달고 있었는데, 날아가다가 그걸 떨어뜨리고 잽싸게 도로 잡는 것이었다.

고양이가 쥐를 풀어주어 쥐가 달아나는 걸 도로 되잡는 광경을, 공중에서 연출하는 것이 퍽 인상적이었다. 소리개도 먹이를 가지고 공중에서 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그건 물론 혼자 좋아서 하는 일이었지만 사람더러 보라고 하는 성싶었다.

소리개는 피뢰침 위에 앉아서 어떤 형식이든 생각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였다. 그의 태도에서 나는 생각한다는 것이 무얼까 하고 켕기는 것이었다. 소리개가 오히려 인간에게 과제를 안겨주는 셈이었다.

작가가 되면서 가장 좋다고 여기게 된 것은 어떤 것에 대하여 오랜 시간을 거쳐 생각하게 되었다고 술회하는 어떤 작가의 말이 나에겐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그는 간단한 글을 쓸 적에도 이를 골똘히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잡아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으면 하루나 한달이 쉬 지나간다. 이건 오로지 자기 만족 속에 잠기는 것이긴 하지만, 여느 사람의 눈도 사는 방식도 개의치 않아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다.

‘생각하는 갈대’라고 한 파스칼은, 자연이 인간을 죽이려면 김 한방울을 가지고서도 가능하지만, 인간은 자연보다도 더 위대하다는데 그것은 자연은 스스로 죽는 것을 모르지만 인간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리하여 ‘생각이 인간의 위대함을 만든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인간의 존엄함의 모든 것은 생각 안에 있다. 그러나 이 생각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일까’도 파스칼은 말했다.

생각이란 그리 쉬운 것일까. 생각한다는 것은 괴로운 작업이다. 그러길래 생각한다는 것이 존엄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만일 생각도 하지 않고 바보처럼 멍하니 앉아 있으면 즐거울까. 꼭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 마음을 채울 수도 없는 멍한 자세에서 우린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괴로워도 살아가듯이 괴로워도 생각하는 것, 거기에 인생의 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생각’은 얼마나 많은가.

피뢰침 위에 앉아 있던 소리개는 기어이 날아갔다. 갑자기 큰 날개를 펄럭이면서 날아가 황혼에 자취를 감추었다.

귀로에 든 소리개의 날개짓은 경쾌했다.

 

 

김병규

현대수필문학 대상 수상. 법학박사.

저서 『법 철학의 근본 문제』, 수필집 『목필로 그린 인생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