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이 피었습니다

                                                                                                   변 해 명

 오늘도 그 신사는 내 앞에서 산을 오르고 있었다. 여러 등산객 속에 섞여 가고 있었지만 전과 다름없는 감색 양복에 검은 신사화를 신고 있는 것이 제일 먼저 내 눈에 들어왔다.

내가 그를 기억하게 된 것은 그의 모습이 ㄱ님의 뒷모습을 너무 닮고 있어서였다.

지난 일요일 아침 4·19 공원에서 벤치에 앉아 있는 그의 뒷모습을 처음 보았는데 그때 나는 내가 잘 아는 ㄱ님이 앉아 있는 것으로 알았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부지런히 그가 앉아 있는 벤치 근처까지 다가갔었지만, ㄱ님이 이른 아침 자기 동네도 아닌 이곳까지 출근하는 복장으로 와서 앉아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조급한 마음을 달래며 짐짓 연못을 한 바퀴 돌며 그가 앉아 있는 정면 쪽으로 내려가 보았는데 그는 ㄱ님이 아닌 낯선 신사였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한 듯한 고지식하고 점잖은 반백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도 ㄱ님의 처지와 같을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의 곁에 앉아 인사라도 나누고 싶은 친근감을 느꼈지만, 그의 시선이 앞으로 걸어 오는 나의 모습에도 아랑곳없이 먼 산만을 향하고 있어서 그냥 그 사람 앞을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껏 잊고 지내온 ㄱ님을 생각하며 민망하고 부끄러운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이런 곳에서 ㄱ님을 만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한지 몰랐다.

한창 일할 나이에 직장을 떠나야 한 사람이 요즘 어찌 ㄱ님뿐이겠는가만은 그의 퇴직은 억울하고 납득이 가지 않는 느낌이 들게 하는 그런 퇴직이어서 둘레 사람들의 마음도 아프게 했다.

매사에 정확하고 공정하며 합리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로 일하던 사람, 그는 언제나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신뢰와 사랑을 받던 사람인데, 그런 자신의 장점이 상사의 허물로 함께 직장을 떠나게 되는 계기가 될 줄이야.

나는 그의 능력이 아깝고, 그의 침묵이 야속하고 가장으로 한 가정을 염려해야 하는 그의 나날이 얼마나 힘겨울까 연민의 정을 느끼면서도 그를 찾아가 위로와 격려를 주지 못하는 것은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힐까 염려되서였는데, 그러면서 차일피일 미룬 것이 벌써 반년이 넘었다.

그런 ㄱ님의 생각 때문에 그 신사가 내 기억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그 신사는 아주 천천히 산을 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의 뒤를 따라 오르면서 그처럼 걸음이 느려졌다. 그러면서 그에게서 시선을 뗄 수 가 없었다. ㄱ님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전화 걸기를 미루고 있는 마음을 나는 그 신사의 그늘 속에 숨기며 숨어서 ㄱ님을 지켜보려는 마음에서일까.

왜 갑자기 진달래도 피지 않은 산에서 꽃문둥이 생각을 하게 된 것인지는 나 자신도 알 수 없지만, 그 신사의 뒤를 따르는 내가 꼭 꽃문둥이가 된 기분이었다.

어린 시절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면 아이들은 진달래꽃을 꺾으러 산으로 가곤 했다. 그러나 산으로 가는 모두는 어김없이 아이들을 잡아간다는 꽃문둥이 이야기를 하며 가는 것이어서 산에 오르는 날은 두려움과 설레임으로 가슴이 뛰는 것이었다.

그러나 진달래꽃 덤불을 바라보는 순간 문둥이 생각은 잊고 꽃 속으로 뛰어들던 아이들.

꽃을 따서 입에 넣을 때도 어딘가 숨어서 나를 잡아갈 꽃문둥이 생각을 해보지만, 그러나 눈앞의 꽃밭은 꽃을 따고 싶은 충동을 막지는 못했다.

꿀 항아리에 파리가 앉아 꿀을 빨기 시작할 때는 주위를 경계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꿀을 탐닉하다 날개와 다리를 빠뜨리고, 몰입하며 빠져들 때도 자신은 죽어가고 있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나도 진달래 꽃술에 꿀을 빠는 동안 나를 지켜보는 꽃문둥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꽃덤불을 벗어나려 할 때 숨어 있던 꽃문둥이가 내 목덜미를 잡았고, 그때야 비로소 두려움에 울음을 터뜨리며 덤불을 헤집고 도망쳐 산을 내려오는 것이다. 하지만 불붙는 진달래 산은 바라보기만 해도 다시 오르고 싶도록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꽃덤불에 숨어 있는 꽃문둥이, 그래서도 더욱 설레임으로 꽃덤불로 다가가는 아이들, 꿀속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다리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은 파리 자신이 아니라 그 둘레를 날고 있는 파리일 것이지만, 아이들은 꽃문둥이를 두려워하면서도 산에 오르는 것은 꽃이 거기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나는 신사를 따라 오르며 진달래꽃이 없는 산은 저 신사나 내게 고통의 산일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예전에 나처럼 진달래꽃 덤불로 뛰어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는 아직도 꽃밭의 미련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유혹에서 벗어나 초연해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더 큰 광야를 염두에 두고 작은 고난의 광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난 해방과 자유를 조금씩 익혀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도심에 길들여진 자신을 두려워하면서 자연으로 진입해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웬지 그의 앞으로 나서서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는 꽃밭을 벗어난 자유를 누리기를 바라는 나의 마음과는 달리 꿀 항아리에서 좀더 머무르기를, 그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나의 생각 속에서 빠져 나왔을 때 그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고, 그를 잃은 나는 다리에 힘이 빠져 산을 오를 수가 없었다.

내일 그 신사는 4·19 공원 벤치에서 오랜 시간 인수봉을 우러르며 앉아 있을지 모른다. ㄱ님의 뒷모습을 담고, ㄱ님의 생각과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러다 또 진달래가 져버린 산을 오를지도 모른다.

나는 산을 내려오면서 되뇌여본다. ㄱ님에게 꼭 전화를 걸어야지, 그리고 그의 음성을 들어봐야지. ㄱ님의 음성은 저 신사의 음성보다 많이 자유로워 있을 거라고, 그랬을 때 나는 그 신사의 이야기를 하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