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 만들기

                                                                                           金 星 源

 안방 머리맡에는 삼면이 거울로 된 앉은뱅이 경대가 있다. 금조개 껍질로 만든 자개들이 박혀 있는데, 구름도 몇 점 떠 있고, 봉황 두 마리가 서로 마주 보며 날개를 마음껏 펼친 모습도 보여 준다.

경대 위에는 흰색, 살색, 풀빛 그리고 하늘색 등의 옥으로 만들어진 자그만한 보석곽들이 있고, 그 옆에 작은 액자 하나가 얌전히 서 있다. 철로 만들어진 이태리산인데, 사방이 잎사귀 모양으로 마주 보며 둥글게 꼬아져서 산에서 나는 고사리머리를 닮았다. 그 안에는 일부러 색깔을 낸 예술 사진처럼 엷은 갈색으로 바래버린 옛날 흑백 사진 한 장이 유리 밑에 끼워져 있다.

정확히 가로가 6.5센티, 세로가 9센티밖에 안 되는 크기 안에 어린 오누이가 조금은 긴장된 표정으로 천진하게 서 있다. 사진 뒷장에 ‘4269.1.’이라고 적힌 걸 보면 누나가 아홉 살, 남동생은 네 살 때라고 짐작된다. 금년으로 일흔하나가 된 누나는 나의 형님이 되시고, 예순여섯이 된 동생은 나의 남편이다.

어떤 물건이든지 육십 년이 넘으면 골동품으로 볼 수 있다니 나는 그 사진을 우리 집 골동품으로 간직하고 싶다.

누나는 앞 가르마를 타서 곱게 머리를 빗었고, 치마는 엷고 저고리는 진한 걸 보니 쑥색 저고리에 분홍 치마나 노랑 치마에 다홍 저고리쯤인지 모른다. 치마 앞자락에는 염낭까지 늘어뜨리고 있는가 하면, 발등을 가로 덮은 끈이 달린 가죽 구두도 신었다. 동생은 왼쪽 가르마를 타고 남은 머리는 오른켠으로 넘겼으며, 엷은 분홍색처럼 보이는 바지에 색동 마고자를 입은 모습이 누가 봐도 지금 미국에 있는 여섯 살짜리 손주로 착각할 만하다.

육십 년이 넘게 오래된 사진이라 귀하다는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너도 나도 살기 힘들었던 일제 시대였지만 남달리 그의 집은 가난했다고 한다.

날씨가 추운 섣달 어느 날, 전차를 타고 종로 삼가에서 내려 익선동 집으로 가는 길에 땅에 무엇인가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누나가 얼른 주워 길을 건너는데 어머니가 더럽다고 버리라고 했지만, 그냥 손에 꼬옥 쥐고 따라 걸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뺏어보니 그 시절 가장 싼 오 전짜리 마꼬담배 껍질로 무엇인가 꼬기꼬기 쌌는데, 펼쳐보니 일 원짜리 지전 한 장과 오십 전짜리 동전 하나였다고 한다.

오누이의 사진 한 장은 바로 그 돈으로 마련했다고 한다. 밥도 많이 굶을 정도로 가난했다는데 쌀 장만 안 하고 사진 박아준 어머니가 나는 이해할 수 없는데 형님은 오히려 고맙다고 하신다.

사진 속의 남매는 인물이 훤해 아무리 들여다봐도 부잣집 자식처럼 보인다. 그 옛날 길가에서 줏은 돈으로 남매에게 때때옷 입히고, 구두 사 주고, 사진 찍어줬던 어머니는 벌써 십사 년 전에 하늘나라로 가신 나의 시어머님이시다.

아들 셋, 딸 셋, 육남매를 둔 시어머님이 맏며느리인 내게 주신 물건은 하다못해 은가락지 하나도 없다. 하지만 몇 푼 안 줬을 볼품 없는 바느질 가위 하나가 있다. 가위 날의 길이가 한 뼘이고, 손잡이가 반 뼘이나 되는 무게도 나가는 꽤 큰 가위다. 엄지손가락과 나머지 네 손가락을 끼게 된 둥근 구멍에는 손가락 아플까봐 흰 무명 헝겊으로 둘둘 말았다. 헝겊이 짙은 밤색으로 손때와 녹물이 들다가 삭아서 세 번쯤 두른 천이 한켠에 조금 남았을 뿐이다. 이 무명 천을 마저 벗겨버릴까 어쩔까는 아직 머뭇거리고 있는 중이다.

가위 날이 맞물리는 둥근 못 아래는 도장이 아래위로 두 개 있는데, 위 도장은 吉이고, 久는 아래쪽에 찍혀 있다. 오랫동안 길하라는 뜻인 듯싶다.

가위를 뒤집어보면 나의 시력으로 겨우 보이는 콩알만한 토끼 한 마리가 엎디어 있는데, 이건 또 무슨 뜻인지 궁금해진다. 토끼띠인 나의 셋째 딸을 가장 예뻐해 주시던 생각은 왜 떠오르는지, 어머님이 몇 년이나 쓰시다 내 바느질 그릇까지 들어오게 됐는지 전혀 짐작이 안 간다.

평택이 고향인 시어머님은 열여섯 살 때 두 살 위인 시아버님이 사시는 용인 창말이란 곳으로 시집오셨다고 한다.

어머님은 자그만 키에 얼굴이 작아 예쁜 편이셨고, 조용하고 얌전해서 바로 곁에 오셔도 깜짝 놀랄 만큼 발자국 소리도 내지 않는 분이셨다. 맏며느리인 나는 목청이 크고 수다가 많은 편이라, 혹시 어머니 쪽에서 실수를 했을 경우라 해도 번번히 내 쪽을 고약하게 바라보고들 했었다.

하루는 어머니가 뭔지 보자기에 싼 걸 가지고 오신 적이 있었다. 내가 좋아할 것 같아서 가지고 왔다면서 끌러 보이는데 잘 생긴 분원 사기 술병이었다. 큰댁(종가)에 있던 물건인데 손주들이 그림 그리고 싶어 한다면서 들고 나오셨다고 한다.

그저 얌전하기만 한 어머님이 어떻게 그런 말 수단까지 있으셨는지,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 대목이다. 하기사, 어머님 시집올 때 가지고 온 물건이 왜 큰댁에 있느냐고 내가 아쉬워한 기억이 있긴 하다.

술병은 지금 삼면이 유리로 된 상자 속에 넣어 두고 있다. 어머님은 갑진생이시며, 사셨으면 올해 아흔다섯이니 칠십 년 전 물건이다.

나의 친정에도 이와 비슷한 분원사기 술병이 있지만, 9·28 수복 후 친정 아버지가 인사동에서 구하신 거며, 목이 길고 몸집이 길쭉한데 비해 우리 것은 목이 짧고 몸은 풍만하고 둥글다. 시어머님의 친정 아버지께서 맏딸 결혼할 때 쓰려고 광주까지 가셔서 예쁜 걸로 골라서 주신 거라니, 많은 얘기가 이 병 안에 담겨 있을 것이다.

유리 문을 열고 가만히 술병을 꺼내본다. 매끈하게 생긴 몸통을 조심스럽게 만져보는데 가슴은 왜 이리 시려오는 것일까.  

 

 

김성원

수필공원으로 등단. 수필산책 동인, 부회장.

수필집 『오늘 아침엔 앨가를 듣고 싶다』(98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