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못한 편지

                                                                                             孟 明 姬

 내 집엔 잘 놓은 자수 병풍이 하나 있다. 자수로 유명하다는 중국 소주 지방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하는데 무척이나 섬세하고 아름답다. 자수가 하도 마음에 들어 내 딴에는 꽤 고액을 주고 산 것이다. 각 폭마다 한문 글자도 수 놓여 있으나 무슨 글자인지 알 수가 없어 뜻은 모르는 채, 그저 그림을 받쳐주기 위한 틀에 박힌 미사여구들이려니 생각하며 보아왔다.

얼마 전, 한학에 조예가 깊은 고령의 문우가 왔다. 젊은 시절에 중국에서 오래 살았다는 그는 병풍 앞에 서더니 새털구름처럼 흘린 글자를 술술 읽어내렸다. 그리고 그 뜻을 자세히 풀어 들려주는데, 듣고 보니 각 장마다 그 그림에 대하여 쓴 기막히게 아름다운 한시들이었다. 실없이 건들거린 것만 같은 글자들 속에 그렇게 고귀한 뜻이 담겨져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컴퓨터를 사용하기 전에 펜글씨 학원엘 다닌 적이 있다. 내 글씨가 워낙 악필이라 원고를 보낼 때마다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글씨를 단정하게 쓰면 원고지도 덜 버리게 될 것이고, 원고를 읽을 사람들에 대한 예의도 될 것이란 생각에서다. 그 무렵에 둘째 아이를 낳은 직후라 요리 강사로 다니던 일을 그만두고 집안에서 남편의 음식점 일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한 손님이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나를 불렀다.

“에그 아줌마, 그 나이에 이제 와서 한글은 배워 무얼 하시려고 그러우? 돈이나 셀 줄 알면 그만이지. 여직 배우지 못했던 것을 어느 세월에 익혀 덕을 보겠다고 이 고생을 하시우? 차라리 애저녁에 그만두슈, 그만둬!”

카운터 테이블에 놓아둔 내 공책을 들추어보았던 것이다. 민망해 할 것 같아 그 후 그 손님 앞에서 신문을 읽지 않았다. 펜글씨 학원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처럼 깍두기 공책에 ‘ㄱ, ㄴ, ㄷ, ㄹ…’부터 쓰게 했다. 그 동안 지니고 있던 글씨 습관을 모두 버리고, 좋은 글씨체를 익히기 위함이라 한다.

사부님의 명령이니 열심히 따라 할 수밖에 없었고, 내 연습장을 본 손님은 나를 한글 해독도 못하는 사람으로 여겼던 것이다.

첫 수필집을 낸 후 가장 만나고 싶은 이가 바로 나를 문맹자로 알던 그 사람이다. 모 대기업의 사무 직원이었고, 나보다 서너 살 적어 보이는 남자였는데, 우리가 음식점을 그만둔 후 소식이 끊겼다.

이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졸작이나마 수필집 한 권 전하고 싶다. 요즘은 서당개 3×5년쯤이면 인터넷도 가능하더라고…….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애써 학원에 다녔건만 악필은 여전하고, 그나마도 요즘은 아예 펜을 잡을 기회마저 없어진지 오래다. 초고, 퇴고는 물론이고 송고까지 컴퓨터로 작성해서 PC 통신으로 보내고 만다. 아이들의 학교에서 오는 공지 사항이나 학부모로서의 의견도 인터넷 이메일로 오고갈 뿐이다. 원고지나 편지지를 손으로 메울 일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봉투에 주소를 쓸 일도 없어진 것이다. 60여 가지도 넘는 컴퓨터 글씨체 중에서 가장 멋지고 보기 좋은 것을 고르는 것이 내 글을 읽을 사람에 대한 최선의 배려다.

관공서에 제출하는 서류들도 PC나 타자로 작성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 정확하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악필은 더 악필이 될 수밖에 없고, 육필의 자연도태 시기가 오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없지 않지만, 필체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세상이다.

누군가가 TV 광고 자막을 보며 짜증스런 말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멀쩡한 한글을 이상스럽게 써서 무슨 글자인지 쉬 알아보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일그러지고 기웃거리는 글자를 볼 때마다 공감하는 말이다. 쓴 사람은 멋으로 생각했겠지만. 쉽게 읽어지지 않을 때는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닌 것이다. 악필이든 멋내기이든 자기 혼자 두고 볼 것이 아닌 바엔 남의 눈에 받아들여질 모양을 예측해 보아야 할 것이다.

수필집을 낸 후 많은 편지를 받았다. 내용도 훌륭했지만 글씨만 보고도 수없이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글들이 많았다. 가히 이 시대 최고의 명필이 아닐까 생각되는 편지들도 있었다. 긴 내용을 한 획도 비뚤거나 허술히 그은 것이 없이 쓴 편지들도 여럿 있었고, 한시와 뜻풀이를 같이 써서 보낸 자상한 편지도 있었다. 70대 고령에도 여고생 못지않게 섬세하고 예쁘게 쓴 글도 있었다. 읽을수록 깊은 정을 느끼게 하는 편지들이다.

몇몇은 내 수준이 따라가지 못할 글들도 있어 몹시 난감했다. 지금까지 정서나 활자로 된 한문을 읽는데는 별로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지냈다. 그러나 초서로 날려 쓴 한자를 읽는 일엔 자신이 없다. 며칠을 두고 퍼즐을 맞추듯 요리조리 맞추어 보기도 하고, 숨은그림 찾기를 하듯 획을 그은 순서를 따라 그려보았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 글자가 있었다. 까막눈에게 편지가 오면 이집 저집 들고다니며 읽어달라고 한다더니, 내가 꼭 그 꼴이 되고 말았다.

컴퓨터에 들어가 찍어보려 해도 획을 알 수 없으니 읽어지지가 않고, 큼직한 옥편도 무용지물이었다. 알 만한 지인들에게 물어보았으나 읽어내는 이가 없다. 중국 병풍을 읽어 주던 노인이나 만나면 물으리라 했지만, 궁금증이 풀리기 전까지는 마음이 개운할 수가 없다.

어찌하여 이리 귀한 글을 보내셨을까. 달필임은 알겠으나 내 눈엔 흰 종이 위로 먹물 묻은 봉황이 꼬리를 휘두르고 지나간 것처럼만 보이니 이를 어찌하랴. 바느질이나 하고 있는 범부가 무예 그리 유식하리라 믿었을까. 졸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도 읽고 친절하게 소감을 써 보낸 편지였으니,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여자라는 것은 알았을 터, 하는 일이 많은 사람이라 한학에도 능하리라(?) 착각을 한 것 같아 송구함이 그지없다.

스물너댓 살 무렵에도 요즘처럼 편지를 많이 받은 적이 있었다. 모 여성 월간지의 현상 수기 공모에 당선되었을 때였다. 전국에서 수많은 독자들이 편지를 보내왔는데, 그때에도 지금과 똑같은 고민거리가 있었다. 한글을 너무 휘갈겨 써도 초서 한자만큼이나 읽어내기가 어렵다. 지금은 그래도 나이가 50줄에 들었다고 시력 핑계나 대며 아무에게나 물어본다지만, 그땐 자존심에 그렇지도 못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일상 생활에서는 늘 당당하고 자신감이 있었다. 내가 걷고 있는 바느질 분야에서 만큼은 국내 정상까지는 못 되더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능선이나마 오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도 없지 않았다. 명성을 날리지는 못했다 해도 나름대로 장인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가는 삶이었다. 그러나 읽을 수 없는 편지 앞에서 나는 어쩔 수 없는 백치일 수밖에 없다.

읽지 못한 편지, 그래도 거기에 깊은 정이 가는 것은 병풍 속의 한시처럼 깊은 뜻이 숨겨져 있음을 짐작하기 때문이다. 글자는 몰라도 마음으로 읽으며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맹명희

수필문학으로 등단.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수필집 『우렁각시의 노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