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료작 -

삽시섬

                                                                                                   한 원 준

 삽시섬에서는 바다가 열린다.

신화나 전설처럼 너무 신비하고 은밀한 일이기에 그것에 대해 말할 때 우린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여야 한다. 쉬잇, 쉬! 세상이 알지 못하게 작은 소리로 소곤거려야 한다.

깊은 밤, 세상이 꽁꽁 잠들어 고요해지면 물 속에 깊이 감추어진 땅이 모습을 드러낸다. 전설마냥 바다가 열린다.

아침에 어부를 따라 바다에 나갔다가 점심 먹고 배를 몰아 돌아올 때까지도, 해질녘에 한 바퀴 섬을 돌아보며 조개랑 게를 주워담을 때까지도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땅이 속살인 알몸 그대로 멀리 줄로 뻗어 드러난다.

그 은밀한 땅의 속살 위에는 놀라 잠이 깬 바닷 생명들이 어찌된 일인지 몰라 두려움에 펄떡펄떡 뛰며 물을 찾는다. 그러나 지금까지 자기들이 덮고 있던 바닷물은 간 곳이 없고, 여과되지 않은 두려운 달빛만 싸늘하도록 파랗다. 그러면 삽시섬 어부의 아낙들과 어부의 어미들은 잠을 설치고 일어나 대소쿠리를 찾아 들고 열린 바다, 육지의 속살을 향해 달려나간다. 그리고 아직도 얼빠진 생명들을 주워담는다. 미역, 소라, 조개, 새우, 망둥이 그리하여 다른 생명으로 자신과 가족들의 생명을 연장하려 든다.

늘 가리고 있던 몸, 그 비밀스러운 곳을 인간에게 밟히고 보여진 땅은 화가 나 성급히 물의 옷을 다시 입는다. 그 전에 사람들은 소쿠리를 챙겨 섬으로 달려나와야 한다. 자칫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가는 놀란 입을 다물지도 못한 채 물 속으로 빠져들고 말 테니까. 그래도 정신을 놓고 바닷 생명들을 주워담던 사람들은 물에 밀려 허겁지겁 달려나오기도 한다.

삽시섬은 세상의 가장 은밀한 곳, 그래서 늘 감추고 가린 채 생명을 잉태하는 어머니의 자궁이다. 아낙네들이 자신의 젖가슴과 사타구니를 꼭꼭 가리듯, 땅은 삽시섬을 감추고 있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의 아낙들이 어쩌다 속옷을 몰래 벗고 밑물을 하듯, 물의 속옷을 벗고 바람을 쏘인다. 행여 누가 볼세라 조심스레 옷을 벗고 시원한 바람에 감추어진 깊고 은밀한 몸의 구석을 말린다.

삽시섬은 모든 생명의 자궁, 생명의 씨앗들이 처음 숨을 쉬고, 처음 눈을 뜨고, 처음 손가락을 움직여 보는 맨 처음의 고향이다. 그리하여 세상 모든 생명을 탄생시킨 자연의 어머니이다.

삽시섬의 밤은 어머니의 몸처럼 신성하고 눈부신 아름다움을 가졌다. 드러내고 보지 못하는, 언제나 훔쳐보는 듯한 안타까운 고귀함으로 목이 탄다. 삽시섬의 달빛은 어머니의 화장대처럼 함부로 손댈 수 없는 경건한 조화로움이 있다. 소박하고 낡은 그래서 거칠고 성급한 텔레비전 뉴스와는 동떨어진 게으른 풍경으로 놓여 있다. 바다가 열리지 않을 때에는 탯줄처럼 달빛으로 금빛 선을 물 위에 그리고, 그 금빛을 먹고 자란 생명들이 매일 밤 어미 품을 떠난다.

바닷물까지 신성한 삽시섬에선, 밤마다 다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 갯바위에 올라앉아 바다를 자세히 바라보고 있으면 물 위까지 튀어오르는 살아 있는 것들의 모습이 보인다. 어머니의 품을 떠나기 싫어하는 생명들의 칭얼거림이 들린다. 그래서 삽시섬에는 한 번도 완전한 침묵은 없다.

스치는 바람까지 성스러운 삽시섬에선, 섬사람들도 모두 바위와 나무를 닮아 있다. 세월이 흘러가도 하나도 변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삽시섬처럼 모든 생명들을 감싸고 돌볼 줄 안다. 그래서 움막 같은 그늘의 집안에도 모든 것들이 살아 있다. 어머니께서 지워놓은 방 안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해도 푸근한 것처럼, 삽시섬에 찾아가면 아무 짓도 하지 않고 히죽히죽 반쯤 웃는 얼굴로 며칠이고 머물 수 있다.

삽시섬은 여자들의 섬이다. 이곳이 세상의 자궁이기에, 생명을 잉태하고 해산하는 곳이기에, 남자들은 힘을 쓰지 못한다. 그저 낮이면 햇볕 잘 드는 곳에 두 손을 사타구니에 끼고 쪼그려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밤이면 방구석에 모로 누워 코를 골기도 한다. 나도 삽시섬에 가면 어머니의 자궁에서처럼 경건하고 여려진다. 언제나 처음인 것처럼 순결해진다.

삽시섬은 어머니의 땅, 어머니와 어머니가 될 수 있는 아낙들만 생명으로 살아, 갯벌을 파고 긁어 삶을 줍고, 섬 가운데 언덕에 밭이랑을 파고 씨를 뿌려 생명을 키운다. 그래서 아낙들의 목소리도 사내들보다 더 크고, 우물가에서 흰 허벅지를 드러내며 뻘흙을 씻을 때도 부끄럽지 않다. 햇빛처럼 하얀 거품으로 드러난 웃음을 웃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아낙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없다.

쉬잇 쉿, 오늘 밤 삽시섬에는 다시 두터운 치맛자락 같은 바다가 소식도 없이 열리고, 늘씬한 아낙의 다리 같은 긴 흙길이 드러나면, 인간의 어머니, 여인들만이 열린 바다로 달려가 은밀한 자연의 자궁을 뛰고 뒹굴고 밟는다.

쉬잇 쉿, 삽시섬에는 어쩌다 깊은 밤에 바다가 열린다. 생명의 땅이 옷을 벗는다.

 

 

 

-천료소감-

 

우선 부족한 나의 글을 선택해주신 계간 수필과 수필문우회 심사위원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 동안 나는 늘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병이라기보다는 중독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중독, 읽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쓰기 시작했던 이 중독증은 꽤 오래 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써야만 하는 스스로가 바보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스스로 보아도 때로 다른 곳을 헤매는 것 같은 글 때문에 실망하고, 기가 죽으면서도 쓰지 않고 못 배기는 그런 오랜 습성.

압니다. 누군가 너는 이제 수필이란 글을 써도 좋다는 허락을 해주었다고, 당장 내 스스로를 수필가라고 부를 만큼 잘난 글이 써지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쯤은. 이제 난 작고 겸손한 글을 쓰리라고 스스로에게 강요해 봅니다.

그러나 먼저, 기분이 좋습니다. 어디론가 멀리 떠났다가 와야겠습니다.

 

 

한원준

서울 출생(1957). 현재 민중서림에 근무.

저서 『감골에서 온 편지』, 『불임의 땅』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