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료작-

그림 이야기

                                                                                     김 희 재

 고운 눈발이 희끗희끗 소리도 없이 내리는 밤이다.

한껏 부풀어 터질듯한 둥근 달을 배경으로 소담스레 흰 꽃을 매달고 있는 매화등걸에 앉아 머리를 맞대고 끝모를 속삭임을 나누고 있는 참새 두 마리의 모습이 마냥 정겹다. 분명히 눈이 오고 있는 겨울 풍경인데도 전혀 춥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춥기는커녕 오히려 포근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단아한 풍경화는 설한풍 속에서 봄의 입김을 느끼게 하는 종교적인 명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는 다름아닌 우리 집 거실에 걸려 있는 한 폭의 한국화 이야기이다.

아직은 무명에 가까운 젊은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완성을 했다는 이 그림이 유독 내 맘에 든 것은, 거의 무채색에 가까운 매화등걸과 휘영청 밝은 달빛의 차분함 속에 어우러진 새들이 만들어낸 사랑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약간 수줍은 듯이 서로 고개를 살짝 숙이고 닿을 듯 말 듯한 거리를 두고 앉은 새들의 함초롬한 자태는 그 자체가 곧 사랑이고 신뢰였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내 눈에 그렇게 보였다는 말이다.

어떤 추위도 다 녹여낼 만한 뜨거운 사랑에 빠져 있으면서도 결코 선정적이지 않은, 노골적인 에로물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첫사랑의 정갈한 설레임 같다고나 할까.

사랑에 도취한 것은 비단 참새들뿐만이 아니었다. 늘 외롭게 빈 하늘을 지키고 있던 달과 속절없이 그저 피었다 지고 말았던 매화등걸도 이 화폭 안에서는 자연스레 사랑에 동화되어 전체가 다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다.

이 그림만큼은 절대로 팔지 않고 평생 자기가 소장하려고 했다는 작가. 그럴수록 더욱 갖고픈 게 사람의 마음이었다. 간신히 그를 설득해서 사다가 거실 중심 벽에 걸어놓고 우리 집을 찾은 사람들에게 내 나름의 해석을 곁들여가며 그림 소개를 할 때면 나는 더없이 행복했다.

꿈보다 해몽이랬던가. 나의 환상적인(?) 그림 해석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해줄 때 내가 느끼는 것은 기쁨 그 이상의 것이었다. 물론 내가 그림 속에서 찾아낸 사랑 이야기는 다분히 그런 아름다운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는 자기 암시적인 바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칠순을 넘기고나서부터 부쩍 아픈 곳이 더 많아진 친정 어머니가 모처럼 다니러 오셨다. 나는 습관처럼 자연스레 그림 속의 사랑 이야기를 꺼내었다.

“저 그림 속에 있는 새들이 꼭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얘기? …무슨 얘기?”

어머니는 별 희안한 소리를 다 듣는다는 양 힐끗 한 번 그림을 올려다 보시고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다. 나도 굳이 노인네와 함께 사랑타령을 할 마음은 없어서 자연스레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날 저녁, 내가 강의 준비를 하느라 늦도록 컴퓨터에 매달려 있는데 초저녁에 깜빡 한잠을 주무신 어머니가 성경을 들고 나오셨다.

“저 새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이제 알겠다.”

조그만 탁자 앞에 앉아 열심히 성경책을 소리내어 읽으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생각이 난 듯 내게 말했다. 돋보기를 콧날 아래로 밀어내리고 안경 너머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뚫어져라 그림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표정은 진지하다 못해 엄숙하기까지 했다.

“에고, 우린 이제 죽었네. 날도 추운데 눈까지 이래 오고…….”

어머니는 내가 사랑의 세레나데를 연상했던 그림 속에서 허망하고 슬픈 종말의 비애를 찾아내고 계셨다.

“그래… 더 늦기 전에 우리 작별 인사나 미리 하자. 그 동안 참으로 고생 많이 했는데… 부디 잘 가라. 나도 곧 갈 테니…….”

어머니는 정말로 그렇게 쓰여 있는 대본을 읽고 계신 것처럼 목소리에 가느다란 떨림까지 섞어가며 실감나게 표현을 하셨다.

처음에는 그저 어이없어 하며 그 이야기를 들었는데 갈수록 왠지 모를 연민이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올랐다. 같은 그림을 보고도 모녀간에 이렇게 다른 해석을 할 만큼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가 다르다는 것이 제일 내 가슴을 저리게 만들었다.

무엇이 어머니로 하여금 그렇게 슬픈 상상을 하게 만들었는가. 나라가 가장 어려운 시절에 태어나 온갖 풍상을 다 겪은 세대이기 때문일까. 모성애란 이름으로 끝도 없는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살아온 사람의 노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 역시 허망함과 절망이란 사실이 너무도 슬펐다.

하지만 어머니는 슬픈 기색도 없이 마지막 순간을 향해 서서히 가고 있는 외롭고 황폐한 노년의 절망을 그림을 보며 담담히 풀어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생각을 부인하고 싶었다.

“아녜요. 재들은 지금 달밤에 데이트 하고 있는 거예요.”

“너는 참… 곧 얼어 죽을 새들이 그렇게 한가한 줄 아니?”

내 말에 강하게 반발하는 뜻으로 코에 걸쳤던 안경까지 벗어 손에 들고 정색을 하시는 어머니의 표정은 자못 단호해지셨다. 나는 더 이상 우기지 못하고 그만 입을 다물어버렸다.

잠자리에 드느라 틀니를 빼버렸는지 아랫입술이 입 속으로 쏙 말려들어간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것 자체가 내게는 아픔이었다. 어느 틈에 이렇게 많이 허물어져 내리셨는지…….

나는 슬그머니 컴퓨터 화면을 향해 돌아앉았다. 어머니는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웅얼웅얼 성경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무슨 소린지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없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자꾸만 목이 메이고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약한 존재였을 때는 당신의 몸을 다 던져서 나를 사랑으로 보호해 주셨던 어머니. 그런데 나는 지금 그분에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돌아앉아 소리 죽여 흐느끼고 있을 뿐…….

그 후로는 누구와도 섣불리 그림 이야기는 하지 않게 되었다.

 

 

 

- 천료소감 -

 

젊은날의 소용돌이치던 모든 감정들을 다 흘려보내고

어느 시인이 말했던,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은 얼굴로

그저 담담히 글을 쓰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삶의 모퉁이를 한 구비씩 돌 때마다

겉사람은 비록 후패해져도 내면의 모습은 날로 빛나는

그런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추천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 더욱 열심히 작품을 써서

많은 사람의 가슴 속에 깊이 새겨지는 꽃이 되고 싶습니다.

 

 

김희재

인천 출생(56년). 화랑문예전 동인회 회장.

현재 대전 YMCA 어학아카데미 부원장.

인천 인화여고 교사, 미국 탈라하시 한글학교 교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