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회 -

기적 소리

                                                                                  梁 留 美

 기적 소리를 들을 때면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오른다. 서울에서도 도심(都心)에 살고 있으니 기적 소리가 날 리 없건만, 잠이 갠 한밤중이나 비 오는 새벽녘에는 가끔 그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멀리서 들려오는 경적이겠지만 내겐 영락없이 기적 소리처럼 들리니 이상하다.

그 소리는 나를 늘 유년 시절로 데려간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대전에서 살던 우리는 오빠들과 나만 할머니 댁이 있는 두계로 피난을 갔다. 금방 따라오마던 부모님은 오지 않고 어머니가 늑막염을 앓고 있다는 소식이 인편에 들려왔다.

나는 그날 밤 걱정을 하다가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시커먼 그림자가 고추밭에서 칼을 꼬느고 달려드는 악몽에 시달리다가 소스라쳐 깨었다. 사방은 칠흑같이 캄캄한데 어찌나 놀랐던지 등은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그때 어디선가 뚜우~ 하고 캄캄한 어둠을 가르고 기적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어머니 얼굴이 떠오르고 그분이 그리워진다.

어머니를 떠올리면 뒤따라오는 모습이 있다. 그저 빌고 또 비는 모습이다. 어머니는 무던히도 치성을 드렸던 것 같다. 부뚜막에서, 아니면 캄캄한 밤에 장독대에서 정화수 한 그릇을 떠놓고 촛불에 소지(燒紙)를 태워 올리면서 손바닥에서 소리가 나도록 빌었다. 그때만은 평소에 말씀이 없던 어머니가 그럴 수 없이 달변가가 되었다.

“나이, 생월, 생시, 이름은…….”

마치 누구에겐가 당신의 자식을 소개하듯이 말머리를 꺼내시면서 두 손으로 정성스럽게 소지를 받쳐들고 불을 붙였다. 소지는 활활 타서 하늘로 높이 올라가야 좋다고 하는데, 그것이 다 타버리기 전에 소원을 빨리 말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는 말씀도 빨라지고 그것을 태우는 손길도 민첩했던 것이다.

그 당시 나는 너무 어려서 어머니가 무엇을 그리도 간절히 기도하는지 몰랐다. 그저 그분의 모습이 마치 신들린 듯이 들떠 있었고, 오밤중에 붉은 촛불을 켜놓은 모습이 무서워 등 뒤에서 꼼짝하지 않은 채 숨 죽이고 서 있곤 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또 하나 떠오르는 모습이 있다. 대학교 2학년 때였던가, 집에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안 계셨다. 이미 날은 저물어오는데 절에 불공드리러 갔다는 것이다. 나는 걱정스러워 절로 갔다. 그날은 법회라도 있었던지 대문은 있는 대로 활짝 열려 있었고, 마당은 발 디딜 틈이 없이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어머니를 찾으려고 부엌도 기웃거리고 법당 안에도 얼굴을 들이밀어 보고, 마당도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다.

그러는 사이 밤은 더욱 깊어갔고, 날씨조차도 을씨년스러웠다. 혹시 절에 오는 길에 어머니와 길이 어긋난 것은 아닌가 생각하며 밤하늘을 멍하니 우러러보다가 절의 지붕 위로 검붉게 솟아오르는 불기둥을 보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 불길을 따라 법당 뒤뜰로 가게 되었다. 그때 어머니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어머니는 활활 타오르는 화톳불 앞에서 두 팔을 활짝 벌렸다가 허공에서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있는 대로 굽히면서 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절의 뒤뜰은 “탁! 탁!” 하고 장작불이 튀는 소리만 들릴 뿐 인적조차 없는데, 어머니는 그 화톳불을 향하여 끝없이 합장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불길은 검은 밤하늘 속으로 높이 피어오르는데 하얀 옷을 입고 합장을 하는 자그만 여인의 뒷모습은 천 마디 말보다 한 장의 그림으로 그려 보이는 것이 더 절절할 것같이 느껴졌다. 그 모습은 너무나 엄숙해서 영겁의 세월 속에서 시간도 멈추고 바람조차 잠시 잠자는 듯했다.

‘아, 어머니는 누구를 위해서 저렇게 치성을 드리는 것일까?’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져오는 감동을 느꼈다.

절에 갔다온 며칠 후에 나는 그토록 간절히 비는 어머니의 소원은 무엇이냐고 넌지시 여쭈어보았다.

의외로 어머니는 한참 뜸을 들이더니 조금은 계면쩍은 듯이 “그저 너희들은 내 앞에 가지 말고, 이 어미는 느이 아버지 앞에 죽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란다.” 하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적이 놀랐다. 그분의 기도는 으레 자식의 성공과 가족의 부귀와 영화를 구할 것으로 짐작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머니의 소망은 아주 작아 보이지만 실은 가장 큰 것이었다는 것을 나는 이제 지명(知命)의 나이에서야 조금 알 것 같다.

어느 날 차를 몰고 나간 아들이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귀를 세우고 있다가 인기척만 나면 쏜살같이 달려나가 보곤 했다. 그러기를 몇 번이나 하다가 나는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이제 내가 다 큰 자식을 위해서 무엇을 해줄 수 있단 말인가. 내 잔소린가, 아니면 내가 가진 물건이 그 애를 이 험한 세상에서 지켜줄 수 있을까. 노심초사 조바심치다가 결국 내가 그 애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기도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나는 오랜만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지난날 절 뒷마당에서 타오르는 화톳불 앞에서 엄숙하게 합장하던 모습과 밤마다 장독대에서 치성을 드리던 그 정경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떤 사고가 일어났을 때 우리는 기적처럼 살아 남은 사람을 볼 수가 있다. 내 자식이 만일 그러한 일을 당했다면, 그 애를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어미의 간절한 기도뿐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예전에 어머니가 그랬듯이 자식을 위해서 온 마음으로 기원하게 되었다. 그저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살라고.

어머니는 가셨지만 당신은 기도라는 씨앗 한 알을 내 가슴에 묻어두고 가셨다.

어쩐 일인지 지금은 한낮인데도 기적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아마 나는 어머니가 그리워지면 환청처럼 기적 소리를 듣는가 보다.

 

 

양유미

한양대 졸업(4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