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流行)

 

                                                                                            윤모촌

 복중더위 속에서 팔소매를 걷어올리면, 형수 앞에선 그러는 법이 아니라고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여남은 살 때부터 이렇게 자라온 까닭에 여름이면 전철 속 여인의 노출상을 보아야 하는 일이 곤혹스럽다. 그런 여인상과 맞은 좌석일 때는 보지 않을 수가 없어 더 그러한 것인데, 옹이진 무릎을 드러낸 중년의 모습에는 아닌게아니라 부담이 된다. 이즈막에는 상반신까지 드러낸 차림이 띄기도 해서 시야를 저으기 피곤케 한다.

때와 처소를 가리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노출을 꺼리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시대적 유행에 편승한 과시적 행위가 아닌가 한다. 복중더위 속에서도 팔소매를 내려야 했던 시절로 보면, 유행은 이처럼 사회규범의 가치 기준마저 바꿔놓는다. 머리를 서양 사람처럼 물들이는 것만 해도 그러하다. 동양인에게 아름다운 머리의 조건이던 검은 머리가 예사로 물들여진다. 거부감이 이는 그런 것이 나도 모르게 익숙해져 가는데, 유행은 이처럼 마음의 뿌리마저 부식시킨다.

아무려나 유행에는 부추기는 세력이 있다. 이런 세모리들은 시대의 첨단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이고, 스스로도 지식인임과 문화인임을 자처한다. 이같이 자처하는 것으로 본다면 그들은 자신의 머리가 그런 것으로 차 있는 것으로 자부할 만도 하다. 그러나 한 걸음을 물러서서 보면, 머리가 차 있기는커녕 그처럼 비어 있을 수도 없어 종잡을 수가 없다. 무턱대고 따르는 행위로 보면, 그 맹목적인 것에 주체성이 없는 것이 그것이고, 한편으로는 유행을 따르는 그것이 남이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같이 이율배반(二律背反)하는 속성을 헤치고 보면, 거기에는 분명 바보스런 데가 있다. 이를테면 나라 밖 사람들이 지금 우리를 부패공화국이라고 한다는데, 그 부패 고리로 번지는 유행성을 놓고 보아도 그러하다. 부정을 저지르는 사람치고 그것을 옳다고 하지는 않을 터인데도 정권마다 부정은 유행처럼 저질러져 왔다.

유행은 시류(時流)를 탄다. 민감하기도 해서 한 군데 머무는 법이 없다. 하지만 제정신이 아닌 곳에 발을 붙이면 떨어져 나갈 줄을 모른다. 광복 반세기를 넘긴 한국인 이름에, 유행처럼 달았던 일인식 이름이 아직도 붙어 있는 것이 그것이다. 한국인에게 일인 이름이 붙은 것은 일제가 우리를 황국신민(皇國臣民)이 되라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그렇게 붙은 것이어서 제정신인 사람은 해방이 되자 지체없이 제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시류를 탄 일인식 이름은 그대로 남아서 역사를 희롱하듯 빛을 발한다.

유행을 이끄는 세력은 모두가 지식인이요 문화인이다. 저마다 유행의 앞장을 서는 일 중에도 정신의 수단이 되는 말의 유행에 능하다. 이런 것을 시비하면 시대에 따르는 것이라고 쉽게 대답한다. 이를테면 말할 줄 모르는 사람이 방송을 하면 말할 줄 모르는 사람의 그 용어가 금세 지식인의 입으로 옮겨진다. 지금 그렇게 자리를 굳히려는 것 중의 하나가 ‘먹을거리’를 ‘먹거리’로 말하는 것이라던가, 말할 때마다 당치도 않게 ‘굉장히’를 붙이는 일, ‘글을 쓴다는 것은’ 따위에 ‘쓴다라는 것은’ 하고 ‘라’를 붙이는 것 따위가 그러하다. 개 한 마리가 짖으면 동네 개가 다 따라 짖듯하는 그런 방송을 듣고 있으면, 내가 별수 없이 멍텅구리가 돼 간다.

같은 얘기이지만 ‘낭만(浪漫)’은 문예 용어 ‘로맨티시즘·로맨틱’에서 온 말이다. 그런데 이 로맨이 어째서 ‘낭만’이 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일본인은 이 말을 한자로 浪漫이라 쓰고, 저들의 발음으로 ロマン(roman)이라 읽는다. 그러니까 원어대로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문화인들은 이 원어를 쓰질 않고 알량하게도 일인의 浪漫을 들여다 굳혀놓았다. 서구어를 쓸 양이면 제대로 들여다 쓸 일인데, 똑똑한 문화인이 왜 그랬는지 나는 그것을 알 수 없다.

시인 김기림(金起林)은 1935년 그의 글에 魯漫(로만)이라 했고, 1947년 저서에서도 魯漫(로만)이라 하고 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지식인들이 일어를 쓰던 해방 전부터 우리는 학습한다는 말을 工夫(공부)라 하였다. 이것을 일인은 勉强(면강)이라 쓰고 있다. 일제 치하에서 한국어의 고유성은 거의 일어화되고 말았지만, 이 勉强만은 용케도 서민들의 입에 옮겨지지 않았다. 말하자면 모두가 두루 쓰는 ‘工夫’가 지식인의 말이 될 뻔한 勉强에 밀려나지 않은 셈이다. 공부나 면강의 출처가 중국이고 다같이 학습한다는 말이지만, 여하간에 우리는 ‘공부’요 일인은 ‘면강’이다. 일어를 들여다가 토속어를 없앤 것이 모두 지식인 문화인의 짓인데, 그렇고 보면 우리말을 제대로 쓰는 사람은 문화인도 아니고 지식인도 아닌 셈이다.

이렇듯 정신의 수단인 말에서 유행을 앞서는 문화인 지식인, roman을 일인의 ‘浪漫’으로 들여와 얼토당토않게 굳혀놓은 문화인, 나는 내가 지금 어디만큼 오늘의 한국인의 문화인 자리에 와 있는지조차를 모르면서 갖은 유행이 번지는 시대를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