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 찬

                                                                                                金 泰 吉

 학생 시절에 어떤 불경(佛經)을 들추어 보다가 ‘네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삼가라’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주색이든 돈이나 권력이든 너무 좋아하는 것에 빠져들면 정도가 지나쳐서 파멸을 부르기 쉽다는 교훈일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나 자신에게 물어 보았다. 돈과 지위, 미색과 쾌락 등 일반이 좋아하는 것을 굳이 싫어하는 결벽성은 나에게 없다. 그러나 그 가운데 어느 하나에 몰입할 정도로 외골수도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까?

어쩌면 무엇에 미치도록 정열적이 못되는 미지근한 성격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지근하다’는 말은 매력이 없을 뿐 아니라, 저 불경의 가르침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낼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내성(內省)과 분석을 통하여 겨우 찾아낸 것이 ‘칭찬’이라는 단어였다. 좀 유치하기는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칭찬받기라는 결론을 이끌어낸 것이다.

그러니까 불경의 가르침을 실천에 반영하자면, 바람둥이가 여색(女色)을 경계하듯이, 칭찬을 경계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주색이나 잡기로 패가망신한다는 이야기는 흔히 듣지만 칭찬 좋아하다 망했다는 이야기는 별로 없으니, 신경을 꺼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왕자병(王子病)이라는 난치병도 있고,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것을 걱정하지 않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할 것을 걱정한다.”는 공자님의 말씀도 있으니, 역시 성현들의 말씀을 따르는 편이 무난하리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정리한다.

냉정하게 계산을 하기로 말하면 칭찬을 추구하는 생활태도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들이 가는 길이다. 그 길이 아무 실속도 없는 거품의 허상(虛像)일 뿐이라는 것은, 요즈음의 대중매체가 칭찬을 다발로 묶어서 만들어낸 ‘인기(人氣)’라는 물건이 얼마나 허무하고 무상(無常)한 가를 보면 곧 알 수 있다.

 

그것이 비록 거품투성이고 허무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라도 칭찬을 듣는 것은 결코 불쾌한 일이 아니다. 토정비결이 대체로 엉터리라는 것을 잘 알더라도 ‘믿거나 말거나’의 가벼운 심정으로 본 그해 운수가 좋게 나왔을 때 기분이 유쾌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므로 칭찬을 기피하려고 굳이 애쓸 필요는 없는 일이며, 누가 칭찬을 하거든 그것이 아니라고 기겁을 하며 부인하기보다는 크게 집착하지 않고 적당히 받아넘기는 편이 무난하리라고 생각한다.

우리 한국이 칭찬에 인색한 나라로 알려진지 오래지만, 요즈음은 사람들이 약아서 본인 면전에서는 칭찬 인심이 후할 경우도 흔히 있다. 내가 직접 들은 칭찬만 하더라도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닐 것이다. “넥타이가 양복과 잘 어울립니다.” 또는 “돋보기 안 쓰고도 그 글씨가 보입니까.” 따위까지 계산에 넣는다면 그 도합은 부지기수에 가까울 것이다.

칭찬하는 말도 가지가지다. ‘똘똘하다’와 ‘착하다’는 어린이 때에 대개 누구나 들어본 찬사이며, ‘너 참 잘했다’는 운동회에서 일등을 하거나 학업 성적이 올라갔을 때 흔히 듣는 찬사이다. 여자들이 가장 듣기를 원하고 또 실제로 젊었을 때 자주 듣는 찬사는 ‘아름답다’이고, 문필가들 사이에서 흔히 오가는 찬사는 ‘그 글 정말 감명깊게 읽었습니다’가 아닐까 한다.

글벗들의 모임에서 어느 작품을 앞에 놓고 합평(合評)이라는 것을 하기도 하는데, 글쓴 사람은 필자의 인품에 대한 칭찬보다도 글에 대한 칭찬을 더 반갑게 여긴다.

어떤 종류의 찬사이든 그 말을 들을 때는 기분이 유쾌하고 삶이 밝게 느껴진다. 그러나 지내놓고 보면 흘러간 구름 같은 것이어서 허망하기 그지없다. 다만 그 가운데서도 자기가 쓴 글이나 연구 결과에 대한 찬사만은 오랜 여운을 남기고 하나의 보람처럼 마음에 새겨지기도 한다. 무릇 ‘작품’이라는 것은 기록으로서 남는 까닭에 잘만 만들어지면 오랜 생명을 유지할 수도 있다는 한 가닥 희망 때문일 것이다.

작품 가운데서 가장 크고 가장 값진 작품은 인품(人品)이라는 작품일 터인데, 작가들은 자신의 인품보다도 자기가 쓴 글이나 그린 그림에 대해서 더 강하고 직접적인 애착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모르기는 하지만 자신의 인품을 한 점의 걸작으로 형성하는 일은 한 장의 그림이나 한 편의 글을 수작(秀作)으로 만드는 일보다도 아득하게 어려운 일임을 무의식이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사람들의 화젯거리가 될 만한 책이나 그림을 남긴다는 것도 아무에게나 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 인품이 훌륭한 까닭에 죽은 뒤에도 사람들이 오래 기억하게 되는 일생을 산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욕심이나 의욕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도전할 목표가 아니라, 성실하게 묵묵히 산 사람에게 어쩌다 주어지는 행운의 결과가 아닐까 한다.

역사에 기록될 정도의 큰 인품까지는 아니더라도, 가까운 친구들 사이에서 “그 사람, 정말 멋있는 인품이었”라는 말로 기억되기만 해도 성공적인 삶이라 할 것이다. 차라리 살아 있는 동안에 말을 아끼는 친구로부터 “당신, 정말 멋있는 사람이오”라는 찬사를 들을 수 있다면 그 이상 더 바랄 것이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진실로 많은 의미를 함축하는 ‘멋있다’보다 더 매력적인 찬사는 없으리라는 생각에 조금은 가슴이 설레는 것은 아마 내가 토박이 한국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그 자리를 사랑으로 채우면 ‘멋있는 사람’이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