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천주의(樂天主義)

                                                                                          金 時 憲

 화가(畵家) 한 사람을 알고 지낸 때가 있었다. 그는 서부 활극의 영화 주인공 같았다. 체구가 크고 대담하며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았다. 길을 걸으면서 저쪽편에서 오는 구체적인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길과 사람과 건물들이 한 덩어리로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인사를 먼저 해야 되는 사람을 놓치는 실례를 범한다고 했다.

집안에 화실을 두고, 시간이 생기면 그림 앞에 앉아서 우두커니 생각하다가 붓을 들고 그리다가, 깎아내다가, 또 생각하다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화실 아랫목에 앉아서 그의 동작을 구경한다. 얼마쯤 그리다가 싫증이 나면 나에게로 와서 바둑이나 한판 놓읍시다 한다. 바둑 실력은 둘 다 최하급이었다. 그것도 세 판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어야 한다. 생각하는 바둑이 아니었다. 어떤 때는 오목을 놓는다. 그렇게라도 그냥 한 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다.

그의 집은 뜰이 넓었다. 겨울이었다. 그 뜰 한쪽편에 길고 높은 원두막 같은 집을 짓고 있었다. 판자와 각목을 많이 갖다놓고 손수 뚱땅거렸다. “무엇을 만듭니까?” 했더니 “알아맞춰 보십시오.” 할 따름이었다. 며칠 후에 다시 갔을 때는 가설 건물이 그림 전시장이 되고 있었다. 그림을 이십 폭쯤 벽에 걸어놓고 가운데에 책상과 의자를 갖추어놓았다. 의자에 앉기 전에 나는 그림을 둘러보았다. 제작할 때도 보고, 개인전에서도 본 그림들이었다.

그의 그림은 반추상화라고 했다. 구체적인 형체는 없고 대충 큰 덩어리만 큼직큼직하게 배치해 놓는다. 이해가 어려운 추상화도 아니고 눈, 코, 입이 다 있는 구상화도 아니다. 낙타 등 같은 겨울 산과 삭막한 들녘을 그려놓고 그 산자락에 보일듯 말듯한 초록색이 지나가는 그림이 있었다. 제목을 ‘봄’이라 했다. 풍경은 겨울인데 왜 ‘봄’이냐고 나는 물었다. 그는 초록색은 내 마음의 ‘봄’입니다고 하는 것이었다. 마음 안에 있는 봄은 겨울 속에도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날은 바람이 세게 불었다. 가설 전시장의 벽면은 모두 판자이고, 그 판자 안쪽에 비닐 종이가 붙여 있었다. 바람이 불면 부룽부룽 소리가 나고 원두막 같은 전시장이 삐거덕삐거덕 움직였다. 나는 갖추어놓은 의자에 가 앉으면서 “선생님! 바람에 전시장이 송두리째 넘어 가겠습니다.” 했다. 그는 만면에 큰 웃음을 띠면서 “그게 걱정입니까. 전시장이 넘어가면 사람도 같이 넘어가면 되지 않습니까.” 하는 것이었다. 그 소리에 두 사람은 크게 한 번 웃었다.

직장의 어떤 일로 사건의 가해자가 되어 그는 구금이 되었다. 경찰서의 유치장에서 일주일을 보낸 후, 형무소로 옮겨졌다. 한 달쯤 뒤에 옮겨진 곳으로 나는 면회를 갔다. 교도관에게 인솔되어 나오고 있는 그는 언제나처럼 빙그레 웃고 있었다. 그 동안 수염이 길어서 턱이 온통 풀밭이 되어 있었다. “고생이 많으시지요?” 하는 나의 말에 “아닙니다. 진짜 인생도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걱정스러운 표정이 전혀 없었다. 언제 어디서나 그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구금 기간 동안에 피해자 쪽에서 검사에게 부탁이 왔다. 사과를 받으면 구금을 취하해 주겠다는 의견이었다. 담당 검사는 사건의 내용으로 보아 가해자의 사과가 있다면 그렇게 처리하고 싶었다.

검사는 종이 한 장을 그에게 내밀고 사과의 말을 쓰라고 했다. 그는 검사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죄가 있으면 검사님은 죄대로 벌을 주면 될 일 아닙니까? 왜 사과까지 요구하십니까.” 했다. 검사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고맙게 받아들일 줄 알았던 것이다.

그에게서 나는 낙천주의를 보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신념은 낙천주의이다. 조마조마하고 끈적끈적하고 소심한 사람에게는 낙천주의가 어렵다.

요즘은 人命在天이 人命在車가 되었단다. 그만큼 차조심을 해야 한다. 그러나 최선을 다할 뿐, 그런 일에 너무 신경을 쓰고 있으면 신경쇠약에 걸린다. 삼풍백화점이 무녀졌을 때 얼마 동안은 다른 백화점의 손님이 격감되었다는 말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 뒤 지금까지 백화점이 또 무너지지는 않았다. 설마 그 피해가 내게 오랴?를 생각할 수도 있고, 그렇게 해도 왔을 때는 당하면 된다.

일본의 시인이 썼다는 시를 옮겨 본다.

 

비 내려도 좋다

날 개어도 좋다.

 

없어도 좋다

있어도 좋다.

 

죽어도 좋다

살아도 좋다.

 

이 시에는 대긍정이 있다. 무엇에도 묶이지 않는 해방이 있다. 한때 나는 이 시를 외우고 다녔다. 소심한 나에게 낙천의 바람을 넣고 싶었다. 대담해지는 것, 대범해지는 것, 그래야만 불안과 긴장에서 풀려날 수 있다.

오늘은 나의 방 벽에 걸려 있는 그 화가의 그림을 쳐다보고 있다. 30년 전에 그에게서 기증을 받은 작품이다. 그림에는 대자연이 배경으로 그려져 있고, 그 앞에 눈도 코도 없는 청년이 꾸부리고 앉아 고개를 떨구고 있다. 깊은 고뇌에 빠져 있는 그림이다. ‘자연은 항상 조화로 가득 차 있는데, 인간은 왜 생각을 해야 되나?’ 그것이 그림의 주제라고 그는 그때 설명했다.

고뇌의 뒤에 낙천주의가 오는지 모른다. 생각하다가 생각하다가 다 포기했을 때 우주의 문은 활짝 열린다. 그 화가의 낙천주의를 나는 그림 속의 고뇌하는 청년에게서 근원을 찾아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