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 형관야(夫秋 刑官也)

                                                                                           金 菊 子

 뜰이 어지럽다. 어젯밤에 큰 다툼이 있었던 듯 낙엽이 온 마당을 덮고 있고, 고개를 떨군 풀꽃들은 마치 죽은 시체 모양 축 늘어져 있다. 그들이 내는 주술 같은 소리에 귀가 멍해지는 듯하다. 요사이 매일 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무들이 반짝이던 모습을 잃어가면서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지고 있다. 하늘을 쩡쩡 울리며 감나무 위로 날아든 까치들이 ‘형관’의 앞잡이인 양 감을 쪼아먹는 모습이 당당하고 발목이 힘차 보인다.

 

夫秋 刑官也

於時 爲陰 又兵象也

 

중국 문장가 구양수(歐陽修)는 ‘추성부(秋聲賦)’에서 ‘무릇 가을은 형벌 집행관처럼 가혹하다. 때는 음에 해당하고 또 병의 형상이라’라고 가을을 읊었다.

요사이 나는 무엇인지 모르지만, 괜히 붙잡고 애원하고 싶은 심정으로 뜰에 나가 서성거린다. 모든 그리운 것, 외로운 것들이 그의 몸체인 생명 속으로 숨어 들어가 흙빛을 띠고 있는 듯 보인다. 마른 동국[冬菊] 잎을 손으로 비벼보니 바삭 부스러진다. 손을 코 끝에 대보니 국화 향이 조금 남아 있다. 잊지못할 아니 잊어서는 안 될 그리움이 있기에 이 추위에 부대끼며 견디고 있는 것인지… 마음 속으로 짠한 슬픔이 퍼진다.

모든 생명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생명이란 죽음에 저항하는 온갖 활동의 결합이며 그곳에는 즐거움이 있고 그 목적은 유지에 있다. 생명이 있는 것은 생명이 없는 것보다 우월하지만 언젠가는 사멸되게 마련이니, 결국 생성과 사멸은 어길 수 없는 우주의 질서이며 법칙인 것이다.

뜰을 보는 내 심정은 쓸쓸하다 못해 참담해진다. 세상의 모든 것이 사멸 쪽으로 몰려가는 것 같다. 이 가을이 이렇게 처절하게 느껴지는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구양수가 읊은 형관보다 더 무서운 형관인 IMF 체제가 재작년 가을부터 우리 사회를 덮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힘없이 쓰러지고, 십여 년간 연속 흑자를 내던 회사들도 IMF의 형관 앞에서는 그 빛을 잃고 휘청거리며 중병을 앓고 있다. 평생 직장이라고 믿고 있던 회사가 ‘희망퇴직’이라는 복병을 내놓는가 하면, 사원들은 이제까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 복병 앞에서 우왕좌왕하면서 희망퇴직이라는 포기에 가까운 선택을 해야만 했다. 이 시기에 태어나서 살아가야 하는 불행한 운명과 불확실한 미래에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사람들은 겪고 있는 것이다.

회사측도 개인의 아픔 못지않게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다. 풍랑을 만난 배와 같이 침몰을 막기 위해서는 수용할 수 있는 인원만 태우고, 어차피 함께 탈 수 없는 형편이라면 배에서 사람들을 내려야 하는 ‘고용조정’이라는 방법을 선택해야만 한다. 과격한 노(勞)와 사(使)는 쇳소리를 내며 부딪치기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 태어날 때 시대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시대마다 인간에게 요구하는 사명이 있다고나 할까? 좁게는 가정에서 넓게는 사회, 국가를 위해서 좋든 싫든 누군가는 그 사명을 위해서 앞에서 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뒤에서 거드는 사람도 있고, 그저 곁에서 있어 주는 사람도 있다.

지난 시대를 돌아볼 때 일제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나라를 다시 찾는 역사적인 과제를 위해서 갖은 고초를 겪는 운명이 있었다. 6·25 전쟁을 겪은 사람들은 전쟁을 치러야 하는 운명 앞에 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군사정권 시대에 태어난 사람은 ‘독재’를 타도해야 하는 사명을 지고 갖은 고통을 감수했다. 이렇듯 그 시대마다 요구하는 고통이 있는 것이다. 오늘날은 바로 IMF라는 형관을 만났다. 어떻든 우리는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특별한 고통을 참고 이겨나가야 하는 운명을 안고 살고 있다.

하늘은 구름이 덮고 땅은 낙엽이 덮고 있다. 직업을 잃은 사람들이 가지를 떠난 잎처럼 거리를 헤매이며 방황하고 있다.

 

噫噫悲哉 此 秋聲也

아! 처량한지고, 이것이 가을 소리

 

낙엽의 혼이 허공을 떠돌듯 노숙(露宿)자들이 내는 탄식과 절망하는 소리가 구양수의 가을 소리보다 더 처절한 소리로 들려온다.

이 땅에,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을 한탄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서로 도우며 희망을 잃지 말고 이 시련을 이겨낸다면 IMF 형관도 결국은 물러갈 것이라 생각된다. 해서 요사이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뜰을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