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하는 여자들

                                                                                            한 동 희

 일주일에 두어 번 동네 목욕탕엘 간다. 모두가 벌거벗은 편안함과 평등함이 좋고, 뜨거운 물 속에 몸을 담고 생각에 잠기는 것도 한때의 즐거움이다. 또한 살내음나는 여인들의 몸매를 읽어내려가며, 그들의 몸매에서 여인들의 역사를 보는 것도 흥미롭다. 여인의 몸매는 각자 그만의 주제를 담고 있는 인생의 그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 변해가는 모습은 나의 그림이기도 하여 관심이 모아지는 것이다.

꽃봉오리처럼 봉긋한 유두의 부끄러움에서 나의 소녀 시절을 보고, 어린아이를 끌어안고 있는 아낙네에게서 내 젊은 날을 떠올린다. 딱 벌어진 어깨와 늘어진 가슴, 층층히 주름잡힌 배와 등판에 숨김없이 드러난 피곤의 자국에서 연민을 느끼고, 진흙 팩이나 오이를 갈아 마사지 하는 여인에게서 흘러가는 시간에 저항하는 유일한 인간의 모습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낀다. 등 굽은 할머니의 무너진 몸에 어머니의 인생고락이 겹쳐져 눈물이 번지기도 한다.

그러나 간혹 누드 모델처럼 늘씬한 몸매의 여성이 눈에 뜨이기도 하고, 세잔의 ‘목욕하는 여인들’처럼 풍만한 가슴과 육감적인 둔부, 위엄 있는 분위기의 여인도 만난다.

남탕에서 보는 남성다움은 남자의 심벌인 그것에 의해서 좌우되겠지만, 여탕에서 보는 여인의 매력은 딱히 어떤 몸매가 ‘아름답다’는 기준을 잡을 수는 없는 것 같다.

신(神)은 키 작은 여자에게 주체 못할 유방을 달아주기도 하고, 키 큰 여자에게 작은 가슴을 달아주기도 한다. 전체적인 균형이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답다고 하겠는데, 그것은 객관적인 판단일 뿐이다. 바람 빠진 풍선 같은 젖주머니를 달고 있으면서도 자신만만하게 목욕탕 안을 활보하는 여자도 있는데, 이는 임신과 수유로 가슴이 작아지고 축 쳐지긴 했지만 모성애의 상징임으로 당당한 자세가 된다.

우리는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 먼저 어머니의 젖가슴을 떠올린다. 어머니는 고향이고 생명의 원천이기에 든든하고 그리운 대상이다. 그러므로 여자는 여자라는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존재이다.

화가들은 대부분 젊고 매끈한 각선미의 여인을 누드 모델로 선호하지만, 정작 완성된 그림은 적당히 굴곡진 배와 전체적으로 볼륨 있는 풍만한 중년 여인의 몸매를 그려놓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랑과 그리움의 열기를 지나 슬픔과 고통이 용해된 세월의 물결을 화폭에 담는 것은, 화가가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미를 상상하며 그것에 이끌려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닐까. ‘육체는 영혼을 담는 그릇’이고 보면,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온 중년의 여인이야말로 ‘편안하고 안정된 느낌을 주는 은혜로운 몸매’의 소유자가 아닌가 한다.

이렇게 여인의 몸매에 그려진 인생의 그림을 감상한 후, 나는 물에서 나와 사우나실로 향한다. 그곳에서 잠시 땀구멍을 연 후 찜질방으로 간다. 대여섯 평 남짓한 방 안에 빼곡이 누워 있는 여인들, 그들은 알몸에 비닐을 두르고 땀빼기에 열중한다.

요즈음에는 몸에 낀 때를 벗기려고 목욕탕에 오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피부 미용을 위해서, 체중을 줄이려고, 혹은 온몸이 뻐근해서라는 이유를 달고 목욕탕을 애호한다.

IMF 영향으로 주부들의 물과 벗한 건강법도 달라져간다. 목욕탕의 단골 손님들이 경제 한파 이전에는 체육관에 나가 수영을 하고 그곳 사우나에서 땀을 빼던 것을 지금은 대중 목욕탕의 찜질방 쪽으로 대거 이동하고 있다.

이제 목욕탕은 조용히 쉴 수 있는 휴식처가 아니다. 주부들이 가장 적은 비용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곳이 대중탕의 찜질방이어서 찜질방은 마실꾼이 모여드는 동네 사랑방처럼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영장에서 만난 그룹도 있지만, 눈인사로 시작해 자연스럽게 친근하게 지낸다.

첫 찜질방의 적정 시간은 2, 30분이지만 살빼기 작전에 나선 사람은 한 시간 정도 참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하자면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잊어야 하는 것이다. 몸에 필요한 지방질도 있는데, 저러다가 뼛속의 칼슘이 빠져 나가 고생하는 것이 아닌가 괜시리 걱정이 앞서지만, 여인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갈구는 그 어느 것도 장애가 될 수는 없는 듯하다.

찜질방에서 나와 마지막으로 몸을 닦는데, 사람들의 목욕하는 태도에서 그 사람의 인품과 교양을 읽어내게 된다. 옆사람에 대한 친절과 배려, 예의와 절약하는 마음 씀씀이가 드러나기 때문에 며느리감은 목욕탕에 가서 골라야 한다는 말도 있다.

사람의 가치는 옷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벌거벗었을 때 드러난다는 것을 목욕을 하며 느끼게 된다.

 

 

 

한동희

전 한국문인협회 고양시 지부장.

수필집 『사람, 그 한 사람』, 『느낌표처럼 사랑했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