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어디서 왔을까

                                                                                             조 한 숙

 들녘의 바람이 그리워서 산책을 한다.

아파트의 동과 동 사잇길을 지나 단풍나무 그늘을 지나 5분 정도 걸어나가면 들판이 나온다

수요일 아침마다 그 들판을 거니는 것으로 요즈음 충분히 행복하다. 나뿐 아니라 많은 이웃들이 아파트의 답답한 거실을 박차고 나와 아침 공기를 마신다. 자전거를 타고 조깅도 하고 뒷걸음질을 치며 걷기도 한다. 한결같이 즐겁고 건강한 표정들이다. 아들과 나란히 자전거를 타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어느 부자의 모습이 평화롭다.

들녘, 얼마나 정답고 가슴이 탁 트이는 말인가.

서울 한복판에 이렇게 삽상한 공간이 있음은 큰 행운이다. 뚝방길이 있고, 뚝방을 내려서면 양재천이 흐르고, 냇물 옆으로 산책할 수 있는 길이 있고, 물가에는 저 좋아서 야생화들이 찾아들고.

뚝방 기슭에도 바람 따라 무심히 춤추고 있는 갖가지 야생 식물들이 한몫 거든다. 그들이 우리의 아침 산책길에서 빠진다면 그 길은 더없이 건조해질 것이다.

이삭역귀, 싱아, 달개비, 메꽃, 망초… 시골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들이기에 더욱 귀하다. 달 따라 피었다가 미처 오므리지 못하고 들켜버린 달맞이꽃도 아침길에 서 있다.

양재천을 사이에 두고 우리 아파트 단지와 맞은편 건물들이 마주하고 있는 그 사이에 우리가 숨쉬고 있는 초록 공간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공간을 들녘이라 부르고 싶다. 매일 파란 하늘을 보고 싶어하는 나 같은 도시인들에게도 숨통 트일 구석이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15년 전, 이 동네로 처음 이사올 때에는 이사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었다. 매봉산을 뒤로 하며 동네를 쓱 들어서면 거대한 구룡산이 우리를 맞아들였고, 나직나직한 집들 가운데 우리 아파트 단지만 우뚝 솟은 것이 오히려 부끄러웠었다. 주위에는 농사를 짓는 밭들이 더러 있었고, 동쪽으로는 커다란 배 밭이 있었는데, 그 과수원이 지금도 남아 있어 우리의 정서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치형 다리를 건너야 동네를 들어서는데, 그 다리가 시작되는 지점에서는 안 보이던 구룡산이 아치의 꼭대기에 올라설 때는 초록덩어리로 크게 떠올라서 그 모습을 보는 것으로 하루가 즐거웠다. 그 산 앞으로 졸졸이 아파트가 들어섰고, 그 아파트의 한 칸에 우리 식구도 찾아들었다. 그러니까 우리 식구는 이 동네가 처음 형성될 때부터 살아왔으니 원주민인 셈이다.

우리 집에 가끔 놀러오는 포이동 아주머니는 30여 년 전 이 동네로 시집와서 농사를 지었다고 했다. 시어른을 모시고 농사짓느라 폭삭 늙었다는 이야기며, 김장을 양재천에서 씻어 했다는 전설 같은 말을 대수롭지 않게 들려주곤 했다.

“그때 양재천 물은 옥사실[玉絲]이었어. 그 물에 배추를 씻어 김장을 했는데, 300포기씩이나 했지. 그리고 물 속에 피라미들이 있어서 새들도 많이 날아왔었어.”

신이 나서 말하다가도 한 15년 전쯤부터 물이 더러워지기 시작했다는 말을 할 때는 목소리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양재천은 그 윗동네, 더 윗동네에서부터 흘러내려 말죽거리와 우면산 앞을 지나 우리 동네 개포동과 도곡동 대치동을 지나간다. 이렇게 이 동네 저 동네를 지나오면서 이 집 저 집에서 흘어나온 물이 모이고 또 모여 언제부터인지 검은색이 되어버렸다. 그 후로 양재천 변은 언제나 조용했고, 이웃들은 냄새날까 가까이 가기를 꺼려했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아주머니 말에 의하면 그 윗동네 과천에 도시가 형성되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부터 물이 흐려지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 즈음 우리 동네도 아파트가 우뚝 솟았으니 결국은 밀집한 아파트가 오염의 주범 노릇을 한 셈이 된다.

우리가 버린 오물과 세제가 다시 우리 입으로 들어온다는 순환의 진리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너나 없이 편리한 생활에 젖다 보니 동네 뒤로 흐르는 냇물이 어느 결에 폐수로 변했고, 한강에는 세제들이 모여 거품들이 뭉게뭉게 떠다니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여름방학이 가까워올 즈음, 우리 큰 아이가 학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린아이들이 양재천에서 수영하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다리 위에서 보고 오는 길이라며 엄마도 나가서 구경하라고 성화다. 그 더러운 물이 어떻게 맑은 물로 둔갑을 할 수 있는 건지 아예 그 말을 흘려버렸다.

며칠 후 이웃 아주머니가 또 나에게 소식을 전해왔다. 저녁 식사 후 냇가를 한번 산책해 보라며 아주 좋아졌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음 다음 수요일 아침, 우리 내외는 아파트 사잇길을 지나 5분쯤 걸어나가서 뚝방길로 나섰다. 냇물 옆으로 내려가 보니 말끔하게 단장된 산책로에는 많은 이웃들이 평화롭게 걷고 있었다. 냇물 위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조금 걸어 올라가니 큼직한 돌로 만든 징검다리 위로 중학생들이 줄을 이어 학교를 가고 있었다. 징검다리 덕분에 샛길로 질러가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맑은 웃음과 재잘거리는 소리가 냇물과 잘 어울렸다.

그 동안 걱정거리였던 양재천이 자연을 사랑하는 몇몇 사람들과 강남 구청의 의지로 다시 맑은 시냇물이 된 것이라는 소문이 들려왔다.

양재천은 어느 결에 모든 이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덕분에 우리 동네 사람들이 요즈음 모여 앉으면 화젯거리가 풍부했다. 다리 밑의 물이 맑아졌다느니, 그런 맑은 물을 만드는 데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었다느니, 어느 재벌이 큰 돈을 희사했다느니, 자갈을 몇천 톤이나 쏟아 붓고 유익한 박테리아 처리를 해서 폐수가 맑은 물로 변해서 흐른다느니…….

그러는 사이 양재천은 동네의 자랑거리가 되었고, 발빠른 어느 TV 방송사에서 달려와 이미 보도가 되었다고도 했다. 남편과 나는 이런 저런 이유로 매주 수요일 아침 냇가에서 산책하기로 작정했다.

수영을 하던 아이들의 떠들썩하던 소리도 잠잠해지고 건들바람 따라 가을이 오려고 할 즈음, 여느 때처럼 뚝방을 내려가 걷고 있는데, 그날 양재천에는 뜻밖에 반가운 손님이 와 있었다. 시골 논두렁에서 보아오던 하얀 새 두 쌍이 우리보다 먼저 와서 냇물에 긴 다리를 담그고 오랫동안 서 있었다. 아파트 주변에 그런 귀한 새가 날아온 것이 꿈만 같았다. 새들은 어디서 누구한테서 소문을 듣고 여기까지 날아왔을까. 무언가 한 곳을 노려보다가 부리를 물 속에 잽싸게 넣곤 했다.

우리 동네 사람들 이야기로는 저 하류에는 낚시질하는 이도 있다고 했다. 우리 인간뿐 아니라 새들도, 미물까지도 생명을 보호하려는 그 행위는 치열하고도 숭고한 작업이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그날 새를 좋아하는 문우(文友) 오선생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 새가 왜가리라고 일러주었다. 습지를 찾아다닌다는 왜가리는 그 후 두 번인가 더 찾아왔었다.

요 며칠 전 산책길에는 오리 한 쌍이 싸늘한 냇물에 둥둥 떠 있는 것을 보았다. 고놈들은 또 어디에서 떠내려왔는지, 내가 집으로 돌아 올 때까지 꿈쩍않고 그냥 그 자리에 있었다.

냇물이 맑아졌다는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소리 없이 퍼져 나가더니 어린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중학생도 청년도 남녀노소 모두 모여들더니 새들까지 모여들었다.

새들이 모여드는 곳에서 함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날 아침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맑고 깨끗한 자연을 찾아드는 새들을 보면서 생태계의 순리를 배웠다. 우리 가족 먹자고 약수터를 찾아나섰고, 좀더 맑은 공기를 마시려고 집안에 벤자민 한 그루를 들여놓았던 구차한 삶의 방식이 부질없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벌과 나비와 새들이 모여드는 낙원에서 살기를 희망한다. 하물며 새들도 날아오지 않는 환경에서 어찌 살 수 있으랴.

30여 년 전 이 동네로 시집와서 농사지었다는 포이동 아주머니 말대로 양재천 물이 옥사실같이 될 수는 없을까. 그 엄청난 꿈은 치우더라도 우리들의 산책길에 왜가리와 오리가 계속 놀러와 주었으면 좋겠다.

 

 

 

조한숙

수필공원으로 등단. 현 수필산책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