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를 하는 생활

                                                                                             金 昌 蘭

 오늘도 말을 많이 하기도 하고 듣기도 했다.

입과 귀가 함께 만들어 내는 세계는 그 높이와 깊이와 넓이가 마치 상상이라는 것이 그렇듯이 거의 무한한 것 같다. 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신기하기만 하다. 어느 때부터 사람들이 입술과 혀를 가지고 폐에서 내보내는 공기와 조화를 부려서 말을 하기 시작했을까 궁금하다. 아마 인류의 시작과 함께 의사소통의 수단이 있었을 것 같다. 그것이 꼭 언어였을까? 성서에 보면 태초에 말씀으로 이 세상 모든 것이 창조되었다고 한다. 전 세계에는 또 얼마나 많은 언어들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나라마다 그리고 종족마다 각각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언어를 구사하는 것을 보면 무척 재미있다.

그런데 외국어는 아무리 배워도 어렵기만 하다. 더구나 그 언어로 공부를 해야 한다면 몇 배나 더 부담이 될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익힌 언어와 커서 배운 언어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꿈을 그 나라 언어로 꾸게 되면 어느 정도 그 나라 말을 배웠다고 해도 좋다고 하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또 영국의 극작가이며 소설가인 서머싯 몸은 ‘요약’이라는 글에서 ‘당신이 일생을 전부 바쳐 노력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을 때는 결코 남의 나라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는 없다. 인사 몇 마디 나누는 데 쓰는 말이나 호텔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데 사용하는 말 몇 마디 한다고 그 나라 언어를 아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오해는 없다’고 했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때였다. 어느 정도 각오는 했었지만 미국인들이 하는 영어를 내가 잘 알아 듣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내가 하는 그들의 말조차도 그들이 알아 듣지 못했다. 보통 낭패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에서나 일가(一家)를 이룰 수 있다는 기간인 십 년을 배운 외국어였는데도 그랬다.

어떤 한국인 의사가 미국 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중국인 의사도 한 사람 있었다. 두 사람은 모두 미국에 처음 갔기 때문에 영어가 너무나 서툴렀고 또 귀가 아직 트이지 않았을 때였다. 사람을 직접 대면하고 하는 말은 그래도 조금 이해를 할 수 있는데, 전화로 대화를 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기계를 통해서 빠르게 흘러나오는 말은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전화받기를 피했을 뿐만 아니라 전화로 자기를 찾으면 더욱 두려워졌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그 중국인 의사는 전화만 오면 남보다 먼저 달려가 받곤 했다. 하도 신기해서 어느 날 가만히 옆에 가서 들어보았다. 그 사람은 그것이 자기를 찾는 전화면 무조건 “그 사람은 지금 여기에 없습니다.”라고만 하는 것이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화학을 전공하는 어느 한국인에게 실험실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실험을 하고 때때로 쉬는 시간에는 동료들과 스포츠라든가 정치나 경제에 대한 대화도 나누어야 했다. 영어가 부족한 그는 그런 대화에서 고작 할 수 있는 것이란 미소를 짓는 일이었다. 화학 실험만은 얼마든지 그들보다 잘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대화에 잘못 끼어 계속 미소만 짓고 있다가는 바보 취급을 당하기 십상일 것 같아,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나 점심 시간이나 쉬지 않고 열심히 실험을 하고 책을 읽었다. 그랬더니 일년만에 그 많은 사람 중에 그가 그 실험실의 실장이 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나도 젊어서 한때는 겁도 없이 미국에서 그들과 섞여서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육 년을 그곳에서 살면서 일생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을 보냈다. 그 동안 결혼도 하고 아이를 셋이나 출산을 했다. 그렇게 힘든 아이 낳는 일조차도 서투른 외국어를 하면서 치루었다. 외국어로 살림에 필요한 온갖 일을 했지만 그때는 마치 안개 속을 헤매듯이 혹은 희미한 거울을 들여다 보듯이, 영어로 하는 모든 말이 확실하게 전달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얼마 후 남편은 목표했던 학위를 마치자 귀국을 고집했다. 그곳에서 영주를 해도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나와는 반대로 자기가 원하던 것을 마쳤으니 고국에서 살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모든 것이 풍부한 그 나라에서 좀더 살고 싶었다. 하지만 후에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알게 되었고, 또 남편의 마음도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같은 언어를 마음대로 사용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는다. 말로 하는 의사소통뿐만이 아니고 표정이 뜻하는 것과 손짓과 몸짓이 의미하는 것까지도 훤히 다 이해가 되는 생활을 고국에서는 할 수 있다. 이런 자기 나라를 떠나서 살아야 한다면 참 안 된 일이다. 더구나 나이가 들어서 떠나야 한다면 그것은 슬픈 일인 것 같다. 말이 서로 통하고 그리고 더 나아가 생각과 습관이 비슷하고 음식조차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생활은 축복인 것 같다. 냉이와 조개를 넣은 된장 찌개를 먹고, 굴이나 갈치 젓을 넣어 만든 김장 김치를 음미할 줄 아는 사람끼리 산다는 것은 작은 천국이 아닌가.

어느 나라 속담에 “국가는 언어로 살아간다”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그것이 참 잘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또 “언어는 정신의 지문입니다. 모국어가 살아 있어야 민족이 삽니다. 한 나라, 한 민족의 정체는 모국어에 담겨 있습니다”라는 신념으로 『혼불』을 썼다는 최명희 씨의 글은 감동을 준다.

오래 전 미국에 있을 때 만담이나 유머를 알아 들으려고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귀를 기울이던 생각이 난다. 남들은 웃고 있는데 나 혼자 못 알아 듣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김창란

수필공원으로 등단(97년). 미국 평화봉사단 한국어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