草友齊 통신

                                                                                      김 창 진

 요새 초우재(草友齊)에는 동산(動産)이 하나 늘었습니다.

헌 중고(中古) 자전거 한 대입니다. 거의 다 벗겨져 가는 빨간빛의 도장(塗裝)입니다. 그런데도 모습이 얼핏 보아서는 그리 낡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키가 큰데다가 뼈대와 바퀴가 가늘어서 제법 모던한 모양새입니다.

과천(果川)에 내 외종형이 한 분 있습니다. 이분이 용인 어느 시골에 살 때에는 집 뒤의 텃밭 가장자리에 옥수수 및 호박 모종을 심어놓고 새벽에 잠이 안 와서 매양 이것들을 보살피면서 훤히 트는 아침 햇빛을 맞는다더니, 요새는 어두컴컴한 새벽에 서울대공원에 가서 몰고온 자전거를 한참 타다 보면 동이 트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형은 자전거 바퀴를 돌리면서 자기의 하루를 애써 엽니다.

그런데 이 형이 하루는 아침 일찍 저에게 전화하기를 자전거를 하나 주웠다면서 쓸만하니까 네가 가지고 가서 타라는 것입니다. 알다시피 초우재는 산 중턱 가까워서 자전거를 타기에는 경사가 심해서, 이런 산길에서도 경기용 사이클을 몰고 다니는 젊은이를 보면 부러워는 했으나, 자전거가 있었으면 하고 그걸 부러워한 일은 없었지요.

그런데도 나는 이 형의 이 분부를 쉽게 거역하지는 않았습니다. 형의 그 갸륵한(?) 마음씀을 거절할 넉살이 없었고, 조금은 이제는 아주 잊어버린 내 자전거 시절에 대한 향수 같은 게 내 마음 밑바닥에서 그때 비집고 올라오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내가 그 자전거를 처음 본 순간에는 그것이 초라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데도 쓸만하겠다는 애착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전거포에서 브레이크 등의 허술한 데를 고쳐서 내 차 뒤 트렁크에 어중간하게나마 억지로 싣고서는 밤중에 초우재 뜰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창을 통해서 그것이 내 눈에 들어왔는데, 밤의 어둠을 지새고 아침 햇살에 은륜(銀輪)으로 내 눈에 다가서는 그것이, 아니 그것으로 해서 초우재가 그리 평화롭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 여유 있게 느껴질 수 없었습니다.

나는 자전거가 외종형의 마음씀이 고마워서 마지못해 이를 초우재에 데리고 온 중고품이, 이런 상황을 연출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자주 이 자전거에 내 마음이 머뭅니다. 그리고 우거(寓居) 초우재에 가득한 평화와 여유를 만끽합니다. 마당을 비추는 외등(外燈)을 밤 내내 켜놓습니다. 그리고는 요새는 그것이 왜 그런 연출을 할 수 있는지 자꾸 생각해 보려 합니다. 그것이 서 있는 곳이 흙마당 위라는 것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요? 또 그 배경이 비록 손바닥만하지만 열무밭이어서 연두빛의 색감이 주는 시골스런 분위기와의 관련에서인지요.

자동차와 자전거는 둘 다 차(車)이지만 한쪽은 수레 거로 읽는 이름의 다름에서도, ‘차’ 쪽은 내 의지를 뒷받침하는 밧데리라든지 휘발유 등의 매체를 통해서만이 움직일 수 있으나, ‘거’ 쪽은 바로 내 몸이 갖는 움직임에 오로지 연유해서만 가고 서는, 그러니까 내 감각이 그것에 닿는 직접성과 그것이 갖는 복잡하지 않는 기계 구조의 너무 뻔한 단순성 등이 사람의 세계와 쉽게 닿는다는 어떤 혈연성(血緣性)의 동질감을 주어서 그런가요.

오늘날 자동차 문화가 주는 우리들 몸이나 마음에 던지는 폭력성이나 경제적 압박 같은 게 전혀 없습니다. 중학교 다니는 나이 때 자전거를 몰고 다녔던 신작로(新作路)나 풀섶 사이의 좁은 흙길의 배수로를 생각했습니다. 이슬들이 바퀴를 간지럽게 적십니다. 잠자리가 날으면서 핸들 위에 앉아서 저와 동행합니다.

아침마다 한 시간 넘어 자전거를 타고는 산 밑의 기차 역에 이르는 긴 낙동강 뚝길의, 자전거 전용의 통학길의 행로(行路)를 생각했습니다.

그리 좋아하던 매형(妹兄)이 새 자전거를 타고 누나가 있는 저의 집을 찾던 유년 시절의 그 반가운 날을 기억합니다. 때론 집에 어른이 앓아 누워서 십리 밖의 양의(洋醫)가 까만 진료 가방을 달고 마당에 들어오는 낯선 자전거가 있었긴 하지만, 대개는 반가운 분들의 내왕(來往)이라는 징표로 나에게는 떠오릅니다. 멀리서 큰댁의 형이 와 있습니다. 내가 학교에서 책보를 들쳐메고 집마당에 들어서면 그 낡은 자전거는 누가 우리 집에 와 있다는 것을 대번에 말해 줍니다. 십리 윗길의 사촌 매형이거나 십리 아랫길의 이종형의 것도 눈에 익은 자전거입니다. 나는 그 자전거의 핸들에 붙어 있는 요령을 한 번 울리고는 대청마루에 오릅니다.

 

이런 어린 날의 기억들 때문일까요. 외사촌이 요새 사람들이 얼핏하면 버리는 중고품의 자전거를 하나 줏어와서 그것을 나에게 주어 산자락의 내 초우재 앞뜰에 세워놓았더니 이렇게 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내일쯤에는 저걸 사립문 밖으로 몰고 나가서 호젓한 산길을 찾아서 한 번 타보렵니다. 이팝나무의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들을 저것의 은륜(銀輪)이 감촉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 반백(半白)의 머리카락들은 나뭇가지들의 나신(裸身)을 스치겠지요.

 

김창진

전 가톨릭대학 교수.

시집 『그대, 우리 자유로울 수 있는가』,

수필집 『나폴레옹, 클래식에 빠지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