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 별

                                                                                           吳 景 子

 한 권의 책과 마주하고 그처럼 오랜 시간 책상 앞에 꼿꼿이 앉아 있기는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시력이 나빠져서, 몸이 여기저기 쑤셔서, 집중력이 떨어져서라고 핑계를 대며 책읽기를 힘들어하던 내가 깨알보다 작은 활자로 찍힌 책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책이 어찌나 재미가 있던지 밤이 깊었는데도 머릿속은 점점 더 맑아지기만 했다.

읽고 있던 책은 멸실되었다고 단념하고 찾기를 포기했던 내 모교인 여자중학교의 교지 ‘梅苑’ 창간호였다. 햇수로 50년 전인 1950년 5월 발행된 책이었다. 그때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분리되기 전이라 중학교가 6학년까지 있었다. 해방이 되고 나서 학원에 몰아닥친 혼란이 차츰 가라앉던 무렵이라서 교지를 내게 되었던 듯했다.

책은 종이의 질이 형편없는 갱지를 사용했고, 표지 디자인도 매우 소박하게 꾸며져 있다. 표지 코팅은 꿈도 꾸지 못하던 때라 누우렇게 변색된 표지는 여러 군데가 찢어지고 뜯겨져 나갔고, 책의 한 귀퉁이는 쥐가 뭉텅 갉아먹은 상태여서 손을 대기조차 송구할 정도였다. 앞쪽의 광고 면과 목차와 화보를 제외한 나머지가 167페이지이므로 얄팍한 편이었으나 내용은 충실하고 재미있게 짜여져 있다.

‘매원의 사명’이란 교장의 글을 시작으로 교감과 동창회장의 글과 ‘여성의 직위를 논함’, ‘여성과 사회’란 제목의 졸업반 학생들의 논문과 다섯 분 선생님의 교양 강좌 ‘예술가의 기벽’, ‘세계 기문선’, ‘과학계의 소식’, ‘한국 과학자의 프로필’, 선생님과 학생들의 재치 있는 한 마디가 담긴 ‘매원 좌담실’ 등을 모아놓은 스크랩 난, 여선생님 세 분의 수필, 소녀들의 꿈이 담긴 아홉 편의 시와 선생님들의 한시 세 수, 농구 원정기, 제1차 모의 의회록, 네 편의 단편 소설, 그리고 수필 : 소품 난에는 전혜린의 ‘회상’이란 수필을 시작으로 12편이 실려 있었다. 이 수필들 맨 끄트머리에 내 글 ‘샛별’이 옹색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1학년 학생이었고, 그 글은 작문 시간에 써낸 글이었다. 그 난을 수필 : 소품이라 한 이유는 수필이라고는 볼 수 없는 보잘 것 없는 내 작품 때문이라 생각되기도 했다. 그 동안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책을 찾아다녔던 일이나, 책을 손에 넣은 후 감격해하는 이유는 이 책에 내 생애 처음으로 활자화된 내 글이 실려 있어서였다.

매원 창간호가 1950년 5월 하순경에 학생들에게 나뉘어진 후 한 달만에 전쟁이 나서 온 세상이 풍비박산 되어버렸다. 피란에서 돌아오니 책은 다른 살림살이와 함께 없어졌고, 그런 책이 존재했던 사실마저 내 기억 속에서 지워진 채 살아왔다. 15년쯤 전에 내 단짝 친구인 K가 자기 집 골방의 잡동사니를 정리하다가 ‘매원’ 창간호를 발견했다는 말을 내게 했으나 그때는 무심히 들어 넘겼다. 그 후 5년쯤 지나 내가 뜻하지 않게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자, ‘샛별’이란 글을 기억해냈고, 여러 가지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샛별’의 내용이 1946년 봄에 38선을 넘어올 때의 이야기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글의 자세한 내용은 생각나지 않았다. K에게 연락했으나 이미 책을 고물장수한테 주어버린 후였고, 모교 도서실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동창 모임에서도 알아보았으나 책을 보관하고 있다는 친구나 선배는 나타나지 않았다.

책을 찾을 희망이 옅어질수록 미련은 더 커지기만 했다. 해방을 전후한 고향의 이야기와 서울집을 향해 38선을 넘던 이야기를 모아 수필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굳힐수록 ‘샛별’의 의미는 불어나기만 했다. 열 살 때 겪은 일이었지만, 지금도 그 시절에 경험한 장면들은 여러 컷의 선명한 사진처럼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었다. 또 그 기억을 뒷받침해 증언할 고모님도 생존하셨지만, ‘샛별’에는 내 기억에서 빠진 작은 이야기가 한 토막이라도 기록되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지난 가을에 동기 동창끼리 관광길에 나섰을 때 뜻밖의 희소식을 듣게 되었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와 버스에 오르려는데 한 친구가 나를 불러세웠다. 평소에 동창회에 자주 나오지 않던 김정희라는 친구였다.

“얘, 나 네 글 봤다.”

나와 처음 이야기를 나누게 된 서먹함에서인지 그는 조리 없는 말을 했다. 나는 내 수필집 『불우물』을 보았다는 말인 줄 알고 물었으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작년 얘기구. 올해 무슨 책에서 ‘샛별’인가 하는 걸 봤어.”

“뭐라구, 그럼 너 ‘매원’ 창간호 얘기니?”

“응. 헌책들을 없애려고 뒤적거리는데 네 이름이 눈에 띄더라. 너 주려고 두었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힘껏 그를 끌어안았다. 그러고 그가 나는 물론이고 학교를 위해서도 큰 보물을 찾아냈음을 알려주었다. 책을 전해 받자마자 ‘샛별’을 찾아 읽었다. 단숨에 내려읽은 후에 나는 깊은 실망에 빠져버렸다. 형편없이 치졸한 글이었다. 변변치 않으리라고 짐작은 했으나, 그래도 1학년 전체에서 단 한 편이 뽑혀 실렸으니 어지간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게 잘못이었다. 기대했던 38선 월경(越境)의 장면 묘사나 긴박한 상황 묘사는 없었다. 월경이 끝난 상태에서 이야기는 시작되고 있었다.

 

“경자야, 고만 일어나.”

“응.”

“자아, 정신차려 응. 인제 배에서 내려야 한다.”

“쉿! 조용들 좀 해요.”

애타서 부르짖는 안내인의 말이었다.

여기는 삼팔지구, 고도(古都) 송도(松都)로 흘러드는 예성강(禮成江) 물 위를 우리가 탄 배는 흘러 내려왔던 것이다.

 

글의 첫머리는 그럴 듯하게 시작되고 있었으나, 내가 알기를 원하는 실제 월경 상황은 이 정도로 끝나고, 고향집에 두고 떠나온 사촌언니 금순과의 이별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전부 허구였다. 고향에는 사촌과 육촌 언니가 여러 사람 있었으나 금순이란 이름은 없었다. 또 3월 초에 고향을 떠나던 날 금순이 찾아와 함께 냇가에 나가 세수를 하며 이별의 말을 나누었다고 썼으나, 그 이전 늦가을에 우리 가족은 국경을 넘어오는 마적이나 팔로군의 습격과 소작인들의 횡포를 피해 읍내에 들어와 있었으므로 세수를 하러 갈 만한 냇가가 가까이에 없었다. 글의 끝맺음에 인용한 샛별도 그 별의 운행에 대해서 지금도 아는 게 없는 형편인데, 그럴 듯하게 능청을 떨고 있었다. 나는 작문 시간에 짧은 소설을 썼던 모양이었다.

내 글에는 실망해버렸으나 책의 다른 부분은 나를 만족시키고 남았다. 중학생의 글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사고력과 문장력, 그 중 몇 편, 특히 2학년 선배의 ‘평양 아저씨’란 수필은 지금 어느 수필지에 발표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기억에서 지워졌던 선생님들의 함자에서 떠오르는 별명들, 황대포, 구마짱, 찐깡, 족두리, 영국신사… 몇 분이나 생존해 계시는지……. 선생님들이 우리에게 심어주려 했던 가슴 얼얼해지는 사랑 이야기들이 활자가 되어 감회를 새롭게 했다. 지금은 저명인사가 된 선배들 이름을 만났을 때의 반가움, 사망했거나 인생살이에 실패하고 사라져버린 선배들 이름을 대할 때의 안타까움, 또 다른 내가 모르는 여러 선배들은 어떤 삶을 살아냈을까 하는 궁금증, 이런 모든 생각들이 나는 감싸고 돌았다.

한편 나를 비감하게 하는 것은 인생의 꽃잎이 막 벌어지기 시작할 무렵,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피어났던 책 속의 선배들이 이제 나름대로의 50년 세월을 살아내고, 60대 후반을 살아가고 있는 노인들이 되었다는 장하고도 서글픈 현실이었다. 그 반짝이는 독창적인 생각과 유려한 글솜씨를 어떻게 끌어안고 살아냈는지, 어떻게 발휘하며 살아냈는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앉아 그 길고 긴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