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뻐꾸기 친구

                                                                                           具 良 根

 ‘동물의 세계’ 프로에서 뻐꾸기의 비밀을 시청하였다.

뻐꾸기는 남의 새 집에서 부화한다. 나뭇가지 위에서 개개비가 알을 낳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어미 새가 날아간 틈을 타서 둥지로 날아와 개개비의 알 하나를 깨서 먹고는 그 자리에 자기 알을 하나 낳아서 넣는다. 개개비는 자기 알인 줄 알고 함께 품어준다. 어미새의 알보다 약간 먼저 부화한 뻐꾸기 새끼는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 되는데도 약간 늦게 태어난 개개비 새끼며 알들을 입이나 날개로 밀어내어 모조리 밖으로 떨어뜨리고 만다.

개개비 어미 새는 자기 새끼인 줄 알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먹이를 날아다 먹인다. 뻐꾸기 새끼의 크기가 개개비 어미 새보다 두세 배쯤 큰 데도 자기 새끼인 줄 알고 벌레며 메뚜기를 열심히 잡아다 먹인다. 날개짓을 하고 둥지를 나와서 옆 가지에 앉아 비상(飛翔)을 연습하는 도중에도 더 부지런히 먹이를 날아다 먹인다.

그때 진짜 뻐꾸기 어미가 가까운 나뭇가지들을 옮겨다니며 뻐꾹! 뻐꾹! 신호를 한다. 드디어 날개짓을 하게 된 뻐꾸기 새끼는 어미 뻐꾸기를 따라서 하늘 높이 멀리 사라진다.

저 얄미운 뻐꾸기, 이 조화가 무슨 조화일까? 이 무슨 해괴한 조물주의 장난이란 말인가. 내레이터의 말이 오랫동안 여운을 남긴다.

‘그러나 그것을 인간의 상식만으로 해석할 문제일런지…….’

언뜻 떠오르는 나의 뻐꾸기 친구.

Y는 나의 고등학교 동기이다. 학교가 같은 것은 아니고, 같이 운동을 하면서 사귄 친구이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기계체조에 빠져들었다. 평행봉이며 철봉에 매달리고 재주넘고 돌고 하다가 어느 날 내가 남보다 소질이 뛰어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때가 고등학교를 갓 올라갔을 때였던 것 같다.

나는 이럴 것이 아니고 정식으로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 학교에는 기계체조부가 없었다. 이웃 K고등학교는 기계체조로 유명했고, 또 나의 사촌 형, 동생이 모두 그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K고등학교에 정식 협조 요청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들은 기꺼이 나를 자기들 클럽 안에 끼워주었다. Y는 K고등학교의 나와 같은 학년의 기계체조 부원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면서 우연히 Y와 나는 같은 대학을 가게 됐다. 둘이 다 외국어문 계열을 택했는데 학과는 같지 않았지만 모두 외국어에 소질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학교 앞 가까이에 하숙집을 정하고 있었는데, 그는 학교에서 먼 곳에 숙소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학교에서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에 있는 내 하숙집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그는 완전히 나에게 기생(寄生)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Y는 무엇이나 나를 시켜 앞장을 서게 하고 실속은 자기가 챙기는 짓을 예사로 하고 있었다.

 

은순이는 내 하숙집 옆집에 사는, 앞 도로가의 문방구점 딸인데 나를 무척 좋아하던 처녀이다. 그녀는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엄마 아빠를 따라 상경하여 집안일을 돕고, 가끔 문방구 일도 보곤 하였다. 통통하고 복스럽게 생긴데다가 살결이 무척 고운 아이였다. 문방구점 안집이 내 하숙집 옆집이기 때문에 항상 나와 얼굴이 마주치곤 하였었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연애편지라는 것을 그녀에게서 받아보기도 하였다.

어느 날 은순이는 자기 평생에 가장 큰 용기를 내어 우리 하숙집 대문을 들어섰다.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내 방으로 들어온 그녀는 선물을 한 보따리 풀어놓았다. 거기에는 자기 문방구점에서 팔고 있는 좋은 물건이 다 들어 있었다. 연필, 볼펜, 두꺼운 노트, 앨범, 컴퍼스, 분도기 그리고 제일 인상적인 것은 질기기로 소문난 낙하산 양말이다. 그 양말을 나는 학교 다니면서 내내 신고, 대만 유학 5년이 끝날 때까지 신었으며, 목에 고무줄이 하나도 없이 다 늘어져 흘러내려서 못 신을 때까지 신었었다.

은순이가 내 하숙집에 놀러오면 하숙집 과부 딸은 농담 겸 시기심섞인 말투로,

“너, 양근이 학생 보러 왔지!”

하고 놀려대곤 했다. 그럴 때면 그녀는 도망을 치듯 다시 나갔고, 그녀의 바삐 나가던 뒷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나는 지금도 그녀의 편지 내용을 달달 외울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 은순이를 나 없는 사이에 Y가 놀러 왔다가 이문동 뒷산에 가자고 해서 어쩌고 저쩌고 했다지 않은가.

어느 땐가는 Y와 내가 이웃 대학의 요업공예과 여학생을 사귄 적이 있다. 나와 사귀게 된 A여인은 지적으로 생긴 미인형이었고, Y가 사귄 B여인은 더 건강하고 활달한 편이었다. 한때 나는 A여인에게서 순정 같은 것도 느꼈으며 장래까지도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런데 Y가 B여인을 만나러 이웃 대학에 갔다가 B여인을 만나지 못하고 우연히 A여인을 만나자, 뒷산에 산딸기 따먹으러 가자고 했단다. 그리고는 그만 숲속에서 A를 범했노라고 재미지게 웃으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닌가.

그뿐인가, 내 하숙집에는 과부 딸이 있었다. E여대를 나온 멋쟁이 여인인데 시집간 지 1년도 못되어 헤어지고 친정에 와 있었다. Y가 어찌나 유들유들하고 붙임성이 좋은지 어느 새 그녀와 의남매(실제는 그렇고 그런 사이)니 뭐니 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때 우리는 졸업이 다가오고 있었으나 취직이 참으로 까마득한 일이었다. 그런데 Y는 그 과부 딸이 소개한 친척 아저씨 덕분에 졸업이 몇 달 남았는데도 벌써 S은행 본점의 외국 담당 사원으로 특채되었었다.

 

그리고는 오늘까지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얼마 전 옛 기계체조 친구들과 아~주 오랜만에 해후가 있었다. 그런데 Y는 은행 합병 건으로 나오지 못한다고 했다. 60을 바라보며 S은행 본점의 이사가 되어 있는 그를 이제는 용서해 주려고 했는데. 20년 전쯤에도 이런 기회가 한 번 있었을 때 나오지 못하더니, 이번에도 나오지 않았다. 나의 뻐꾸기 친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