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사진 한 장

                                                                                           강 숙 련

 칠순이 넘은 사촌 언니의 옛 결혼사진 한 장을 받아들고 마치 잃었던 기억을 되찾은 듯한 흥분을 느낀다. 이 사진이 내게 더없이 소중한 까닭은 결혼식의 당사자들과는 조금 무관하다. 누렇게 색이 바래고 삭아서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은 화면 속의 사람들이 정겨운 것은 얼굴조차 모르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들어 있는 유일한 사진인 까닭이다.

친정 어머니는 “너거 아버지 한 번 찾아봐라.” 하시며 짓궂게 웃어 보인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믿으셨던 걸까. 아무려면 제 아버지를 못 알아보랴 싶었을까. 하지만 쉽게 찾을 수가 없다. 기억조차 없는 얼굴, 살아 계셨다면 팔순이 넘으셨을 아버지는 암만 찾아도 없고 모두가 지금의 내 남편보다 더 젊은 청년들만 쭉 서 있다.

짧은 순간, 잔머리를 굴렸다. 오라버니나 남동생을 닮은 얼굴을 찾아본다. 몇 사람의 얼굴을 건너뛰고, 아스라한 기억 속의 아버지를 되새겨보지만 안타까운 마음만 더한다. 손바닥만한 사진 위에서 일어나는 조급증을 견디지 못하고 괜히 볼이 메인다. 정말 모르겠어. 누가 우리 아버지인지.

어머니의 손끝이 머무는 곳에서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처음으로 상면했다. 아버지는 의외로 미남이다. 곧게 선 콧날이 서늘하다. 햇살이 눈부셨을까, 미간을 좁히고 약간 찡그린 표정이 나와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몇십 년만에 만난 아버지가 미남이라는 것이 왠지 싫지 않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못난 사람이라고 늘 원망하곤 했다. 집안에 경사가 나도 ‘못난 니 아비’를 들먹이며 돌아앉아 훌쩍이곤 했다. 아버지를 닮은 막내가 어쩌다 아버지 같은 행동만 해도 명 짧은 아빌 닮는다고 펄펄 뛰셨다. 그러다 보니 은연중에 아버지가 정말 못난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눈이 서늘하도록 훤한 장부일 줄이야. “인물이야, 니 오라비가 아버지보다 더 낫지.” 어머니는 끝까지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그렇게 감추신다.

아버지에 대한 살뜰한 기억은 별로 없다.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계시다가 내가 다섯 살 되던 해 돌아가셨으니 변변한 추억 하나 만들어 놓고 가신 것이 없다. 비루먹은 강아지처럼 마당 귀에서 어머니를 기다리던 어린 시절의 기억만 생생할 뿐이다. 아버지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걱정도 해본 적이 없다. 다만 생활이 어려워 곤란을 겪었을 때 간혹 아쉬워했다. 그것은 핏줄이라는 감성에서 그리워한 것이 아니다.

그 후 나이가 들고 나 역시 두 아이의 어미가 되었다. 어쩌다 보니 남편 또한 유년에 아버지를 잃은 사람이라 이래저래 아버지 복은 두 사람 다 팔자에 없었나 보다.

그런데 요즘 들어 불현듯 아버지 있는 사람이 종종 부럽다. 살아 계신다 해도 이제는 연로하시어 내가 비빌 언덕이 못될 것이련만 불쑥불쑥 애틋함이 인다. 그냥 바라만 보아 주신다 해도 좋을 것 같다.

남편이 두 아들에게 쏟는 부성을 보면서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을까, 날 끔찍이 사랑하던 아버지가 있었을까 하고 잠시 뒤를 돌아보곤 한다. 나에게 과분한 사랑을 주시는 선생님을 뵐 때도 가끔씩 아버지 생각을 한다. 애당초 팔자에 없는 복이련만 미련처럼 가슴에 사무친다.

딸이 아버지에게 애정을 느끼고 동성인 어머니에게 반감을 가지는 심리적 경향을 엘렉트라 콤플렉스라 한다. 연세가 지긋한 선생님을 따른다거나 나이 차이가 많은 남자를 연인으로 두는 것도 그런 심리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야말로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이 아닌가.

책상 유리 밑에 넣어둔 사진을 들여다보며 이따금 아버지를 불러 본다. 아이처럼 ‘아버지’하고 불러놓곤 나 혼자 씩 웃기도 한다.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던 낱말이 이제야 입술 위에서 공글러지는 기분이다. 내가 언제 그 이름을 불러보았던가.

빛바랜 사진 한 장이 내게 일으킨 파문은 의외로 크고 오래 간다. 사진 속의 아버지를 될 수 있는 한 더 크게 부각시켜 가슴 속에다 깊이 새겨두기라도 하려는 듯 오래오래 들여다본다. 마치 아버지가 슬쩍 걸어나와 내 곁으로 다가올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면 어느 새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아버지의 손을 잡고 상상의 나라로 달려가는 나를 보게 된다.

이제는 내게도 아버지란 낱말이 그리 낯설지 않을 것 같다. 빛바랜 사진 한 장으로 몇십 년만의 부녀 상봉을 한 셈이다.

 

 

 

강숙련

문화일보로 등단(95년).

부산문협회원. 동백수필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