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최 순 희

 지방 국립대학 교수로 있는 독신 친구가 오늘 서울에 왔다가 난생 처음 ‘아줌마’란 말을 들었노라며 당혹스러워 한다. 아파트 주민들도 그가 교수란 것을 알고 있어서, 한정된 생활 반경은 마흔도 중반을 향해가는 지금껏 그 외의 호칭은 필요치 않게 했던 모양이다. 친구의 당혹감은 교수와 아줌마라는 두 호칭 사이의 사회적 위상의 낙차에 기인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내가 처음으로 아줌마라고 불리웠을 때의 당혹감이 떠오르면서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졌다.

아줌마란 호칭에서 가장 흔히 연상할 수 있는 장면은 아마도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제법 붐비는 지하철 안, 마침내 앞에 자리가 나서 앉으려는 순간 어디선가 ‘아줌마’ 하나가 날쌔게 몸을 날려 엉덩이를 들이민다. 앉고 나선 쑥스러운지 아이고 허리야, 하고 비둔한 옆구리를 툭툭 치며 겸연쩍게 웃는다. 여간해서 풀어지지 않을 듯한 꼬불꼬불한 파마 머리를 내려다보며 자리를 빼앗긴 청년은 어깨를 으쓱한다. ‘아줌마’라는 ‘족속’들의 막무가내함엔 당해낼 도리가 없다는 뜻이다. 만일 그가 젊은 여성이라면 절대로 저런 아줌마로 늙지는 않겠다고 다짐할지도 모른다.

사전적인 혹은 아줌마, 아주머니란 호칭의 원래의 바른 용법이야 무엇이든지간에, 아줌마라는 호칭에는 이렇듯 부정적인 사회 문화적 상징이 내포되어 있다. 6·25를 전후하여 태어난 세대의 옹이 진 삶이 나름의 형태를 찾아 미처 승화되지 못한 채, 젊은 소설가 한창훈이 왞デ?에서 말했듯, ‘수줍음이 무늬가 되던 몸에서 독기가 새록새록 피어 나오다가 끝내 몰염치의 아성으로 굳어지는 그 독한 시간대’를 지나고 있는 중년 여성들을 비하하여 통칭하는 말이겠다. 요컨대 신체적, 정신적으로 모든 여성스러움을 상실한 채 ‘딱딱한 굳은살로 차가운 바닥을 버텨내는’ 여인네들을 지칭한다. 그리하여 아줌마란 젊은 여성들에게는 뻔뻔스러울 정도의 강인함과 억척스런 공격성과 염치없는 이기심 등, 부디 닮고 싶지 않은 여러 질긴 속성들의 집합체가 된다. 이미 마흔줄에 들어선 중년 여성이라면, 모쪼록 그 대열에만은 속하지 않고자 이런저런 문화 센터를 기웃거리며 제 정신의 꽃을 피우려 발돋움하게 만드는 것이다.

세월 좋던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른바 미시족의 세상이었다.기혼이면서도 미혼인 듯, 최소한 초등학생의 학부모이면서도 그 아이의 엄마라기보다는 언니나 이모 같은 외모를 자랑하던 미시족들은, 상업주의의 부추킴을 타고 날아올라 미시족이 되기 위한 신체적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한 다른 삼십대들을 주눅들게 했다.

그러던 것이 춥고 배고픈 IMF 체제로 들어서면서는 지금껏 소외되었던 아줌마들의 진가가 새롭게 조명받는 세상으로 돌변한 듯하다. 한강 둔치에서, 넥타이를 맨 채 오른 북한산에서 하루 해를 죽이는 고개 숙인 가장들 대신, 아줌마라는 ‘한 세월 묵은’ 연령층을 혐오스런 그 무엇으로 만들어버린 바로 그 억척스러움을 발휘하여 이 추운 시대를 건너갈 것이 기대되고 있다. 그리고 텔레비전 연속극 등을 통해 이런 긍정적인 아줌마 상(像)의 대표로 떠오른 인물이 바로 탤런트 J씨인 모양이다.

시대를 앞서 읽는 광고 제작자들은 식당 부엌 일손이나 가정부 역을 전담해왔다는 그의 연기 이력에서 이 시대에 가장 호소력 있는 이미지를 이끌어냈다. 힘겨운 노동의 산물인 것만 같은 아당진 몸매, ‘먹물’과는 인연이 없을 성싶은, 그리하여 결국엔 고만고만한 아줌마들인 우리들에겐 친근하게 다가오는 투박한 말투. 이런 이미지는 먼 곳에 자식을 보내놓고 전화선을 통해 그리움을 달래는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으로, 또 아무리 오래 끼고 있어도 주부 습진일랑 걱정 없는  고무장갑을 권하는 옆집 주부의 모습으로 다가와 막강한 상품성을 발휘한다. 최근 성교육 강사로 일약 스타가 된 K씨의 경우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물론 건강한 성을 표방하며 이제껏 그늘에서만 이루어지던 성에 대한 논의를 양지로 끌어낸 데 대한 공감이 먼저였긴 했다. 그러나 전형적인 아줌마 스타일의 그의 넉넉한 신체와 인생의 이런저런 둠벙에 그 나이 몫만큼 빠져본 사람만의 솔직 담대함이 많은 이들의 감동을 불러일으킨 것이 주효했을 것이다.

얼마 전에 제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 발표되었다. 처음 그 제목을 듣는 순간 나는 좀 시틋한 기분이 들었다. 옺玆杵?와 왉瞞?, 왞ゾ?로는 모자라 이젠 왞デ蘿뺑沮? 세련된 도시적 감수성에 빛나는 작품들이 지천인 터에 이제 와서 6, 70년대식 홍합 공장 얘기라니?

어제 나는 친구의 권유로 마지못해 그 왞デ蘿뼈?읽었다. 밤을 새고 난 아침, 눈은 피로하나 알 수 없는 생명력이 내 몸 속에도 힘차게 솟구침을 느낀다. 소설은 여수의 한 홍합 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싱싱한 삶을 찰진 남도 사투리로 애정 깊게 그려낸 것이었다. 변화의 물결에 노출된 농어촌의 삶의 현장과 이를 그 밑바닥에서 건강하게 떠받치고 있는 거칠고 억센 아줌마들의 토착적 생명력 말이다. 그것은 고개를 떨군 채 설자리를 잃어버린 이 시대 남정네들의 어깨 짐을 덜어줄 대안으로서의, 이 땅의 아줌마들에 대한 헌사였다. 그 작품에 돌아간 큰 상은 작가의 헌사에 무게를 실어주었고, 이는 움츠러든 이 시대의 희망이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미시족이 각광받던 시절, 제 분수를 잘 아는 나는 서둘러 아줌마 세대로 물러남으로써 의연한 척했었다. 이제 아줌마 시대가 되고 보니, 나이만 먹었을 뿐 참다운 아줌마가 되기에도 마찬가지로 자격 미달인 스스로에 당혹감을 느낀다. 머릿속엔 어줍잖은 ‘먹물’이 고여 창백하게 바래어 가고, 행동거지 또한 교양이란 이름으로 항상 솔직할 수만은 없다.

어느 날 시장 골목의 생선 장수와 사소한 시비가 붙었다. 나 같은 어설픈 아줌마에게 가장 모욕적인 말이 무엇인가를 상인은 잘 알고 있었다. 마주 대거리도 못한 채 돌아서는 게 고작인 내 등 뒤로 그의 야유가 날아왔다.

“잘 가슈, 아가씨!”

분방한 젊은 여성의 행동을 견제하고자 할 때 목소리를 약간 돋우어 “아줌마!” 하고 부름으로써 모욕을 줄 때처럼, 꼭 그렇게.

어느 것이 덜 하달 수 없을 정도이던 그 모욕감의 정체를 친구는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