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료작-

겨울나기

                                                                                                   고 인 숙

 겨울바람이 차다.

모임이 있는 날, 집에서 가까운 올림픽 공원까지 걸어갔다. 오랜만에 걸어본 12월의 공원에는 수많은 은행잎들이 흙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지난 가을, 그렇게도 황금빛을 뽐내던 은행 잎새들, 바람결에 나붓나붓 내려앉던 부채꼴의 잎들이 조용히 발 밑에서 사그라들고 있다.

빛바랜 누런색으로 대지 위에 쌓여 있는 그들, 이제는 겨울나기를 준비한다. 겨울에 태어난 나는 무척이나 겨울을 좋아했다. 추운 만큼 안으로 뜨거울 수 있어 좋다며, 겨울날 후후 불어 마시던 차 한 잔에 입김을 날렸었는데… 공원의 나목(裸木)들을 보니 그때의 내가 오만으로 다가온다.

 

나에게는 은행나무에 반했던 기억이 있다. 지난 가을의 끝무렵, 동학혁명의 유적지인 정읍, 부안, 고창 등지로 답사를 떠났다. 예정지를 따라 발길을 옮기다가 정읍의 고부향교에 다달았다.

시골 마을의 정취가 남아 있는 낮은 담을 따라 들어가니 예의 홍살문이 보이고, 말에서 내려 몸가짐을 바로하라는 하마비(下馬碑)가 나를 맞는다. 뒤쪽으로는 향교의 길다란 문에 빗장이 잠긴 채로 묵묵히 서 있다.

향교와 서원에는 세 개의 문이 있다. 가운데의 큰 문은 혼령들을 위한 문이고, 사람들은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 왼쪽 문으로 나온다. 굳게 닫힌 향교의 문에는 달팽이 모양으로 둘둘 감긴 무쇠 고리가 감겨 있었다. 고리를 풀고 슬며시 문을 미니 ‘삐그덕’ 하는 나무 문의 소리가 닫혀 있던 공간을 열어준다.

큰 문이 열리는 순간, 잠시 나를 잊었다. 때마침 불어든 가을바람에 500년 묵은 두 그루의 은행나무 잎들이 부서지듯 내려앉는 모습이란 노란 나비들의 군무 같다고 할까……. 어느 만큼의 하늘이 이곳에만 숨겨놓은 선경인지, 아니면 동학 농민의 한서림이 백년이 지나 이곳을 찾은 객에게 살풀이로 내려앉는 것인지, 온몸으로 맞은 노란 향연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오르막 언덕빼기의 끝에 위치한 향교여서 닫힌 문 밖에선 문 안의 향연을 알 수가 없다. 암수가 따로 있는 은행나무는 혼자서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향교의 작은 앞뜰 언덕받이에 마주보고 자리한 두 그루의 나무는 몇백 년을 두고 사랑을 나누고 있다. 봄바람에 날아든 수꽃의 두드림에 조용히 문을 연 암꽃의 역사가, 오늘 이곳을 찾은 여행자의 발길을 잡는다. 찾는 이, 줍는 이 없어 사방으로 널려 있는 은행알들이 지나간 세월의 크기를 짐작케 한다.

오랜 세월을 이어온 사랑은 거역할 수 없는 힘을 지닌다. 주위의 사랑을 짚어보게 한 은행나무의 경건함에 취해 있는데, 나풀나풀 잎새 하나가 내 품을 파고든다. 그 잎새 하나를 마음갈피에 끼우고, 가을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서서…….

 

12월의 바람이 향교의 앞뜰에도 불고 있겠지. 계절은 우리에게 명령을 한다. 추운 겨울, 인간에겐 옷을 입으라 하고 자연에겐 벗으라 한다. 더위 앞에서 사람에겐 벗으라 하고 나무는 무성한 잎을 입으라 한다. 인간과 자연의 겨울 채비, 여름나기가 영 다르다.

나무에서 흙으로 돌아간 은행잎들, 직장을 잃은 수많은 실직자들, 생존을 위한 필연의 선택 앞에 추운 겨울을 보낸다. 수분 부족을 막기 위해 기공을 닫아 모든 영광을 땅 위로 되돌리는 나무의 겨울나기는 홀로서기를 위한 자기와의 싸움이다. 나무줄기가 얼어붙는 눈손님이 찾아와도 묵묵히 받아내어 눈꽃으로 피워내는 겨울 나무의 용기 있는 사랑을 배우련다.

오늘도 서울역 앞 노숙자들의 힘든 겨울나기가 사회면의 뉴스로 이어진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나무만이 나이테가 선명하듯, 일터에서 떨어져 나온 실직의 아픔을 눈꽃으로 키워내는 작업이면 좋겠다. 배급소 앞에 식판을 들고 서 있는 노숙자들, 그들의 시름에도 새봄을 준비하는 꽃눈이 숨어 있으리라. 아픔마저도 감싸안아 상처를 진주로 배어물듯, 노숙자의 겨울도 희망의 나이테를 두를 수 있기를 기도한다.

 

 

고인숙

1961년 生. 전북대 문헌정보학과 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