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회 추천-

편 지

                                                                                          박 철 호

 주말이라 아침부터 들뜨는 마음을 눌러 앉히고 한 권의 편지지를 펴들었다. 밀린 답장도 쓰고 한동안 뜸했던 친구들에게 신년 인사라도 전할 궁리에서다. 마지막으로 편지를 쓴 것이 지난 해 봄이었으니 햇수로는 일년이 넘었고, 그 사이 계절도 서너 번 바뀌었다. 이렇게 큰 마음먹고 편지를 쓰는 일이 연례 행사처럼 되어버린지는 꽤 오래된 것 같다. 그나마 자주 왕래되는 대부분의 편지는 사무적인 것이 많아서 정을 느끼며 편지를 써보는 것은 참으로 오래간만의 일이다.

보통 편지를 쓰기보다는 받기를 더 좋아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데 내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편지에 대체로 무감각해져 있는 일상 속에서도 어쩌다 정이 넘치는 한 통의 편지를 받는 날이면 온종일 기분이 좋다. 외국에 나가 있을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편지함을 기웃거리곤 하는데 그러다가 운좋게 반가운 편지를 발견할 때면 고국으로부터의 소식이 가장 큰 선물이며 위로인 것을 절감한다. 하루 일과중에서 연구실로 우편물이 전달되는 시간이 가장 기다려지는 까닭은 편지를 잘 쓰지도 않으면서 받고는 싶은 염치없는 욕망이 내 안에 꿈틀대고 있기 때문이다.

편지에는 종류도 많고 사연도 많다. 연애편지로부터 국군장병 위문편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최근에는 죽은 남편에게서 사랑의 편지를 받는 ‘편지’라는 영화도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다.

많은 편지 가운데 가장 감동이 큰 것은 아무래도 이성으로부터의 핑크빛 연서일 것이다. 그것은 피같은 그리움으로 점철된 한 자 한 자에 누구도 힐날할 수 없는 혼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오랜 기간 교제하면서 수많은 편지를 나누었던 사람들의 사랑과 추억을 전해 들을 때면 왠지 그들에 대한 신뢰가 더 깊어지고 십년지기 같은 무척 가까운 이웃으로 느껴지는 것도 이런 편지의 위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도 결혼 전에 2년 동안 아내와 사귀면서 수백 통의 편지를 썼다. 그 중에는 사랑을 잃을까봐 허세와 위선으로 가득 찬 편지도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15년이 지난 지금 권태로운 일상 속에서 가끔 연애할 때 주고받았던 편지나 엽서를 다시 들춰보면 진한 사랑의 추억에 잠겨보는 즐거움은 새로운 활력소가 되기에 충분하다. 희미해지는 사랑의 그림자를 추억의 편지 한 장으로 되살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이며 믿음직스러운 행운인지 모른다.

내 밑에서 대학원 석사 과정을 밟다가 지금은 일본에서 유학중인 박군의 고백 또한 편지의 힘을 웅변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박군은 대학 2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를 하였는데 병영에서 내게 편지를 해온 최초의 학생이었다. 해마다 수십 명의 학생이 재학중 입대를 하지만 병영에서 편지를 보내 오는 학생은 그때까지 단 한 사람도 없었던 터라, 나는 바쁜 일과중에도 내게 편지를 보내온 박군의 성의가 무척 고마웠다. 게다가 제자의 편지에는 꼭 답장을 한다는 나의 원칙이 있기도 하고, 그의 고된 병영생활을 위로도 해줄 필요가 있어서 나는 바로 답장을 써보냈다. 그런데 내가 보낸 답장이 그가 한창 야외훈련으로 고생을 하고 있던 순간에 전해져서 그에게 적지 않은 위로와 힘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박군은 제대 후에 내 연구실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고, 4년이 지난 지금은 일본에서 나의 지기(知己)인 하야시 교수의 대학원생으로서 열심히 연구를 하며 학업에 열중하고 있으니, 편지 한 장이 국내외로 좋은 인연을 맺어준 셈이다.

반면 내게는 편지 한 장으로 오해가 생겨 인연이 단절된 부끄러운 기억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여자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했던 나의 옹졸함이 문제였던 것 같다.

그러니까 대학 2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내가 속한 서클에서 양구의 남면으로 농촌 봉사활동을 나갔다. 가정형편으로 정규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시골의 재건중학교에서 낮에는 학생들과 함께 운동장을 닦고, 밤에는 교과목을 가르치는 교육 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 많은 학생들을 알게 되었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재건중학교에서 만난 농촌의 한 여학생이 몇 차례 집으로 편지를 보내왔다. 내용은 순수한 신변잡기에 불과하였으나 편지지며 봉투의 색과 문양이 마음에 걸렸다. 당시 내 느낌으로는 학생답지 않다는 지나친 편견을 갖게 되었고, 그런 느낌이 내 답장에 그대로 옮겨졌다. 내가 시골의 재건중학생이 사치스럽다는 투의 답장을 보낸 뒤부터 그녀의 편지가 끊겨 버리고 말았으니, 그때 내 편지로 인해 그녀가 자존심에 적지 않이 상처를 받았을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한 생각이 든다.

편지란 이렇게 여러 가지 얼굴을 할 때도 있지만, 우리가 잘 활용하면 서로 정을 나누고 생활에 큰 활력을 주기에 충분하다. 정성스레 쓴 긴 사연이 아니더라도 짧은 글 속에서의 긴 교감과 사랑이 얼마든지 가능함을 보여 주는 사례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생일카드 속에 적힌 짧은 사랑의 글귀가 그렇고, 도시락 속에 담겨진 작은 메모 하나가 그렇다. 편지 한 장으로 시작된 외국인과의 친밀한 교류가 수준 높은 민간 외교로 승화되는 경우는 가까운 나라 사랑의 길이기도 하다.

요즘에는 컴퓨터의 등장으로 전자 메일처럼 무척 간편하고 신속해서 좋은 편지도 있다. 정겨운 종이 편지를 받아 봉투를 뜯어 볼 때의 감흥은 그다지 기대할 수 없어 아쉽지만 컴퓨터 활자로라도 정이 담긴 소식을 나눌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누구나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모두들 쉴 틈없이 분주하고 삭막한 기계문명으로 찌든 세상 속에서 편지 한 장으로 쉬어가며 마음을 드넓히고 맑은 영혼을 가꾸어 나가는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을 텐데, 그게 쉽지 않은 게 또 현실이다.

큰 맘먹고 시작한 일인데도 한 장의 편지지에 강바람도 담고 산새의 지저귐도 담아서 그리운 친구와 이웃들에게 사랑과 평화를 전하리라는 나의 마음은 여태 못다 채운 편지지 위를 서성이며 뜸을 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