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앉는 것을 배운다

                                                                                                       김병규

 회사를 그만두고 난 뒤 마음은 홀가분했지만, 내심 갈등이 없지는 않았다. 자진해서 물러났지만 마음을 다스린다는 일이 호락호락 되질 않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은 참 속도 너그럽다고 생각되었다. 억지로라도 일을 해야 한다고 여겨 몇 편의 논문을 써서 텅 빈 마음을 메꾸어야만 했다. 그것도 학생들이 시험 답안지에 빈칸 메우기나 한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자책도 했다. 그러나 소인이 한가로이 있으면 좋지 못한 일을 한다는 성현의 말씀이 솔깃해졌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평생 이처럼 일없이 지내는 일이 처음이어서 처음엔 적응이 잘 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평생 교사 노릇하다가 정년 뒤에도 회사에 나가 글을 썼으니 어지간히 긴 고용살이를 한 셈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보면, 나도 이젠 앉아 있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단단히 결심하고 있다. 인간은 걸음마를 배운 이래 평생 걸어다녀야 하지만, 걸을 뿐만 아니라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도록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인생은 항상 흔들리는 것’ 곧 동자(動子)라고 가르치고 있는데(주역), 인생은 본디 흔들릴지라도 흔들리지 않고 있는 시간도 있어야 인생의 보람도 있을 것이 아닐까? 따라서 가만히 앉아서 쉬 흔들리지 않는 법을 터득해야 할 것이다.

베란다의 흔들의자에 앉아 여느 때 같으면 하릴없는 것으로 여겨질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전망이 좋아 여긴 낙동강 하류에서 가덕도 그리고 거제까지 훤히 보인다. 산과 바다와 하늘이 두루 보여 저절로 갑갑한 가슴이 트이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조용히 앉아 있는 자세를 흐트림없이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어지러운 모습이 보이는 경박한 행동은 극력으로 막아야 한다.

한때 나는 ‘가을에는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소서’라고 기도하는 자세를 흠모했다. 가을엔 기도하면서 겨울을 조용히 맞아들이려는 간곡한 소원이었다. 봄, 여름은 얼마나 감정과 행동이 헤펐던가 여겨져 적어도 가을엔 경건히 기도하고 싶었다.

그런데 기도하는 자세를 바라는 애틋한 심정도 먼저 조용히 앉아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어떤 일을 당하여도 그에 대처할 자세가 필요할 것인데, 조용히 앉는 자세가 먼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회사를 그만두는 뜻을 밝히고 나오는 것도 나에겐 죽음의 연습이었다. 우린 나날이 사람들과 헤어지고, 어떤 간절한 일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조그만 죽음을 겪는다. 그런 속에서 우린 자기가 어떤 행태의 죽음을 당한다. 자기가 걸어온 길목에서 우린 스스로의 죽음을 목격하고 살아간다. 식물의 죽음이나 동물의 죽음은 물론 숱한 사람들의 죽음을 보면서, 그것이 자기 아닌 것의 죽음으로 무관심하게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스스로의 한 모서리가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자신의 죽음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담담해져야 할 것이다. 초조해진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을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앉아서 무엇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번거롭기만 하다.

‘나는 빈다 ─ 너무나 내가 자기와 지나치게 논의하고 설명하는 문제를 잊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더욱 나아가 ‘생각하고 또한 생각하여 괴로워하지 않기를 가르쳐 주소서. 조용히 앉는 것을 가르쳐 주소서.’

이런 심경으로 간절히 바라고 빌게 된다. 흰구름을 바라본다. 흰구름은 거침이 없다. 둥둥 떠가는 구름은 자유자재다. 흰구름이 표표로이 푸른 하늘을 흘러가고, 그것은 잊었던 아름다운 음률을 되새기게 한다.

“구름이 산의 굴을 나와서 뜻없이 이리저리 떠돈다(雲霧心出山由)”고 하듯이, 구름이 무심하듯이 사람도 나아가고 물러남이 집착이 없이 자연의 순리에 맡겨 허심탄회해야 할 것이다. 만일 모든 것이 무심하다는 것을 깨달으면 일체의 번뇌, 생사라는 것도 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가만히 앉아 뜬구름을 바라보면서 빈 마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가만히 앉는 것을 가르쳐 주소서’의 간절한 소원은 이런 모습이어야 할 것이다. 여태까지 나는 얼마나 깝된 것으로 나의 마음을 흐리게 했던 것일까.

실은 이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도 우린 아름다운 것, 향기로운 것의 혜택을 얼마나 많이 입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베란다에서 저녁놀을 바라보면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충족감 같은 것이 치밀어온다.

이젠 자기의 일에 대하여 너무 괴로워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자연을 배워야 한다. 백운이 자유자재로운 것은 무심하기 때문이다. 무심한 갈매기의 무심을 배워야 하리라. 요즘과 같은 물질 편중의 세계라든가, 논리만 주장하는 세계는 전후 좌우가 어지롭기만 하다. 그것도 모자라 인간은 자연도 파괴해 가고 있다. 그래도 자연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모습을 잃지 않고 대해 준다. 이만큼 큰 은혜가 어디 있겠는가.

이 세상에는 태양도 있다. 달도 있다. 영혼의 벗과 같은 별도 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훌륭한 것이 우리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다. 구름이 있다. 바람이 있다. 여름이 오고 가을이 따라온다. 사람들의 아름다운 우정도 있다.

이런 것 가운데서 조용히 앉는 것을 배워야 한다. 많이 지껄이고 많이 걱정하는 것(多言多慮)은 아무런 보탬도 깨달음도 주지 않는다. 오히려 구차스런 말을 끊고 걱정을 끊으면(絶言絶慮)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이런 소원을 펴다니, 나의 인생은 슬픈 이벤트인지 모를 일이다.  

 

김병규

현대수필 문학 대상 수상. 전 동아대 부총장.

저서 『법 철학의 근본 문제』, 수필집 『목필로 그린 인생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