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집

                                                                                     韓炯周

 지난 구정에 일본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아내는 그 나라 전설 속의 가공 인물인 모모타로(桃太郞) 인형을 사 왔다. 인형 장에 새 가족을 진열하면서 그 동안 수집한 모든 인형을 헤아려보니 500개가 넘는다.

곁에서 그들을 눈여겨보던 나는 대견한 마음이 들어서 “식구가 더 늘었으니 더욱 부지런히 일해서 인형 식구를 먹여 살려야겠는데 이젠 나이 먹고 허리도 아파서 부담스럽다”고 농담을 한 마디 던져서 크게 웃었다.

우리들의 해외 여행은 1982년 4월의 구라파 여행을 시작으로 어김없이 매년 약 30일간 새로운 나라를 찾게 되었다.

인생 50고개를 넘기면서 초로의 우수가 깃들고, 변화 없는 일상생활의 반복에서 오는 권태로움을 느끼면서 그 해소책으로 등장한 것이 해외 여행이었다.

돌이켜보면 내 나이 28세, 아내는 26세에 결혼하고, 그 후 20여 년간 우리들은 직업상 변변한 휴가를 즐길 시간적 여유를 갖지도 못하고 열심히 살아왔다.

여행 속에는 미지(未知)의 세계로 향한 아련한 동경(憧憬)이 있어서 좋다. 그것은 희망이고 꿈이라 할 수 있다. 꿈을 갖는다는 것은 생에 대한 소중한 보람과 기쁨을 간직한다는 뜻도 된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 떠나기 전 일찍부터 가슴을 설레며 떠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여행하면 의무나 책임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에 젖어 마음이 편하고 즐겁다. “반찬 걱정을 하지 않아 좋다!”는 아내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한 마디 독백이 설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여행길에서는 견문이 넓어지고 사색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자아의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 여행길에서 얻은 지적 욕구의 충족은 새로운 추억으로 이어지고, 이와 같은 추억은 성취감과 함께 두고두고 우리들의 생활에 윤기를 더해 준다.

 

아내는 어려서부터 유난히 인형을 좋아했다. 그러한 아내의 마음이 해외 여행을 하면서 가는 곳마다 그 나라의 특색을 지닌 인형들을 수집하게 하였다. 결국 여행을 거듭할수록 인형 수집은 열기가 더해졌고, 그것은 여행 목적의 하나로 되어 버렸다.

인형 장 속의 인형들에게는 각기 그들의 고향이 있고 모국(母國)이 있다. 따라서 생긴 모습이나 표정이 다르고 차려입은 복장이 다르다. 그들이 부르는 그 나라의 민요가 아름다운 선율을 타고 들려 올 것만 같고, 그들의 중얼대는 언어가 들릴 것 같은 느낌도 받는다. 아내는 각기 다른 그 나라의 백화점이나 상점에서 인형을 구입하면서 그때의 상황을 자세히 기억한다. 또 구입 날짜를 그 인형의 입양일처럼 기록하고, 산사람을 대하듯 따뜻한 정으로 그들을 매만진다.

구라파의 인형 중에서 그 정교함과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것이 스페인의 플라멩코 무희 인형이다.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와 검은 머리가 얼굴과 조화를 이루고, 생동감 넘치는 포즈와 화려한 의상은 과히 모든 인형 중에서 돋보인다.

브라질의 삼바 무희 인형은 육체미에 압도당하고 그를 대하면 삼바 카니발이 연상된다.

아프리카 케냐의 마사이족 인형에서는 킬리만자로 산록에 펼쳐진 사파리 파크가 눈앞에 떠오르고, 동물들의 약육강식이 처참한 현장에서 현대문명을 등지고 원시생활 그대로를 영위하는 마사이족의 소박한 삶이 애처롭게 가슴에 다가온다.

남태평양 피지에서 구입한 멜라네시아족 인형을 볼 때면 곧 식인종을 연상케 한다. 그곳에 선교를 위하여 상륙한 선교사가 흔적도 없이 그들에게 잡아먹히고 훗날 그가 신었던 가죽 신발만이 질긴 연유로 그들에게 먹히지 않고 남아 있었다는 웃지 못할 일화가 생각나서 고소를 금치 못한다.

하와이 원주민 인형에서는 훌라 댄스와 카누와 야자수의 그림자가 떠오르고, 모로코 여인이나 중동지방 여인 인형에서는 차도르로 얼굴을 가린 아름다운 눈매에서 아라비안나이트가 연상되며, 이집트, 터키, 세이셀, 스리랑카, 인도 등 동남아와 그 인접 지방의 인형들도 각기 그 나라 고유의 특징을 자랑하며 회상의 세계로 이끌어준다.

근래에 지구상에서 이데올로기 대립이 종식되면서 여행이 자유롭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러시아와 동구권의 인형도 손에 들어왔고, 중국의 인형도 뒤늦게 인형 장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제는 명실공히 전 세계의 인형들이 대부분 집합하게 된 것이다. UN 총회가 열릴 기세다.

 

진열된 인형 장의 앞 줄을 자세히 보면 가운데에 못난이 인형이 하나 눈에 뜨인다. 그것은 다름아닌 노르웨이의 트롤(troll) 인형이다.

트롤 인형은 그 얼굴 모습이 못생기고 바보스럽고 어질고 신비스럽다. 유난히 긴 코를 가졌고, 이빨이 듬성듬성 난 큰 입을 히죽이 벌리고 있다. 까치 둥지를 연상시키는 헝클어진 갈색 머리칼을 가발처럼 뒤집어 쓰고, 옆으로 늘어진 붉은 볼따구니가 인상적이다. 짚신같이 커다란 귀가 불균형을 이루는 모습은 야릇한 호기심마저 일게 한다.

트롤은 노르웨이의 전설에 등장하는 상상의 인물이다. 겨울이 길고 밤이 길고 백야가 있고 오로라가 있는 어두컴컴한 북구의 눈덮인 산야에서, 그는 낮에 바위가 되어 어느 산 속이나 개울가에 있다가 밤이 오면 사람으로 변신하여 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결코 사람을 헤치지 않고 사람을 놀라게 하면서 함께 놀기를 좋아한다. 그는 양(羊)들에 둘러싸여 놀림을 받으며, 순록(馴鹿)들과 어울려서 숨바꼭질도 한다. 박치기를 당하여 아파도 마냥 즐거워하며 웃으면서 분위기를 잡는다. 그러나 새벽에 동이 트면 곧 바위가 되어 자취를 감추니 아무도 그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양들도 순록도 사람들도.

나는 트롤 인형을 볼 때마다 평화롭고 순박한 노르웨이 사람들이 생각나며 트롤과 같은 멋이 있는 가상 인간을 전설 속에 간직하는 그 나라 사람들에 축복하는 마음이 된다.

밤이 깊어가면 우리 집 인형 장 속에서도 트롤 인형은 많은 인형들의 악의 없는 놀림을 받으며 즐겁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상상을 하면 웃음이 나고 흐믓하다.

나는 인형들을 보면서 거듭 느낀다.

‘세계는 하나!’, ‘지구촌은 한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