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산에서 줏은 단상

                                                                                               金奎鍊

 요즈음 일과처럼 되어버린 산행이 그지없이 즐겁다. 산이 집 가까이에 있어 언제든지 그냥 훌쩍 나서면 된다. 도심에 있는 야산이지만 내게는 금강산보다 더 소중하다고 할까.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을 돈다.

오늘은 모처럼 날씨가 화창하다. 산이 창 밖에서 나에게 손짓을 한다. 하던 일을 접어둔 채 불쑥 집을 나선다. 학산(鶴山)이란 이름의 이 산이 오늘 따라 환한 미소로 나를 반긴다.

사람은 누구나 세월에 밀리면 무대에서 내려와야 된다. 나도 어느덧 종심의 나이에 이르러 평생 하던 연기를 그만두고 거리로 쓸려 나와야만 했다. 마음의 준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때는 고독과 단절과 소외에서 오는 허망함을 온몸으로 느껴봤다.

마침내 정든 포항에서 대구로 살림을 옮겼다. 대구에서 겨울 어느 날 처음으로 학산을 만났을 때, 학산은 황량한 고도의 풍경을 느끼게 했다.

그래도 소나무들이며 앙상한 나목들이며 추위에 떨고 앉았던 잡초들이 양 손을 벌려 나를 꼭 껴안아줬다. 그리고 넌지시 말을 건네왔다. ─ 심혼이 외로울 때면 언제든지 찾아오라. 여기엔 늘 안식이 있으니라. ─ 그 후로 산행은 거의 매일 관습처럼 이어졌다. 낙엽과 돌멩이와 흙을 밟으며 요철의 산길을 돌다보면 언뜻언뜻 자연과의 생명의 교감 같은 것이 왔다. 얼어붙은 땅 밑에서 온갖 풀 뿌리며 나무 뿌리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숨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겨울 하늘에 떠 흐르는 구름도 우러러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생겨났다.

비가 몇 차례 지나가더니 마른 나뭇가지에 툭툭 새 순이 터져나왔다. 낙엽을 비집고 새싹이 쑥쑥 솟아올랐다. 푸른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가 싶더니 온 산 전체가 힘찬 약동과 새로운 탄생과 아름다운 창조로 분주하고 떠들썩하고 나날이 달라져 왔다.

문득 뭣인가 감이 왔다. ─ 진실로 하루를 새롭게 하라, 나날이 새롭게 하라, 또 날로 새롭게 하라. ─ 내가 좋아하는 탕왕(湯王)의 반명(盤銘)도 어쩌면 자연의 이 모습에서 얻었으리라.

하얀 꽃, 노랑 꽃, 빨강 꽃, 보랏빛 꽃… 잡초들이 저마다 자연 속에 숨어 있던 신비의 빛깔을 찾아내서 한동안 한껏 피었다가 지나가고 있다. 이제 학산은 성장(盛裝)한 30대의 여인처럼 생기 발랄하고 우아하며 풍만해 보인다. 찬란한 신록의 치맛자락은 연신 빛나고 있다. 온 산에서 풍겨내는 풋풋한 기는 내 몸에 향기로 묻어온다.

까치며 산비둘기며 꿩이며 기기묘묘한 소리를 내는 산새들이며 다람쥐도 돌아왔다. 그들의 생동하는 목소리와 벌레 소리가 함성이 되어 지금 나를 용해시켜서 자연 속으로 흘러 들어가게 하고 있다. 괜히 눈물이 핑 돈다. 신록의 아름다움 때문일까, 아니면 뭇 생명의 환희에 감동되었기 때문일까. 아름다움 속에는 언제나 진실과 사랑이 숨어 있다고 했던가. 생명의 환희 속에는 늘 순수와 희망이 내재해 있다고 했던가.

저만치 길섶에 산비둘기 한 쌍이 내려와 놀고 있다.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며 말을 건네 본다. ─ 두려워하지 말라, 나와 함께 놀자구나. ─ 허나 그들은 힐끗 눈치를 보다가 나무 위로 날아오른다. 나에겐 아직도 잔인할 수 있는 인간의 속기가 짙게 묻어 있는 모양이다.

본시 너와 나, 우리 모두는 하나의 큰 생명 속에서 끝없이 명멸하는 같은 몸이 아니던가. 자연 속의 모든 존재들과 상생상락해야 섭리에 부합한다는 것을 이제 인간들이 깨닫기 시작했단다. 산 정기를 온몸 가득히 들이마시기도 하고 비음으로 옛 노래를 부르기도 하면서 연신 산길을 걷고 있다.

사람이 제대로 철이 들자면 문혜(聞慧)와 사혜(思慧) 그리고 수혜(修慧)를 닦아야 된다고 했다. 우선 듣는 지혜는 귀로만 듣지 말고 눈으로 듣고, 몸으로 듣고, 마음으로도 듣고, 영혼으로 듣는 공부를 해야 된다고 했던가.

지금 내 주위에 있는 산딸기며 싸리나무며 상수리나무며 소나무들 그리고 온갖 잡풀들과 산 나비들과 새들과 심지어 돌멩이며 흙까지도 뭣인가 말을 하고 있다. 아무 말이 없으면서도 설법 아닌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문혜를 터득하지 못해 그 뜻을 읽을 수가 없구나.

산길 여기저기에 꽤 많은 무덤이 말없이 누워 있다. 무덤은 저마다 잠언(箴言)이 담긴 깃발을 나부끼고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무심코 지나갈 것이요, 현명한 사람은 생멸의 법칙을 꿰뚫어 보고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되리라.

산을 돌아 나오다 보면 노송 몇 그루가 서 있다. 언제나 하는 버릇처럼 소나무 둥치에 등을 쿵쿵 쳐본다. 이렇게 수압(樹壓)을 잠시 받고 나면 몸 속의 피가 활기차게 핑핑 도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사람에게는 삶의 자세에 따라 경지가 있다고 했다. 인의(仁義)의 경지가 있는가 하면, 예악(禮樂)의 경지가 있고, 또 그 위에 좌망(坐忘)의 경지도 있다고 했다.

나같은 범부야 매양 쫓기다시피 살아오다 보니 경지 같은 것은 돌아 볼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산에 오르게 되면 스스로를 깊이 되돌아보고 앞날을 곰곰이 헤아리게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나의 긴 그림자를 앞세우고 산을 내려온다. 학산을 한 바퀴 도는데는 김소월의 시 두어 편 감상하고 단상(斷想) 몇 조각 떠올리기에 족한 거리이다.

이제 학산은 나의 친구요 스승이다. 어쩌면 심신의 수련 도량일지도 모른다. 늘 노래가 있고 아름다움이 있는가 하면 후덕함과 인자함이 있고 지혜로운 묵시도 있다.

몸은 이미 자동차가 질주하는 거리로 내려왔다. 희비영욕으로 울고 웃는 세상은 또 그런대로 재미가 있다.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하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각해(覺海)가 된다고도 하지 않았던가.

다음 주 교원대학 특강에서는 학산의 신록 예찬도 좀 곁들여야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