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는 길

                                                                                              정행년

 서울에 살면서 출퇴근 시에 매일 강과 산을 통과하여 왕래하는 것이 그리 흔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요즘의 내가 그렇게 지내고 있다. 강을 가로질러 놓여진 잠수교를 지나서 남산 중턱을 끼고 돌아 출근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길로 갈 수도 있다. 잠수교 대신 반포대교를 지나도 되고, 남산길 대신에 3호 터널을 이용해도 된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같은 길을 택한다.

잠수교를 지날 때는 강 좌우측에 넓게 펼쳐진 초록의 잔디가 한폭의 그림같이 눈에 들어오고, 차창 밖으로 잔잔하게 물결치며 반짝이는 강물은 유리알처럼 눈부시다. 더구나 요즘은 며칠 전에 잔디를 깎았는지 마른 풀더미의 냄새가 밀짚모자에서 나는 풋풋한 냄새 같기도 하고, 추수철에 논두렁에 쌓아둔 볏단 냄새 같기도 하다. 나는 그런 구수하고 누릿한 냄새가 언제나 좋고, 그때마다 어린 시절이 회상된다.

중학교 때 농고에 부속된 학교를 다녔다. 그 때문인지 한 주일 내내 농업 시간이 들어 있었고, 그 시간에는 주로 실습을 하였다. 학교 농장에서 모내기, 김매기, 풀베기를 많이 했고, 가을에는 월동용 가축 사료를 준비하기 위하여 학교 뒷산에서 건초를 마련하기도 했다.

‘새마을 운동’과 ‘퇴비 증산’이라는 소리를 귀가 무르게 들었던 그 시절에는 풀 냄새, 퇴비 냄새, 흙 냄새가 그렇게도 맡기 싫었는데 요즈음은 그런 냄새가 그리워진다.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고향의 냄새이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음악을 들으며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차는 어느 새 언덕길로 들어선다. 남산이다. 지금은 한창 제철인 듯 온갖 수목이 있는 대로 우거져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언덕 아래 펼쳐진 시가지를 굽어보며 숲이 우거진 이 길을 달릴 때면 나는 세상 걱정이 없어진다.

지난 봄, 개나리, 철쭉, 벚꽃이 앞을 다투어 피어 있고, 하늘에는 꽃잎이 눈처럼 날릴 때 나는 이곳을 지나면서 옆자리가 비어 있는 것이 아쉬웠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겨울 어느 날, 퇴근 무렵에 폭설이 쏟아졌다. 순식간에 천지가 하얗게 변해 버렸다. 사람들은 모두 차를 버리고 가버린 듯 차들은 길가에 세워진 채 눈 속에 묻혀 있었다. 그때 나는 앞이 안 보이게 눈이 쏟아지는 이 길을 기어코 차를 몰고 지나갔다. 엉금엉금 남산 순환도로를 빠져 나와 미끄러지면서 해방촌 비탈길을 내려올 때는 마치 스키를 타는 듯했다. 자주 다니는 길에 대한 자신감에서였는지 모르지만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날 밤, 늦게 집에 도착해서 땀을 닦으며 물을 여러 잔 마셨던 기억이 새롭다.

식물원과 도서관, 남산 공원을 지나면서 몸이 자꾸 한쪽으로 쏠린다. 나는 곧게 뻗은 길보다 강원도 산길처럼 이렇게 굴곡진 길을 더 좋아한다. 또한 미끈하게 포장된 아스팔트 길보다 덜컹거리는 비포장 길이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그것은 마치 새 옷을 걸치고 있다가 헌 옷으로 갈아 입었을 때의 편안함 같다고 할까.

어려서부터 나는 신작로나 큰 길은 외면하고 골목길이나 샛길로 다니기를 좋아했다. 지금도 잘 닦여진 길이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환하게 밝혀진 길을 걸을 때면 걸음걸이부터가 어색해진다. 그러나 오솔길이나 좁은 길에 들어서면 어릴 때 뛰놀던 시골집의 뒷마당에 들어선 느낌이 든다.

그러나 가끔은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호기심으로 애를 태울 때도 있다. 어느 때인가 한적한 비포장 길을 달린 적이 있었다. 갈수록 생소한 길이라서 호기심을 갖고 계속 달렸다. 얼마나 갔을까? 무장한 군인들이 길을 지키고 있어서 더 이상 갈 수 없었다. 눈앞에는 울창한 나무 숲과 곧게 뻗은 외길이 펼쳐 있었다. 그곳은 마치 딴세상처럼 보였고, 이름 모를 새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갈 수 없는 길, 그 길 저편이 몹시 궁금했다. 차를 돌리면서 다음에는 꼭 가보리라고 다짐을 했다. 평소에 내가 품고 있었던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미련과 애틋함이 그와 같을까.

허나, 우리 속담에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라는 말이 있듯이 얼마 전 산행길에 처음 가보는 길 아닌 길로 들어섰다가 죽을 고생을 한 적이 있었다. 내 딴에는 새로운 길을 찾겠다고 나섰다가 그만 빽빽한 갈대 숲속에 갇혀서 길을 잃고 만 것이다. 우왕좌왕하며 사방을 헤집고 다녀도 길이 나오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헤매다가 나중에는 갈대를 한 묶음 꺾어서 다발을 만들어 앞쪽을 후려치며 길을 찾았지만 헛일이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하늘에는 먹구름이 내려앉고 있었다. 두렵고 지친 상태로 자포자기에 빠지기 직전에 인근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아! 그때의 반가움. 간신히 그곳을 빠져 나오면서 보니 바로 지척에 길이 있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오로지 그 주위에만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걸어온 삶의 길도 그같은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바로 옆에다 길을 두고 죽도록 길을 찾아 헤맨 경우 말이다.

따지고 보면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갈망이나 또는 지척에 길을 두고도 길을 못찾고 헤매는 일이나 모두 허욕에 눈이 먼 탓이다. 새로운 길을 찾는 것도 좋지만 늘상 내가 가는 길이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눈을 감고도 훤한 이 길을 오늘따라 한눈 팔지 않고 조심스럽게 달린다.   

 

정행년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97년).

‘타래’ 수필 동인. 동인지 1, 2집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