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윤현숙

 연말에 뜻밖의 편지를 받았다. 소리꾼 장사익으로부터 날아온 한 장의 연하장. 자필로 썼음 직한 내 이름 석 자를 보니 지난해 가을 라이브 콘서트의 감동이 다시 되살아난다. 세종문화회관을 가득 메웠던 많은 관객의 환호성과 흰색 두루마기에 흰 고무신을 신고 정호승 시인의 시 ‘허허바다’를 노래하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작은 실루엣으로 보일 만큼 먼 삼층 꼭대기 좌석이었는데도 그의 독특하고 강렬한 육성은 바로 내 앞에 있었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에 관객 모두 환호했고, 어눌한 말주변이 우리들을 더욱 열광하게 만들었다. 어정쩡하면서도 세련되지 않은 무대매너가 세상에 물들지 않은 그를 보는 것 같아서 매력적이었다. 마치 이웃집 아저씨가 무대에 서서 노래하는 것 같은 친근감을 준다.

대표작인 ‘하늘 가는 길’을 10여 분 동안 노래할 때는 웬일인지 그 슬픈 장송곡이 흥까지 날 지경이었다. 삶과 죽음을 따로 갈라놓지 않고 오히려 죽음의 장도를 기뻐하는 듯한 그 노래는 음반으로 처음 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의 넋을 빼앗아갔다. 천 번 이상을 불러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켜 불렀다는 ‘봄비’ 또한 대중가요에서 느낄 수 없는 국악의 절묘한 맛을 느끼게 해주었다.

피아노 선율이 아름다운 ‘귀가’는 그의 노래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노래 가사처럼 하루 일과에 찌든 가장(家長)이 피로에 지쳐 텅 빈 가슴으로 집에 들어서자, 이불을 쓰고 누워 있던 내복 바람의 아이들이 강아지처럼 아버지를 맞이하는 모습이 상상된다. 그의 허탈한 음성과 따뜻해 보이는 광경을 함께 상상하노라면, 가장의 텅 빈 가슴이 전달되어 내 마음마저 철렁 내려앉고 만다. 그리고 행복한 가정의 따사로움이 또 다른 위로감으로 충족되어 간다. 그 노래를 듣고 있으면 매번 느끼는 감동이 똑같다.

장사익을 더욱 좋아하는 이유는 이제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얻고 널리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TV 출연을 삼간다는 것이다. 내 바람도 항상 겸손한 태도의 그가 더욱 넓은 무대와 넓은 세상에서 식상하지 않게 보여지고 노래가 불리어졌으면 좋겠다.

내면의 깊은 곳에서 쏟아내는 장사익의 소리나 신비롭고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있으면 온몸의 세포가 곤두서고 가슴 속에 저릿한 환희로 가득 찬다. 그리고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나는 그들의 노래와 사랑에 빠진다. 밤 새워 읽는 책 속의 인물이 되어 서스펜스를 함께 겪고, 영화 속 주인공의 아픔을 함께 앓으며 비현실 세계 속을 넘나든다.

콜린 맥컬로우의 『가시나무새』에서 랄프 드 브라카사르트 신부에 대한 사랑이 그랬고, 소설 『목민심서』의 정약용과 그리고 영화 ‘Ctiy of Angel’,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서 니콜라스 케이지에게 보내는 사랑도 그랬었다. 더욱이 그들과는 현실에서 마주 대할 일이 없으니 싫증날 일도 없다. 책 속에서 또는 노래와 영화 속에서 그 주인공과 혼자 달뜬 사랑으로 몇 날, 몇 밤을 지새우다가 또 다른 사랑이 나타나면 그들 모두와 함게 내 사랑은 전이(轉移)되어 버린다.

또 한 사람, 신문의 문화 칼럼(1998. 3. 10. 조선일보 홍사중의 문화마당)에서 ‘아라이 에이치(新井英一)’의 기사를 보았다. 일본인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아난 재일 한국인 2세이다. 칼럼에 의하면, 어릴 적에 그의 아버지는 결핵 요양소에 격리되어 있다가 돌아가셨고, 아버지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고향이 어딘지도 모르고 살던 그가 문득 자신의 몸 속에 한국인의 피가 흐름을 깨달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뿌리를 찾아 아버지의 고향을 찾을 결심을 하게 된다. 그때가 그의 나이 서른여섯살 때였다고 한다.

일본에 사는 시누이에게 부탁하여 CD ‘청하(淸河)로 가는 길’이 내 손에 들어왔을 땐 이미 그는 일본에서 95년도 레코드 대상을 받은 뒤였다. 한 장의 CD, 48절의 가사가 아버지의 고향을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아버지의 고향은 청하로, 아직도 여기서부터 멀고 먼 곳… 어디까지나 이어지는 긴 길 저 너머에 산이 있다. 아버지도 옛날에 이 길을 걸어서 왔는가 생각하니 마음이 차츰 뜨거워진다. 아버지가 태어났던 그 자리에 나는 드디어 왔다. 밤새 그 자리에 혼자 쭉 있고 싶었다.’

가사의 내용은 자신이 살아온 아팠던 삶을 배경으로 한다. 일본인 어머니가 장물을 잘못 사온 죄로 형무소에 들어갔다는 기사가 지방 신문에 나오면서 죠센징이라고 따돌림당하고 방황했던 십대의 이야기, 무작정 건너간 미국에서의 떠돌이 생활과 나그네길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를 노래한 것이 48절 가사 전부이다.

‘가족이 바로 내 나라이며, 나의 뿌리는 대륙이고 조선반도라는 것을 증손자의 대(代)까지 말하고 싶다’라며 끝을 맺는 노래가 한 편의 소설이요 감동 깊은 드라마이다.

40여 분 동안 그의 애끓고 통쾌한 창가를 듣고 있노라면 그는 어쩔 수 없이 한국인의 한(恨)서린 피를 물려받았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죠센징이라고 따돌림받으며 자란 그의 어린 시절과 국적 없이 떠돌아다니던 침울한 청년의 모습이 환상으로 오버랩 될 때마다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가난과 어려움의 고통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켜 온몸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올려 토해 내는 장사익과 아라이 에이치는 많이 닮아 있었다. 음색이 닮은 것이 아니라 두 예술인 곁을 감도는 장인 기운이 그러하다. 스타가 되어 여러 사람의 인기를 받기보다는 한두 사람의 진정한 감동을 바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갖고 당당하게 무대에 서고 싶어하는 그들.

장사익은 “가난한 예술인으로 있기에는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세속의 힘이 더 크고 무섭다”고 했다. 부디 가난하고 소박한 예술인이 되어 오래도록 좋아하는 소리를 실컷 하고, 마음이 가난해도 가질 수 있는 그 희망을 우리에게도 나눠주면서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머물렀으면 참 좋겠다.  

 

 

 

윤현숙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98년).

‘타래’ 수필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