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 있음을 위하여

                                                                                                한혜경

 누구나 가슴 속에 꿈 한자락은 품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건강과 부귀, 출세, 사랑, 남보다 뛰어난 능력이나 외모 등등……. 커다란 꿈부터 자그마한 것까지 꿈의 내용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모두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한다.

꿈이 있다는 것은 삶에 활력을 주며 또 꿈의 성취를 위해 땀흘리는 모습은 감동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방향이 잘못되어 있거나, 자신의 꿈 외에 다른 것은 개의치 않는다거나,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거나 하는 정도에 이르면 위험해지기도 한다. 꿈을 이루기 위해 정신없이 치닫다 보면 우리 자신이 그것의 노예가 되어 있는 듯한 경우가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빈틈없이 짜여진 일정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어 그 안에서는 신속하고 정확하게 일하는 자들이 유능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런데 내가 게을러서이기도 하겠지만 빠른 속도로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다가도 무서울 때가 있다. 무리지어 질주하는 그들 뒤에 드문드문 처지고 있는 한두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의 영상으로 떠오른곤 한다.

처음에는 나도 그 무리 속에 끼여 있었지만 조금씩 속도가 느려지면서 여전한 기세로 달려가는 선두 그룹을 망연히 쳐다보고 있는 장면, 주어진 일과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면 떠오르는 그림이다. 이럴 때, 잠시 일손을 놓고 한 발 뒤로 물러서 보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맞물린 톱니바퀴들처럼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것 같아 현기증이 나기도 한다. 불과 몇 초 전까지 나도 그 무리 속에 있었건만 한덩이로 엉켜 돌아가고 있는 그들 속으로 다시 선뜻 발을 넣고 싶지 않아진다. 잠시라도 그곳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충동이 비죽이 고개를 내미는 것이다.

남보다 뛰어나고 앞선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야 하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적당히 살아서는 안 되고 목표를 향해 정진해야 하며 계획을 세워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규범으로 여기며 실행하고자 애썼던 이 항목들이 갑자기 독재국가의 강령처럼 다가오면서 내가 자율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이들에 묶여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좀더 나은 삶을 위해 이 목표들을 세운 것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 목표를 위해 뛰고 있는 것만 같을 때, 주종의 관계가 뒤바뀐 채 바뀐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허겁지겁 그 뒤를 좇고 있는 내 모습을 깨닫게 된다.

그럴 때면 그 동안의 내 꿈과 내 목표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그러면 내 꿈이 어느 지점에선가부터 오염되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나의 욕구만 성취된다면 다른 사람들은 상관없다는 탐욕이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었고, 자녀들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내 욕심대로 아이들을 길러왔다는 것이 보이는 것이다. 꿈이 도덕성을 잃고 심연처럼 끝없이 흡입하기만 하는 게걸스러운 욕망으로 변했던 것이다. 떡 벌린 입 안으로 한없이 빨아들이기만 하는 검은 구멍처럼.

주변을 보니 어디에나 무수한 욕망들이 널려 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타인의 욕망은 무시하고 한 번 채워진 욕망은 허기진 짐승처럼 또다시 새로운 것을 갈망하고 있다. 이른바 교양 있는 무리들은 자신의 욕망을 채운다고 말하지 않고 자식을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등등의 명분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

이처럼 끝없이 채워지기를 원하는 욕망들은 어느 시인이 말했듯이 ‘막힘’의 결과를 초래한다. 받아들이기만 하고 밖으로 내놓지 않다 보니 ‘차가 막히고 사람이 막히고 숨이 막히고 하수구가 막힌다.’ 그리고 쓰레기가 넘쳐난다.

이 막힘의 공간이 도시라면 막히지 않아 순조롭게 순환되는 자연은 우리 숨통을 틔워주는 공간이다. 아무 욕망 없이 있는 그대로 텅 비어 있는 자연.

요즘 부쩍 자연 풍광이 그리운 까닭이 이 막힘에 질식할 것 같아서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도시를 벗어나고 싶은 것은 마음뿐 매일매일의 생활에서 빠져 나갈 수 없을 때, 옛 글을 읽으며 위안을 삼는다.

허균이 42세에 벼슬에서 물러나 두문불출하는 중에 지은 책인 왛譏ㅇ?閑情錄)왎〈?복잡한 세상사에서 벗어난 선비들의 유유자적한 삶이 가득하다. 그들이 세상의 권세나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초야에 묻혀 살았던 것은 당시 정계나 세상살이에 숨이 막혀 숨을 좀 쉬고자 한 것이리라.

 

초여름 정원의 숲에서 솔솔 부는 바람에 술이 깨자

마음 내키는 대로 이끼를 쓸고 돌 위에 앉아

꾀꼬리 울음소리를 듣노라면

대나무 그늘에서 햇빛이 새어나오고

오동나무 그림자는 구름을 뚫고 올라간다.

 

현대의 삶에서는 불가능한 정취이다. 이러한 것을 상상 속에서나마 누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 사탕 놓아두고 돌아서는 어린아이 마음 같지만 잠시라도 마음이 여유로워짐을 느낀다. 며칠간 나를 옥죄며 고민케 했던 문제들,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했던 것들에 대해서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아이들의 교육 문제도 자연스럽게 내버려두는 게 좋으리라는 느긋함이 생기면서 ‘모름지기 조화의 기미를 알고 멈춤으로써 조화와 맞서 권한을 다투려 하지 말고 조화의 권한은 조화에게 돌려주고… 물외(物外)의 한가로움에 몸을 맡기라’는 구절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채우고자 하는 욕망에 휘둘려 도로 안절부절할 내 모습이 뻔히 보이긴 하지만, 어쩔 것인가 나는 그야말로 너무나 평범한 속세인인 것을.

잠시라도 비어둠으로써 머리가 맑아진 나는 심호흡하며 꽉 막혀진 일상을 향해 다시 발을 디딜 준비를 한다.  

 

 

 

한혜경

계간수필로 등단(98년).

현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