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하의

‘新衣’

 

일  시 : 1999년 3월 20일

장  소 : 수필문우회 회의실

참석 인원 : 23명

사  회 : 허세욱

정  리 : 권일주

 

사회 : 안녕하십니까. 합평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합평회는 계간수필 통권 16호이며, 1999년 여름호를 위한 것이 되겠습니다. 대상 작품은 이양하 선생의 ‘新衣’입니다. 토론회를 위해 오늘 우리가 모실 세 분의 약정 토론자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이양하 선생과 학력이 비슷하며 수필 경향의 일부도 비슷하신 김태길 선생님, 또 이양하 선생과 서울대학교 문리대 사제지간으로 영문학을 전공하신 황찬호 선생님, 그리고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미리 약정을 하지 못하고 조금 전에 이곳에 와서 부탁을 드린 시인이며 수필가인 유경환 선생님입니다.

그러면 제가 먼저 이양하 선생의 간단한 약력과 문학 업적, 문학의 경향 등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양하 선생은 1904년 평남 강서에서 출생했습니다. 평남고보와 일본의 제3고등학교를 거쳐 동경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수료한 후, 1951년과 1953년 두 차례에 걸쳐 도미하여 하버드 대학과 예일 대학에서 영문학을 연구한 바 있습니다. 이분의 경력을 살펴보면 1934년에 연희전문 강사로 교직 생활을 시작해서 1942년 연희전문 교수가 되었으며, 1945년부터 작고하신 1963년까지 서울대 문리대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셨습니다.

생전에 많은 업적이 있었습니다만, 그 중에는 왛箕鵑瑛?을 편찬한 일과 찰스 램이나 베이컨의 수필을 번역한 바도 있습니다. 또 왅煐奴?낭만주의? 왒╂擔?조이스에 대한 연구?등의 논문이 있습니다. 수필 창작은 대체로 1934년부터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생전에 두 권의 수필집을 남기셨는데, 하나는 1947년 을유문화사에서 낸 왏潔聆?수필집왏隔? 또 하나는 1964년에 민중서관에서 나온 옾す쳻입니다. 왏潔聆?수필집왎〈?21편이, 옾す쳻에는 41편이 실려 있습니다. 도합 62편인데, 그 후 1972년에 을유문화사에서 다시 왏潔聆? 수필선왏?출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양하의 첫번째 수필집에 실린 것들을 서정수필이라 하고, 두 번째 수필집 옾す쳻에 실린 작품들을 중수필이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참고로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만 1972년에 나온 왏潔聆?수필선왎〈?이양하 선생의 부인인 장영숙 여사가 서문을 달았는데 거기에서 그분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이양하 문학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 시기는 일제하, 즉 연희전문 시절이고, 두 번째 시기는 재미 기간이며, 세 번째 시기는 서울대학교 재직 시절이다.”

이 말 이외에도 많은 논자들이 이양하 문학은 8·15 이전과 이후, 두 가지로 나누는 것이 편리하고 타당하다는 말을 합니다. 오늘 합평을 위해서 참고가 될 듯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 그럼 먼저 본문을 읽겠습니다만 약정된 분들의 준비를 위해서 토론 순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번째가 이 글의 주제나 내용의 축약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이 ‘新衣’에 얽힌 사회, 도덕, 철학적 의의는 무엇인가 하는 것을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이 글의 기교적 특색과 당시의 수필 기풍과 비교할 때 그 수준이나 영향이 어떠했을까, 또 이런 기법이 오늘날의 수필에 무엇을 시사할 수 있을까 하는 순서로 짚어 나가겠습니다. 정선모 선생께서 본문을 읽어 주시겠습니다.

 

 

 

(본문)

新衣

 

 

 

오래간만에 참으로 오래간만에 여름 옷을 한 벌 장만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옷감의 선택이 좋지 못하였다. 전등불 아래 보는 빛이 수수한 브라운이요 새로 박힌 무늬는 무슨 빛인지 분명하지는 아니하나 어떻거면 브라운의 너무나 겸허하고 단조함을 깨뜨리고 델리게이트한 뉘앙스를 보여 줄 것도 같아서 달리 더 생각지 아니하고 맡겨 버렸었다. 그러나 옷이 다 되어 막상 입고 나서니 전등불 아래서 보던 빛과는 아주 딴판이다. 전체의 기조가 되는 브라운이 겸허한 브라운인데는 틀림없으나 세로 간 줄무늬는 인제 보니 바이올렛 그것도 아주 선명한 바이올렛이요 그것이 지색(地色)의 브라운과 어울리어 나타내는 빛깔은 보랏빛에 가까운 이상한 뉘앙스의 빛깔이다. 바이올렛 자체로 말하면 누구나 다 사랑하지 아니하지 못할 꽃의 하나요, 그 빛깔도 아름다운 빛깔의 하나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보랏빛 ─ 내 옷 빛으로서의 보랏빛 ─ 그것은 생각만 하여도 몸서리가 치는 빛이다. 나는 의복에 있어서는 역시 ‘훌륭하게 그러나 호화롭지 않게’ 하는 쉐이크 스피아의 가르침을 무엇보다 귀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하는 자로, 청초하고 아담하게 입으려고는 할망정 호화롭게 입으려고는 꿈에도 생각지 아니하는 자이다.

그런데 바이올렛 내지 보라로 말하면 화려하고 호사한 빛일 뿐 아니라 제일(第一)에 보아 여름에 입어 마땅하다 할 만한 서늘한 감촉과는 도대체 인연이 먼 빛이 아닌가.

여기 오래간만에 새 옷은 입었으나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더욱이 상당히 좋은 취미를 갖고도 그림을 한다고 하느니 만큼 그의 채색감에 각별한 신뢰를 두지 아니하지 못할 동무의 하나가 새 옷 입은 나를 평하여 봄바람에 불리어 돈푼이나 쓰고 다니는 시골뜨기 같다고 한 이래의 나의 괴로움이란 그야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 학교에 가서도 도무지 일이 손에 붙지 아니한다. 그리고 만나는 동료들이 혹 내 옷을 화제로 삼을 때는 물론 오래간만에 해 입은 옷이니 인사 겸 이야기하는데 지나지 아니하는 것이련마는 어째 나의 악취미를 조롱하는 것만 같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7, 8세 때의 조급을 아직 가지고 있었던들 나는 그 당장에 옷을 벗어 메때렸을 것이다. 아니 지금에 있어서도 내가 쉬이 또 하나의 옷을 장만할 만한 여유만 가졌다면 이 옷을 집어치운 지 이미 오래겠다.

나의 취미란 ─ 이러한 데 취미란 말을 쓸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마는 ─ 대개 이렇게 까다롭고 결벽스러운 것이다. 아니 까다롭고 결벽스럽다느니보다 어떤 독자는 옹졸하고 쇠살스럽다고 빈축할런지 알지 못하겠다. 나 자신 나의 청탁이 이다지도 심하지 아니하였던들 나의 일상이 좀더 평탄한 것이 되지 아니할까 하고 반성하는 때가 있다. 왜그러냐 하면 이와 같이 사소한 일에 이렇게 마음을 쓰는 소심한 사람이 음식, 거주, 오락, 독서, 기타 백반사상(事象)에 처하여 겪을 괴로움을 생각하여 보라. 그야말로 이마에 잔주름 펼 날이 없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또 한편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우리의 신변의 사소한 일에 이르기까지 일정한 취미를 갖고 그 취미를 살리려고 힘쓴다는 것은 그렇게 일소에 붙일 일이 아니라고. 우리는 우리의 보통 가정에 가면 흔히 이가 실 듯한 괴상한 빛으로 대문을 채색하고 또 벽에는 노상에서 파는 정체 모를 산수도(山水圖)니 미인도(美人圖)니 한 것을 붙인 것을 본다. 그리고 또 우리는 우리가 보기에는 악취미에 틀림이 없는 한 개의 파라솔 한 감의 치마를 사기 위하여 밥 한 끼 굶는 것쯤은 사양하지 아니하는 가두의 여성을 상상할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을 그저 웃어버릴 수가 있을까? 이러한 것은 말하자면 그들의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마음, 우리의 이 어지러운 주위보다는 한 한 걸음 높고 맑고 깨끗한 세계를 동경하는 마음, 다시 말하자면 엉클어진 잡초를 잡아젖히고 그 가운데 한 송이 꽃을 피워 보고자 하는 갸륵한 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노력이야말로 이 세상을 무지와 빈궁과 죄악에서 건지고자 하는 학자나 정치가나 종교가의 노력에 못지 아니하게 귀한 노력으로 잘 이끌고 붇돋우기만 하면 족히 세상을 움직일 수도 있을 것이 아닐까.

나는 잠간 스스로 이렇게 변명하여 본다. 그러나 한 번 다시 벽에 걸린 옷을 돌아볼 때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악취미는 역시 틀림없는 악취미다.

 

 

사회 : 감사합니다. 먼저 약정하신 세 분께서 이 작품의 주제나 내용을 축약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김태길 : 이양하 선생은 이 글에서 나는 이런 말을 해야겠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이 수필을 쓴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것이 바로 이 글의 주제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작품입니다. 굳이 주제라고 한다면 옷에 대한 취향이 주제가 되겠지요. 옷에 대한 까다롭고 결벽스러운 자기의 취향을 이야기하면서 처음에는 너무 지나치고 소심하다고 스스로 반성하고 부정을 해봅니다만, 나중에는 그런 까다로움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마음이 아니겠느냐, 그러니까 다른 쪽으로 보면 긍정할 만한 점도 있는 것이 아니냐고 자위합니다. 요약하면 이 작품은 자기 마음 속의 딜레마를 그린 이양하 자화상의 한 측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이양하 선생을 여러 번 만나지도 못했고 나이 차이가 있어서 잘 알지는 못합니다만, 이분은 상당히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성격이 세밀하고 신경이 날카로운 심미주의적인 인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만큼 취향도 귀족 취향적인 경향을 가진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양하 선생의 자기 내면 세계를 잘 나타낸 글이라고 보았습니다.

황찬호 : 저는 이양하 선생님한테서 배웠습니다. ‘영국 문학사’ 강의를 들었지요. 그런데 강의 시간의 선생님은 이 글 속의 선생님과 많이 달랐습니다. 이 글을 보니 무척 섬세하고 감각적인 분인데 수업 시간에는 강의 노트를 가져와서 읽어 내려가면 우리가 받아 적는, 그런 식이었습니다. 여담이지만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 이분이 동경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하실 때 수석으로 졸업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이분이 자기를 지키는 데 무척 고집스러운 분이었다는 점입니다. 일제시대 때 창씨 개명도 하지 않았고, 연희전문 시절에도 교수들 모두 머리를 짧게 깎아야 했는데 이분만은 깎지를 않으셨습니다. 그때 이분이 내세운 유일한 핑계는 머리에 흠집이 있어서 머리를 깎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글의 주된 테마가 스노비즘(snobbism), 벌거리즘(vulgarism)을 비판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을 비판하고 공격하기 위해서 쓴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겉으로 보기에는 수수하지만 까다롭고 감성적이며 결벽증이 있는 분으로서 자기의 결벽증을 이야기하다 보니 반대 급부로 공격한 것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글을 쓴 스타일이 꼭 영국 사람들이 수필을 쓰는 스타일 같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처음부터 내세우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내세워 논하다가 나중에 뒤집어서 하는 스타일이지요. 이 글이 꼭 그런 느낌을 줍니다. 영국 수필을 번역한 느낌도 들고요. 다른 것은 나중에 기교 부분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유경환 : 핀치히터로 등장했습니다. 제대로 말씀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김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주제를 한 가지로 분명하게 뽑아내기가 어려운 글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독자 입장에서 읽어가면서 이해하고 감상하는 방법에서 의미를 추출할 수는 있다고 봅니다. 제 나름대로 저는 그것을 ‘조화’라고 보았습니다. 즉 ‘조화스럽다’라는 것은 고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명제이다. 생활 주변에서 그냥 가볍게 넘겨 버릴 것이 아니고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라는 것을 이 글 전편에 깔아놓고 쓰신 글이라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이 글을 쓸 당시의 사회상이나 분위기를 좀더 뒤져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947년이라고 하는 세태, 부조리가 가득 찼던 세상, 정리된 것, 정돈된 것이 하나도 없이 혼란이 극심했던 사회, 그 속에서 행해지던 부조화, 그런 것들을 까다롭고 결벽성을 가진 이분의 눈으로 보았을 때 느끼던 혐오감, 그런 것을 다룬 글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분의 인격으로 보아 남을 탓할 수는 없으니까 자기를 탓하는 방법, 그 기교로 자기의 옷을 희생물로 내세운 것 같습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동기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착각입니다. 전등불 아래서 보았을 때는 괜찮았는데 다 만들어 놓고 햇빛 속에서 보니 그것이 아니더라, 이것은 비단 옷이나 옷감에서만 착각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당시의 사조라든가 이념이라든가 하는 문제에서도 지식인들이 능히 착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훌륭하게 그러나 호화스럽지 않게’라는 셰익스피어의 말을 인용한 것입니다. 여기서는 비록 색의 조화를 가지고 한 이야기이지만, 무릇 조화라는 것은 우리가 얼마든지 청아하고 단아하게 추구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주장한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주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김태길 : 내가 잘 몰라서 묻겠는데요 이 글이 어느 해에 씌여진 것입니까?

사회 :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책은 1947년에 나왔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이 작품은 일제 때에 쓴 것이 아닌가 합니다.

김태길 : 이분이 주제를 정해서 글을 쓴 것은 주로 후일에 중수필을 썼을 때입니다. 저도 이 글은 그 전, 그러니까 이분이 경수필을 쓸 때 쓴 것이라고 봅니다. 황찬호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이 나서 하나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글에서 이양하 선생은 처음에는 자기의 까다롭고 변덕스러운 성격이 탈이다 라고 던져 놓고 나중에는 그것을 긍정합니다. 긍정했다고 보는 근거는 속물 근성, 즉 이발소 그림이나 거리 여성의 천박함을 슬쩍 갖다 대면서 그런 것보다는 그래도 내 취미가 좀 나은 것 아니냐 하는 것을 언뜻 비쳤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사회 : 약정하신 세 분의 말씀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한 분의 말씀은 새 옷에 대한 부정적인 감각으로부터 생각이 미적 추구로 돌아서면서 발생하는 내적 갈등, 그런 딜레마를 표현한 것이며, 여기에는 대체적으로 심미주의적인 취향이 바탕에 깔렸다는 것이었고, 다른 한 분은 반 속물주의라는 기치를 들 수는 없지만, 이분의 인간적인 결벽성에서 나온 묘한 감정을 옮긴 것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리고 또 한 분께서는 그 당시의 세태를 통해서 볼 때 이것은 부조화에 대한 고발이다. 그것을 잘 맞지 않는 자기 옷을 통해서 이야기한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혹시 다른 의견이 있으십니까?

정봉구 :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세 분 말씀 가운데 이 글은 이양하 선생이 당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양복을 가지고 비유해 쓴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저는 조금 의심이 갑니다. 이 글이 과연 그런 것일까. 이양하 선생이 속에 가지고 있던 이야기를 쓰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렇게 비유한 것일까, 아니면 혹시 훗날의 우리가 독자로서 그렇게 해석을 붙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점입니다.

황찬호 : 저도 동감입니다. 그런 생각이 저도 듭니다. 이 글은 처음부터 테마를 내세우고 그것을 주장해야겠다고 쓰신 것은 아니지만, 당신 자신에게 결벽증이 있어서 양복 같은 것도 자꾸 들여다 보게 되고, 그러다 보니 그걸 글로 쓰고 싶어서 쓴 것입니다. 쓰다 보니까 논리가 이렇게 연결되어 나온 것이 아닐까 하고 좀 가볍게 보고 싶습니다.

 

사회 : 이분의 수필을 상당히 학문적으로 분석 고찰한 논문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 중에서 84년도에 수필공원에 발표되었던 김우창 씨의 ‘이양하의 수필세계’가 학구적으로 가장 완벽하게 쓴 것이었으며 참고할 것이 많았습니다. 또 윤오영 선생은 그의 『수필입문』에서 ‘이양하는 김진섭, 김용준 등과 함께 우리 나라의 창작 수필의 시도자이다’라고 하면서 그는 결코 글을 쉽게 쓰는 분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 그 외의 많은 젊은 분들이 이분의 수필은 쉽게 쓰여진 것이 아니라 상당히 심미적이고 계획적으로 쓰여진 것들이다, 그래서 페이터나 베이컨의 산문에서와 같이 치밀한 구도가 보인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이 수필의 시대상이라고 할까, 어떤 환경에서 이것을 썼을까 하는 점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시지요.

김태길 : 시대적인 배경보다 개인의 사적 배경이 있다고 보는 쪽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부인 장영숙 선생이 편찬한 왏潔聆?수필선왎?‘나의 소원’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거창한 것을 바라는 것은 허망한 일이고 생활에서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 예를 들면 등나무 밑에 놓을 아담한 의자를 사고 싶다든지, 꽃을 꽂을 일본의 좋은 화병을 하나 사고 싶고 축음기를 사고 싶다는 것을 쓴 글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이양하 선생은 그것이 소박한 자기의 소망이라고 했지만, 제가 보기에 그 당시 우리 나라의 경제 사정으로 볼 때 그것은 굉장히 사치스러운 소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그 당시 우리가 옷을 고를 때는 이것이 튼튼한가, 감이 질긴가, 값이 얼마인가 하는 시각으로 고르고 샀는데, 이분은 색깔을 고르고 거기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한 듯합니다. 그것은 ‘나의 소원’에 나오는 귀족 취미와 상통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런 사정이 이런 글을 쓰게 했다고 봅니다.

 

사회 : 이양하 선생의 제2수필집 옾す쳻에 보면 확실히 시대 비평적인 글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적 생활에서 온 체험의 여적이 아닐까요.

김태길 : 그런 의미로 사회적인 배경을 말할 것 같으면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사회 비판적인 말을 할 수 없었던 시기, 즉 일제시대였기 때문에 마음 속에 있는 말을 섣불리 발설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싶지도 않고, 그런 사정에서 쓴 수필이기 때문에 자연히 사사로운 생활을 주제로 한 수필을 쓰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사회 : 그렇게 전환될 가능성도 있었다는 말씀이십니까?

김태길 : 그렇지요. 이분은 성격이나 감정이 격하고 다혈질인 데가 있는 분이라고 보는데, 그런 분이 8·15 전까지는 말을 함부로 못하다가 해방된 후에 말을 마구 해도 되니까, 그때부터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 비판하는 글을 쓰게 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사회 : 이양하 선생의 수필에는 ‘페이터의 산문’이라든지 하는 식으로 제목에서조차 영문학 내지는 전공적인 체취가 직접 노출된 것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과연 영문학적인 영향이 있었다고 보십니까?

황찬호 : 영문학에서 수필의 특징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이 자리에서 설명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이 글을 보니까 꼭 영문 수필을 번역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어휘도 그렇거니와 테마를 다루는 스타일, 즉 처음에 내세운 테마를 나중에 반전시키는 그 스타일 자체가 완전히 영문이지 우리 문장 스타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회 : 이분의 ‘페이터의 산문’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내게 문학을 가르쳐준 사람이 바로 페이터이다.’ 그만큼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이지요. 유경환 선생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유경환 : 제 나름대로 가설을 세웠으니까 그대로 밀고 나가보겠습니다. 저는 이 글을 쓴 사회적 배경, 즉 그 시기를 눈여겨 보고 싶습니다. 저는 이 글이 1940년대 후반, 즉 해방 후에 쓴 것으로 봅니다. 그 이유를 세 가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이 글 속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7, 8세 때의 조급을 아직 가지고 있었던들 그 당장에 옷을 메때렸을 것이다.’ 이 말을 이 글을 쓴 시기가 조급함에서 벗어난 시기, 즉 자기가 자기를 제어할 수 있는 시기였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상당히 나이가 든 시기가 아니었겠느냐 하는 것이고, 또 ‘나의 청탁(淸濁)이 이다지도 심하지 아니하였던들 나의 일상이 좀더 평탄한 것이 되지 아니할까 하고 반성하는 때가 있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회고할 수 있는 나이에 들어섰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것은 회고할 수 있는 나이에 들어섰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것은 연희전문 시대가 지난 시기라고 보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 글에서 사용한 용어 때문입니다. 이분이 아무리 영문학을 공부했다지만 ‘브라운’이니 ‘델리게이트’, ‘뉘앙스’, ‘바이오렛’ 등, 이런 말들을 일제시대 때에 쓸 수 있었겠느냐 하는 점 때문입니다. 이런 용어, 시대적인 유행에 따르는 이런 용어가 사회적으로 통용될 수 있었던 시기는 행방 직후입니다. 그러니까 이 글은 40년대 후반에 쓰였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으로 또 제가 그렇게 보는 이유는 일제시대에는 교사든 교수, 교원이었든 전부 국민복이라는 제복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일상복으로 브라운 신사복을 맞춰 입고 다닐 수 있었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상 세 가지 이유로 저는 이 글이 1940년대 후반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김태길 : 이왕에 논쟁이 시작되었으니까 말입니다만 7, 8세 때의 조급함을 벗어났다는 것으로 노숙한 때에 이르렀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 같습니다. 그 당시에는 나이 30만 되어도 자기를 모두 어른으로 자처했습니다. 고등보통학교만 다녀도 스스로 나라의 지도자로 자처했으니까요. 그런 분위기로 볼 때 30대에 이런 어른스런 글을 썼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또 여기서 쓴 용어도 지금 유경환 선생님 말씀으로는 8·15 해방 후에 영어가 들어오고 뉘앙스니 뭐니 하는 말을 썼다고 하셨는데 사실은 일본 사람들이 이런 말을 잘 씁니다. 서투른 발음을 가지고도 외국어를 잘 섞어 씁니다. 그러니까 일제시대 때에 이런 글을 썼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이야기지요.

 

사회 : 그러니까 유경환 선생님 말씀은 문학은 사회 환경의 부산물이라는 전제하에서 이 작품이 8·15 후 부조화스런 사회의 반영일 것이라는 것이고, 김태길 선생님께서는 여러 용어와 분위기로 보아 해방 전의 작품으로 간주된다는 말씀이십니다. 여기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 하나를 제가 꺼내겠습니다. 대체로 많은 분들이 이분을 이야기할 때 성격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성격의 차원, 그 시각에서 조명을 맞추어 보면 이 작품의 소재나 구성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분의 성격에 대해 표현한 것을 보면, 매우 감각적이었다, 성격이 괴팍스러웠으며 상당히 고독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고독한 체질은 서구 문학에서 체험된 이국 정서에 뿌리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런 성격을 지닌 사람이 잘 맞지 않는 새 옷을 입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 그러니까 사적인 생활, 그런 감각에서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점을 제기해 볼 수도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지요.

황찬호 : 이분은 머리가 무척 좋은 수재이면서 또 문학을 할 만큼 날카롭고 감각적이며 고독한 분이었습니다. 또 생활 자체도 그랬습니다. 첫번째 부인은 평양에서 월남하지 못했고, 그 사이에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만 그 아들과 함께 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50대 후반에야 장영숙 여사와 결혼을 했는데, 그 전까지 줄곧 독신으로 고독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장영숙 여사와는 한 이십 여 년을 연애 상태로 있으면서 혼자 고독하게 살았습니다. 그만큼 고집스러웠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사회 : 지금 우리는 ‘新衣’가 나오게 된 배경 문제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불안한 사생활에서 오는 고독한 생활이 그 배경이라는 의견이 나왔습니다만, 그것 외에 혹시 다른 의견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지요.

김진식 : 이양하의 수필을 이야기할 때 그분 심리의 갈등 구조라든지, 그의 내면 속에 있던 긴장감을 엿본다든지 하는 면으로 접근해 분석할 수 있으면 이양하를 벗기는데 더 낫지 않겠느냐 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볼 때 이 글은 그의 의식 세계에서 많이 맴돌고 있습니다. 브라운이니 바이올렛, 보랏빛 등으로 표현한 옷의 색깔에서도 그것은 잘 나타납니다. 색채 심리학에서 보랏빛은 가장 고독한 색깔이고 오만한 색이라고 분석합니다. 이런 색의 옷을 선택한 분의 잠재의식과 사회 구조와의 갈등, 즉 현실과의 갈등구조를 이렇게 표현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 시대의 유행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글에는 탐미적인 분위기가 많이 깔려 있습니다. 또 이 글이 해방 전에 쓴 것이냐 후에 쓴 것이냐 하는 문제인데, 제가 알기로는 국민복이라는 것은 1939년부터 해방이 될 때까지 공무원들이 모두 입었습니다. 그러나 공무원이 아닌 사람들, 특히 멋께나 부리는 사람들은 그 당시에도 영국제 감으로 된 양복을 입었습니다. ‘브라운에 세로로 간 줄무늬는 바이올렛 색깔’이라는 표현으로 볼 때 이양하 선생도 멋을 부리는 쪽이었다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글은 해방 전에 쓴 것이고, 김태길 선생님 말씀대로 이양하 선생의 심리, 그의 복잡한 내면의 갈등이 드러나 있는 단순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시헌 :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양하 선생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상의 세계, 이지의 세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몸은 자꾸 감각의 세계로 끌려갑니다. 그러니까 이 글은 그 사이에서의 자신의 방황을 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즉 셰익스피어를 말하면서 선생은 자기 이지의 세계를 말합니다. 좋은 것 같아서 옷을 맞추었는데 감각의 세계에서는 색깔이 다르게 보이고, 마음에 들지도 않습니다. 또 산수도나 미인도를 벽에 걸어놓은 것을 보고 처음에는 좋지 않게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그것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변명을 합니다. 그리고 가치가 있다는 긍정은 결국 자기 긍정으로 되돌아옵니다. 자기가 입은 옷을 긍정하고 싶어집니다. 해 입고 나가니까 좀 부끄러운 생각이 들고 정치가나 학자나 종교가가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마음을 되돌리는 것이지요. 한 마디로 처음에 말했듯이 자기가 가진 이상의 세계와 감각의 세계 사이의 방황을 그린 것이지요.

공덕룡 : 이분을 평가할 때 어떤 패턴에 넣어서 하나의 틀을 만들어서 거기에 맞는 분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 작품에서는 지식인의 약점, 회의감, 축소 지향적인 성격, 그런 것이 엿보입니다. 또 snobbism이나 vulgarism을 꺼리면서도 사실 이 글 안에는 그런 근성이 많이 보입니다. 즉 ‘新衣’라는 단어를 위시해서 한자 용어를 많이 쓴 경향, 그냥 ‘새 옷’이라고 해도 되는 것을 굳이 ‘新衣’라 했습니다. 또 ‘센티멘털’이니 ‘뉘앙스’니 하는 외래어를 많이 쓴 것, 이런 것이 결국 일종의 속물 근성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 글을 제가 처음 읽은 것은 해방 후였습니다. 영국식 수필이다 라고 하면서 당시에는 상당히 감동해서 읽었는데 지금 보니 느낌이 상당히 다릅니다.

김태길 : 이양하 선생이 배격한 속물 근성하고, 지금 공덕룡 선생님이 말씀하신 속물 근성하고는 서로 다릅니다. 여기서 말하는 속물 근성이라고 하는 것은 소위 우리가 이발소 그림이라고 부르는 그런 산수화를 벽에 걸어놓고 좋아한다든지, 대문에 이상한 색의 칠을 해놓고 좋아하는 그런 것이고, 지금 공선생님의 말씀은 다른 측면에서 본 속물 근성이지요.

공덕룡 : 예, 맞습니다.

 

사회 : 이 작품의 배경을 추적하다 보니 너무 지나치게 파헤치고 분석하는 누를 범한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은 이분의 문학을 이해하는데 해가 되거나 혼란을 가져올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여기서 그치고, 이제 마지막 논의로 넘어가겠습니다. 이 수필의 전체적인 구성과 기교 그리고 그런 구성법과 기교법이 현재 우리의 수필 문단에 어떻게 비쳐지고 또 무엇을 시사할 수 있는지 하는 점입니다.

김태길 : 아까 황찬호 교수가 말씀하셨듯이 구성은 영국 수필을 본받았다고 할까 모방했다고 할까. 영국식 구성이면서 전형적인 고전수필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다음은 문학적 가치가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가 되겠습니만, 나는 이 수필을 이양하 선생의 부인인 장영숙 여사가 낸 왏潔聆?수필선왎?실려 있는 것을 읽었는데 거기서는 그렇게 껄끄럽게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작품 ‘新衣’는 그것보다 상당히 껄끄럽고 또 번역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듭니다. 이것은 아마도 장영숙 여사가 수필선을 내면서 작품 손질을 많이 한 듯합니다. 어쨌든 좀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문학적으로는 약간 서툰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덕룡 : 그렇습니다 세 번째 문단에서 ‘더욱이 상당히 좋은 취미를 갖고 또 그림을 한다고 하느니 만큼 그의 색채감에 각별한 신뢰를 두지 아니하지 못할 동무의 하나가…’를 보십시오. 주어는 분명히 ‘동무의 하나가’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죽어 있습니다. 이것은 도대체 우리 글이 아닙니다. 관계대명사가 들어 있는 영문입니다. 차라리 이것을 거꾸로 영문으로 번역한다면 쉽겠습니다. 그러나 영어 문장에서도 관계대명사로 길게 늘어진 문장은 주어가 죽기 때문에 좋은 문장이 못 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이 글 속에는 서양 글투를 닮은 데가 많습니다. 요즈음은 이런 식으로 쓰면 안 될 것 같습니다.

황찬호 : 지금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영어식 구문이 너무 많습니다. 또 ‘그러나 보랏빛 ─ 내 옷 빛으로서의 보랏빛 ─ ’ 등과 같이 동격 처리를 한 것이 많습니다. 그리고 영어에서 흔히 쓰이는 말들을 그대로 우리말로 바꾸어 쓴 것이 많이 보입니다. 예를 들면 ‘제일에 보아’는 영어의 ‘first of all’을 우리말로 바꾸어 쓴 것이고, ‘여기 오래간만에’의 ‘여기’는 ‘now’를 그대로 쓴 것 같습니다.

공덕룡 : 한 마디 덧붙이면, ‘우리는 우리의 보통 가정에 가면 흔히…’의 문장도 그렇습니다. 서양식 구문입니다.

유경환 : 구성과 기교에 대해 저는 세 가지를 지적하겠습니다. 첫째는 이양하 선생은 독자들이 구성법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게끔 구성의 기교를 발휘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경험 많은 농부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비가 올 듯하면 삽을 들고 나가서 슬며시 논에 물꼬를 트듯이, 그리하여 밤에 비가 내리면 빗물이 자기 논으로 자연스럽게 들게 하듯이 그렇게 독자들이 저절로 빨려들어가게 합니다. 대단히 능숙한 기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언어의 선택과 구사에서 시대가 용납하지 않은 것을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즉 여기에 ‘그런데 바이올렛 내지 보라’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이분도 바이올렛과 보라가 같은 색이라는 것을 알고 썼다는 이야기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양하 선생 자신도 이 글에 영어 단어를 많이 썼다는 것을 알고 그 기우에서 ‘바이올렛, 그 보랏빛’ 하고 부언한 것입니다. 결국 시대가 용납하지 않은 언어를 구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대가의 글이라고 이것까지 그냥 보아 넘길 수는 없는 것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저는 이 글이 괴팍하다고 하는 자기 성격에 대한 변론이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해서 이런 소재를 선택해서 자기를 희생물로 제공한, 일종의 자기 겸손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역시 대가의 면모가 풍긴다고 봅니다.

 

사회 : 고맙습니다. 조금 전에 제가 소개해 드렸던 김우창 씨의 ‘이양하의 수필세계’를 보면 아주 조심스럽게 ‘이양하의 글은 쾌락주의자나 심미주의자의 필치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은 또 ‘그의 글에는 유교 전통의 반영도 기교에 보인다’, ‘영국 수필을 번역체로 옮겨놓은 느낌이다’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면 이 수필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해 주십시오.

이응백 : 이 글은 처음부터 의도해서 쓴 글이 아닙니다. ‘新衣’라는 것에 대해 쓰다 보니 좀더 깊이 있게 써보고 싶고, 그러다 보니 뒤가 그렇게 되었다. 그러니까 우연적인 발전이 여기까지 왔다, 그렇게 봅니다. 그리고 아까 여러분들이 이 글에 영어식 문장이 많다고 하시니까 더 할 말은 없습니다만, 이 글 속에 ‘의복에 있어서는’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나는 이 ‘있어서는’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이것은 일본 사람들이 곧잘 쓰는 표현입니다.

정봉구 : 이 글은 비교적 긴 문단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요즈음 기성 작가 글의 문장을 보면 토막 글처럼 한 문장, 한 문단이 무척 짧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문단을 자꾸 끊는데 이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김시헌 : 특히 저는 이 글의 도입부분이 좋다고 봅니다. 쉽게 가까운데서 들어와서 깊게 끌고 갑니다. 자연스러운 그 도입법이 좋습니다.

김태길 : 이양하 선생은 대 수필가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 글을 보면 뭐 대단치 않지 않느냐 하는 생각도 들 수가 있고, 요즈음의 우리 언어 감각으로 보면 약간 낯선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전체적으로 볼 때 괜찮은 작품이라고 봅니다. 제가 그렇게 보는 이유는 이 글 속에 이양하 선생의 내면세계, 내면의 세심한 갈등이 잘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분의 자화상이지요. 나는 수필이라는 것이 어느 만큼 자기 자신을 정확하고 솔직하게 드러내느냐 하는 것으로 크게 평가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 글은 우리가 이양하라는 사람을 아는데 상당히 도움이 되는, 잘 그려진 그림이다, 그래서 좋은 작품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황찬호 : 이 글은 이양하 선생과 같이 앉아 대화하는 느낌이 드는 작품입니다. 되풀이되는 이야기 같습니다만 그분의 성격으로 보아 큰 테마를 내걸고 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온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비슷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만, 요즈음 글의 스타일과  비교하면 비판의 소지도 많고 어휘력도 좋지 않지만 아주 자연스러운 글이며, 같이 앉아 대화를 하는 듯한 편안한 글이라고 봅니다.

유경환 : 작가는 독자에게 어느 정도까지 책임을 져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숙제로 남습니다. 왜냐하면 이 수필이 발표된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이 수필은 놀랍고 훌륭한 작품인데 한 세대가 지난 뒤의 새로운 독자들에게 이렇게 공격을 받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즉 작품으로서의 생명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느냐, 그것이 제게 숙제로 남습니다.

 

사회 :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오늘은 특히 약정하신 세 분께서 좋은 의견을 많이 주셨습니다. 오늘 진행된 논조의 내용을 간단히 종합, 요약해 보겠습니다.

먼저 이 작품은 시대의 배경하에서 노출된 부조화의 고발로 보는 견해도 있었습니다만, 대체적으로는 사적인 입장에서의 미적 추구와 심리 갈등으로 쓰여진 자화상이며, 개인 심정의 토로라는 의견이었습니다. 더 설명을 붙이자면 더러는 결벽증의 노출이다, 자기 긍지에 대한 갈등이다, 개인 특유의 성격의 반영이다 등으로 본 것입니다. 이 작품의 수사와 기교 면에 대해서는 명암이 교차되었습니다. 영어식 구문, 서양식 어투 등이 있어서 영국 수필의 재판 같은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특별한 구성법이 없으면서도 내밀 있는 구성이 엿보이는 고전수필의 한 타입이라고 보았습니다. 또 지엽적으로는 자연스러운 도입법을 써서 쉽게 주제에 접근하는 필법을 보여 준 모범문이라는 말씀도 주셨습니다. 이상입니다.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여기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