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의 시간

                                                                                         李應百

 1999. 2. 22 자정 무렵, 갑자기 안경이 보이지 않아 쓰던 글씨를 멈추었다. 동시에 오른쪽 머리에 현기증(眩氣症)이 일어나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겨우 몸을 움직여 양복걸이에 걸려 있는 양복 주머니에서 구심(救心) 두 알을 꺼내 침으로 삼켰다. 그리고는 가방 속에서 우황청심원(牛黃淸心元)을 찾아 반 알을 앞니로 깨물어 씹어 삼키려는데 삼켜지질 않는다. 순간 이것 큰일났구나 하고 먹구름이 뇌리(腦裡)를 스쳐 지나갔다.  

내 아는 이가 음식물을 삼키지 못하는 병으로 발음(發音)도 제대로 하지 못해,‘구’가 〔우〕로 나는 등 자음(子音)에 따라서는 제대로 나지 않을 뿐 아니라, 계속 끈끈한 침이 뭉텅이져 나오는 바람에 범벅이 져, 무슨 말인지 연역(演繹)을 해야 겨우 해득이 될 정도인데, 양한방(洋韓方)으로 숱해 비용을 들여 치료를 받아도 막무가내(莫無可奈)로 점점 폐인 지경에 이른 예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 우선 ‘아애이오우’로부터 『맹자(孟子)』 양혜왕편(梁惠王篇) 첫장(章)을 외어 보았다. 그런대로 혀가 잘 돌아갔다. 책장(冊欌) 앞면을 더듬어 일어나려 했다. 머리도 머리려니와 오른쪽 다리가 후둘후둘 떨려서 그냥 기어서 화장실로 가 소피(所避)를 보고 자리로 돌아와 누웠다. 이제까지는 누우려면 손바닥 세 두께 정도 부피의 베개를 등에 받치고 차차로 머리를 뒤로 젖혀 1분 정도 걸려 가슴이 부풀고 상체(上體)가 일자(一字)로 바닥에 닿는 자세(姿勢) ― 나중에 생각하니 이 무리한 자세가 뇌혈관에 울혈 증세를 일으켜 이 지경을 자초(自招)한 것이라고 여겨지기도 한 ― 를 취했었는데, 그냥 옆으로 누운 것이다. 목구멍에 걸거쳐 있는 우황청심원을 그대로 둔 것은 녹아서 그 성분이 목줄띠를 타고 체내로 흡수될 것을 기대했음으로써이다.

이것은 분명 하나의 극한상황(極限狀況)인데, 애들을 깨워서 비상 조치를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는가도 생각해 보았으나, 밤중에 서둔 만큼의 성과를 거둘 것을 기하기 어렵고,― 나중에 안 일이지만 발병 6시간 미만에 응급조치를 하면 혈전(血栓)도 지울 수 있다고 한다. ― 애들에게 부질없는 폐(弊)를 끼치지 않겠다는 평소의 생각이 하나의 신념(信念)으로 굳어져 있었기로 불시의 소란을 피울 생각을 아예 염두에도 두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어떻든 한소끔 눈을 붙이고 잠이 깨었다. 목구멍의 부표(浮標) 같은 우황청심원은 더 작아지지도 넘어가지도 않고, 여차직할 때 위험물이 될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서 아깝지만 그냥 뱉어 버렸다.

시간은 자꾸 가 벽시계는 어느덧 23일 아침 7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 큰손자 녀석이 문을 부시시 열며 “할아버지, 진지 잡수세요!” 한다. “애비 오라고 해라!” 대개 4시에는 일어나 이부자리를 개고 면도며 세수와 세발(洗髮), 세족(洗足)을 다 끝내고 단정히 책상 앞에 앉아 책을 보든지 글을 쓰는 평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내 몰골에 아들애는 우선 소스라치게 놀랐던 것이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아들애는 우선 제 처를 부르고, 극히 짧은 시간에 제 처조부 적 경험을 감안하여 한방(韓方)보다는 우선 뇌혈관(腦血管) 검사를 해야겠다고 의합(意合)하고 삼성동의 집의 애 선배 K박사에게 찾아가 기초 진단 후 뇌혈관 확장 주사를 맞고, 그 지시에 따라 건대(建大) 앞 H의원으로 가 MRI 촬영을 한 결과를 가지고 서울대 병원 응급실로 간 것이 오후 2시였다. 보통 같으면 MRI 촬영 순번을 기다리는 데 하루가 걸린다는데, 곧장 응급 조처를 해 하룻밤을 지낸 다음, 특실로 연결이 돼 안정적으로 치료를 받게 됐던 것이다. 26일에 신경과 병동 1인실로 옮겨 MRI 2회, 심전도(心電圖) 검사 2회, 폐 X레이 촬영, 하루 두 번씩의 피 검사 등 여러 가지 검사며 촬영을 하였으나, 기본은 미리 찍어 가지고 온 MRI 필름이 중심 구실을 했으니, K박사의 공이 컸다. 뇌혈관에 혈전(血栓)이 생겼는데, 그것으로 딸꾹질과 연하(嚥下, 곧 삼키는 작용) 기능이 제대로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 링거와 별도로 혈전 완화(緩和)제 주사를 맞았다. 딸꾹질이 하루 24시간 중 20시간이 계속되었다. 딸꾹질 억제 주사를 맞았다. 그것이 별 효과가 없어 다시 한 번 맞았다. 그런데 담당 R박사는 그 주사가 전체 치유(治癒)에는 장애가 된다고 하기, 그 후론 몸으로 이겨낼 지언정 그 주사는 안 맞았다.

그런데 하나의 기적(奇蹟)이 일어났다. 입원한 지 꼭 11일째 되는 날 아침, 딸꾹질이 씻은 듯이 가셨다. 동시에 혈전 완화 주사도 떼었다. 쌍권총 신세를 면한 것만으로도 중압감(重壓感)이 훨씬 덜어졌다. 14일째 되는 날 링거도 철수했다. 윗도리를 갈아 입을 때마다 신경을 쓰고, 화장실이나 복도를 걸을 때마다 끌고다니던 주사 설비에서 완전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날아갈 듯 산뜻한 기분이 들었다.

초기에 약간 어눌(語訥)했던 증세도 어언(於焉) 가시고, 거의 마비됐던 오른쪽 반신(半身)의 감각, 그 가운데서도 통각(痛覺)이 완전히 살아났다. 입을 연 채 거센 숨을 들이쉼으로 쩍쩍 갈라져 유혈(流血)이 낭자(狼藉)한 혓바닥에 글리세린을 발라 지혈을 시켰고, 퉁퉁 부어오르고 여기저기 터져 선혈(鮮血)이 뚝뚝 떨어졌던 입술도 꽤 아물어갔다. 그런데 침도 물도 삼키지 못하는 것은 조금도 낫지를 않는다. 목구멍으로 못 삼키니까 코로 플라스틱 관(管)을 7m나 식도를 통해 위(胃)까지 이르게 한 생명(生命)줄을 통해 1.5시간 간격으로 미음을 한 끼에 100㏄씩 주사기로 주입(注入)했다. 평상시에도 식후 과일을 즐겼었기 귤이나 오렌지, 사과, 배 같은 과일을 강판에 갈아 차 거르는 체에 밭쳐 30~60㏄를 공급 후, 물을 30㏄ 주입해서 관 내부를 깨끗이 씻어 내리곤 했다. 음식을 먹을 때 씹는 맛, 느끼는 맛, 목구멍으로 꿀떡 넘기는 맛이 삼위일체로 먹는 행복을 느끼는 것인데 그것을 몽땅 앗겼으니, 생불여사(生不如死)의 심경이라.

콧줄을 통한 공급은 유일한 활로인데, 꺼떡하면 그것이 싱겁게 빠져 다시 끼우자면 그 승강이가 말이 아니다. 하도 여러 번 갈아 끼는 바람에 나중에는 손수 콧줄을 요리조리 걸리지 않게 길을 찾아 7m까지 들어가면, 의사가 청진기(聽診器)로 위에 틀림없이 도달된 것을 확인하고 7m 표시 부분을 코밑에 고정시켰다. 콧줄이 잘 미끄러져 들어가도록 바셀린을 줄 전체에 칠하는데, 그것을 대강 훔치고 테이프를 붙이니까 쉽게 미끄러져 빠진다는 것을 알았기, 철저하게 바셀린을 훔쳐내고 테이프로 고정시키게 했더니 만년 반석으로 고정이 됐다. 맨 나중 것이 바로 그렇게 해서 고정시킨 내 작품이다.

그런데 코끼리를 연상케 하는 이 콧줄을 아쉬움없이 떼어 내는 날, 나는 다시 사람들 앞에 원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이 언제일지 의사도 간호사도 전연 예측을 못한다. 어떤 이는 콧줄을 낀 채 그냥 퇴원하기도 한단다. 어찌할 것인가. 나는 엉뚱한 생각으로 자위(自慰)를 해 보기도 했다.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자. 국가 사회가 아직 내가 쓸모가 있다면 콧줄 신세를 조속히 면할 게 아니겠느냐고 말이다. 사람의 목숨은 날숨을 들이쉬지 못하거나 들숨을 내쉬지 못할 때 끝나듯, 마찬가지로 씹은 것을 꿀떡 삼키지 못하면 생의 종언(終焉)을 고하게 될 것이니, 얼마나 심각한 일인가. 하나의 반사적(反射的) 행동이 마비되었을 때, 그것을 학습(學習)에 의해 소생(甦生)시키는 데는 피나는 노력이 수반(隨伴)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겪게 된 것이다.

삼키는 연습의 첫 단계가 젤리포, 두 번째가 요플레, 그 다음이 물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들이 수월하게 전개되지 않았다. 우연히 잣죽을 조금씩 입 안에 떠 넣어 보았더니 미끈함과 중량감(重量感)이 상승(相乘) 작용을 일으켜 비교적 쉽게 넘어가지 않는가. 다음 바나나를 곱게 씹어서 삼키니 비교적 수월하게 넘어갔다. 다음은 사과를 벗겨서 마냥 씹었더니 순하게 넘어갔다. 간호사실에 가 그 사실을 보고하고 콧줄을 통하는 미음 대신 입으로 먹을 죽을 부탁했더니 쉽사리 동의(同意)했다. 죽이 성공하면 이 괴상한 콧줄이 제거될 게 아니겠는가. 입원 후 16일째 되는 3월 10일, 조금씩 목으로 넘기게 되고, 그 사흘째인 12일에 죽을 먹게 되어 재생(再生)의 길이 트인 것이다. 그래 13일에는 담당 R박사의 허락이 내려 19일 만에 오후에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온 저녁부터 밥을 먹게 된 것이다.

뜻하지 않게 호텔보다 비싼 1인용 병실에서 멈춤의 시간을 보내고, 모든 분들의 협조 덕으로 기적에 가까운 소생이 현실화한 것을 고맙고 기쁘게 생각한다.

<1999. 3.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