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세대

                                                                                     고임순

 편지와 함께 수필집, 시집, 문학 잡지 등 심심치 않게 배달되는 편지함 속에 오늘은 특별한 책이 들어 있었다. 『도시와 공동체』, 하얀 하드 커버 위 도시 풍경 사진이 이채로운 연구 서적은 막내아들이 보낸 것이었다.

묵직한 책을 들고 가슴에 대본다. 온몸으로 기쁨이 번져난다. 그 옛날, 갓난 아들을 안았을 때처럼.

책을 펴보니 책머리에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와 끝부분에 아버님, 어머님께 사랑을 전하고 싶다고 씌어 있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어느 새 성인이 된 아들은 이 한 권의 책으로 붉은 카네이션보다 진한 향기를 내 가슴에 풍겨주고 있지 않은가.

한 장 한 장 넘기는 책장 속에 아들의 오른손이 아른거렸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부르며 돌을 움켜쥐고 어디론지 사정없이 던져 버리고는 허공에 휘두르던 손. 지금 책갈피마다에 그 돌들이 날아와 박히고, 아들의 고뇌와 절규가 언어가 되어 되살아나고 있다.

시대의 어둠을 넘어 오늘 세상의 중심으로 나온 한국의 주력인 386세대. 그들은 30대 나이에 80년대 학번으로 60년대 출생의 젊은이들이다. 그들의 어머니들은 8·15 광복을 맞던 소녀가 꽃다운 나이가 되어 6·25를 이겨냈고, 4·19와 5·16을 겪으면서 자녀를 낳고 키우며 오늘에 이른 653세대들이다.

수는 원형(原型)이라고 칼 융이 말했듯이, 역사적 사건의 기록인 연대와 월일의 숫자가 그 당시의 근본 이념과 정신이 되어 우리 뇌리에 뿌리박혀 지워지지 않고 있다.

숫자란 매우 묘한 것이어서 아무 개성도 없는 기호에 불과한 386이라는 숫자가 어느 날 신문지상에 기획 취재된 후부터 아들을 상징하는 신비한 숫자로 드러나 나를 사로잡았다.

80년대 신군부 정권 아래 대학에 들어갔던 아들 형제의 나이가 벌써 37세와 35세로 접어들고 있다. 억압적 분위기 속에서 대학 생활을 보내며 좌절과 상실의 아픔을 이겨냈던 주인공들. 그 뜨거운 열정으로 변혁의 세상을 꿈꾸며 고뇌하던 그들은 동시에 6·29와 ’88올림픽 등을 거치며 민주화로 고속성장의 성취감도 맛본 세대이기도 하다.

이 세상 모든 어버이들은 아들딸 잘 키워 대학 관문을 뚫고 나면 일단 한시름 놓는다. 악전고투 끝에 잡은 공을 골대에 집어넣고 잠시 승리감을 맛보는 농구 선수처럼. 그러나 대학 4년이 살얼음을 딛는 긴 세월처럼 느꼈던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아들이 지향하는 저 높은 곳을 바라보기만 할 뿐 그의 패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과격한 행동을 제지하는 용기가 필요했던 시절, 나는 어머니로서 능력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법학부를 마친 큰아들은 곧바로 사시 공부에 몰입했다. 매일 정성으로 싸주는 도시락 두 개를 들고 집 가까운 연세대학 도서관에 나갔다. 하루 종일 책과 씨름하다 집에 돌아오면 또 묵묵히 책상 앞에 앉았다. 이런 아들에게 아무 말이 필요없었던 나는 먹 갈던 손을 놓고 영양식을 밤참으로 만들어 주기도 하고, 건강을 염려하여 어깨를 주물려 주고 쉬게 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경제학부 재학중인 작은아들은 형과는 달랐다. 어디를 쏘다녔는지 바지와 신발은 흙투성인 채 늘 불만스런 얼굴도 투덜거리기 일쑤였다. 저녁을 먹을 때도 갑자기 큰소리로 올바르게 살자고 주먹으로 식탁을 치며 식구들을 놀라게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지금의 투지와 정의감을 졸업 후 학문으로 성취하라고 타일렀다.

어둡고 우울했던 회색빛 캠퍼스가 흑백 영화의 낡은 필름처럼 떠오른다. 무장 사복 경찰관에 끌려가는 친구들을 보고 격분한 학생들과 전투 경찰과의 싸움은 시작되었다.

최루탄을 쏘고 돌과 화염병을 던지고 맹수처럼 달려드는 긴박한 상황에서 학생들이 돌을 움켜쥔 것은 조건반사적이었다. 반항, 투신, 분신, 정의에 불타는 그 젊은 혈기를 그 누구도 잠재울 수 없었다.

격전이 끝난 연세대학교 앞길, 어지럽게 널린 벽돌 조각과 돌맹이, 화염병 조각, 최루탄 탄피들 속을 코를 막고 눈물을 흘리며 지나가면서 나는 아들을 생각했다. 이 소요 속에서 제대로 공부가 됐을까. 교문 옆 담 밑에 주저앉아 통곡하고 있는 어떤 어머니를 붙들고 나도 함께 실컷 울고 싶었었다.

386세대의 어머니들은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돌을 들고 던졌건, 구경만 했건, 도서관에 앉아 아예 외면했건, 그들은 격한 시위 문화의 기억에서 아무도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는 것을. 궁핍한 시대의 낭만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무거운 기억들이었다.

그 무렵이었다. 막내아들의 뒤를 사복 형사가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 것은. 운동권 핵심인 과 친구와 구로 구청 방화범인 단짝 친구의 행동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때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이 터져 술렁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 후로 아들은 방에 틀어박혀 책 읽기에 빠져들고 컴퓨터에 매달리는 날이 많아졌다. 그리고 용돈을 모아 빵, 주스를 사들고 구속된 친구를 찾아다니고 광주 망월동 묘지를 다녀오기도 했다.

불안과 초조한 나날이 이어지는 가운데 아들 앞에 큰 시련이 닥쳤다. 큰아들이 사법고시에서 고배를 마셨고, 작은아들은 학사 징계를 받은 것이다. 이 충격으로 실의에 빠졌지만 나는 두 아들의 실추를 사회 불안의 원인으로 돌렸다. 진정한 가능성은 반드시 전화되어 현실성이 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위로와 격려로 아들은 감싸주었다. 힘을 얻은 아들들도 이를 악물고 이 역경을 재기의 밑거름으로 삼아 이겨낼 수 있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목표한 과정을 이룩한 두 아들은 군 복무를 마친 후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나섰다. 그리고 짝을 만나 한 가장으로 살면서 지금은 제각기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밤 10시가 되어야 귀가한다면서 아들한테서 안부 전화가 걸려온다. 각각 변호사 사무실과 울산대학 연구실에서. 건강 조심하고 어서 가 쉬어라 하고 아들 목소리에 답하면서 내 마음은 항상 아들 곁에 머문다.

밤 늦게까지 아들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지난 80년대의 아들의 희망이 물거품으로 끝나지 않았음이 대견스러워 가슴 뿌듯하다. 변혁의 세상을 꿈꾸며 피신했거나,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던 운동권 친구들도 자유의 몸으로 풀려나 이제는 사회의 일원으로 가슴 펴고 일하고 있다. 어려운 시대가 386세대를 강하게 키워 오늘의 한국을 움직이는 일꾼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