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일

                                                                                     안인찬

 신부님이 날 보고 착한 일을 한 가지 하란다. 몇 가지 잘못한 일을 고백하였더니 보속으로 주시는 말씀이다. 이순(耳順)이 다 된 사람이 신부님에게 고백해야 할 만한 잘못을 저지르며 사느냐고 나를 딱하게 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르는 소리다. 살다 보면 얼결에 심한 욕을 하게 되고, 하루에 몇 번씩 남을 미워하는 날도 있다. 이런 정도의 잘못을 고백하면 대개는 잘 아는 기도문 몇 차례 외우라는 벌을 받는다. 사실 기도문을 외우는 일은 아무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설령 긴 기도문을 쉰 번쯤 외우라 하더라도 앉은자리에서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착한 일을 한 가지 하라니, 이번 신부님은 별난 분이시다.

우선 어떤 일이 착한 일인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어린아이들이라면 어른들의 심부름을 한다는가 허드렛일을 거들고 착한 일했다고 칭찬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나이에 남의 심부름을 하겠다고 자청하여 나설 수는 없는 것이다. 도울 만한 일이 있을까 하여 부엌 언저리를 서성거리기도 어려운 일이다. 혹시 그렇게 하여 따낸 일감을 하나 해냈다고 해도 그것을 보고 착한 일했다고 박수를 칠 사람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해볼 만한 착한 일을 찾다 보니 30여 년 전의 일이 생각났다. 충청도의 산골 작은 읍에 살고 있을 때의 일이다. 김사장이라고 불리우는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있었다. 그때 사장이라면 갖추어야 할 첫 조건이 배가 튀어나오고 뚱뚱한 것이었다. 식량이 흔하지 않은 때였던지라 사장이라도 되어야 잘 먹고 뚱뚱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의 김사장은 부모들 일이나 거드는 젊은이일 뿐 자기 힘으로 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단지 배가 나오고 살이 쪄서 사장과 같은 외모를 갖추었으므로 쉽게 사장이라는 칭호를 얻은 것이었다.

그 김사장이 읍내의 유명한 사람이 된 것은 그가 기차역에 객차가 들어오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나타나서 승객들의 짐을 날라주면서부터였다. 읍 소재 정도에는 아직 택시가 없었고, 이런저런 이유로 기차 승객들의 보따리는 무거운 것이 많던 시절, 김사장의 짐 날라주기는 착한 일이 될 만하였다. 김사장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면서 그가 착한 일을 하는 이유도 함께 알려졌다. 어려서부터 비만증으로 고생하던 중 어느 스님에게서 땀 흘려 착한 일을 하라는 조언을 듣고 그렇게 나선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얼마 전 남의 무거운 짐을 들어다 주는 사람을 몰래 찾아내서 상을 준다고 어느 방송사에서 법석을 떠는 것을 재미있게 본 적이 있다. 지금도 남의 짐을 날라주는 것을 착한 일로 여긴다는 증거가 될 만하였다. 그래서 김사장 흉내를 한 번 내볼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렇지만 남의 짐을 대신 나르겠다고 추근대는 것은 여러모로 어울릴 것 같지를 않았다. 집 주변을 돌며 쓰레기를 주워볼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것 역시 이웃 사람들이 보면 쑥쓰러울 것 같아 실천은 못하였다. 청소를 하는 일이라면 가까운 약수터를 깨끗이 치우는 것이 남의 눈에 띄지도 않고 좋을 듯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착한 일로서 마땅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약수터에 지저분한 것이 있으면 아무나 먼저 본 사람이 치우는 것이 당연하지 착하고 말고가 없겠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돈을 마련하여 양로원이나 고아원을 찾아가는 것은 어떨까를 생각해 보았다. 받는 쪽에 도움을 주고 나로서는 경제적 부담을 해야 하니까. 보속으로서는 뜻이 있을 듯하였다. 그러나 벌금을 내듯 돈을 몇 푼 쓰는 것이 착한 일이 될 수는 없을 것 같아 그것도 생각에 그치고 말았다.

착한 일을 실천하는 것은 그만두고 해볼 만한 착한 일에 어떤 것이 있나를 생각해 내기도 이처럼 쉽지를 않았다. 평소에 착한 일을 많이 하면서 살았더라면 이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달달 외운 기도문이 술술 나오듯 착한 일도 쉬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매일의 일과를 되돌아보면 착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악할 것도 없는 일들을 덤덤한 마음으로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밥먹는 것, 직장에서 일하는 것, 잠자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 이루어지는 일들 또한 마찬가지다.

어쩌면 알지 못하는 사이에도 착한 일이 아닌 나쁜 일은 자주 그리고 쉽게 하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남이 앉을 자리를 대신 차지하여 불편하게 하는 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차를 운전하면서 남의 급한 길을 가로막아 그를 화나게 하는 때도 많을 것이다. 아무렇게나 던진 말이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한 일도 흔할 것이고…….

좀처럼 착한 일을 찾아내지 못하여 마음이 편치 않던 어느 날 퇴근길에 마침내 그럴듯한 일거리를 찾아냈다.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11층으로 오를 때였다. 무심하게 문짝을 향하여 돌아서는데 바로 눈높이에 가래침이 맥질이 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보고 섰기가 메스꺼워서 고개를 들었다. 천장을 쳐다보면서 숨을 돌리는데 침 뱉은 사람이 옆에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생겼다. 입 밖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욕이 절로 나왔다. 사람다운 사람의 소행으로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여느 때 같으면 청소하는 아주머니의 일거리 하나 생겼구나 하고 생각하며 내려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신통하게도 저것을 닦는 것이 바로 내가 할 착한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들어가서 얼른 화장지 뭉치를 들고 나왔다. 다행히 엘리베이터는 아직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가래침을 닦아 내는 일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났다. 화장지를 두툼하게 접어서 닦았어도 꺼림칙한 생각이 들었다. 두어 차례 손을 닦고서야 마음이 개운해졌다. 시간이 갈수록 착한 일을 하도록 하여 기쁨을 맛보게 한 신부님이 고마웠다. 그 뿐만 아니라 가래침의 임자를 미워하던 생각도 사라졌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착한 일을 마침내 해냈다는 즐거움에 모든 것이 좋게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내가 정말로 착한 일을 하기는 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한편으로는 그만한 일이 신부님이 하라는 착한 일에 해당할지 아닐지도 분명히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착한 일을 하였다고 이렇게 동네방네에 나팔을 불어댔으니 그것도 마음에 걸리는 일이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몰라야 착한 일이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무래도 착한 일을 찾아 다시 나서는 것이 옳을 성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