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 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혜연

 갑자기 벽력 같은 호령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라 두리번거렸다. 전동차 안을 흐르고 있던 오후의 나른한 기운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다시 한 번 불호령이 떨어진다.

“너, 학생 맞냐?”

경로석 쪽이었다. 오십대 후반쯤 되었을까, 한 남자가 왼손을 주머니에 찌르고 선 채 ‘노약자 장애자석’이라 씌어 있는 표지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호통을 치고 있었다. 상대는 벽 쪽에 앉은 대학생 차림의 처녀 아이였다. 그러나 여학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화가 치민 그 사람은 목소리를 더욱 높여, 초등학생도 아는 일을 모르다니 도대체 이제까지 뭘 배웠냐고 하며 나무란다.

마침내 여학생이 가느다란 목소리로 한 마디 대꾸를 했다.

“아저씨가 노인은 아니잖아요.”

그러자 그 사람은 여기는 서양이 아니라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대한민국이다, 그러니 노인은 아니라도 어른이 오면 자리를 내어줄 줄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앉아 있자, 그 남자는 다시 한 번 냅다 소리를 질렀다.

“컴컴한 지하에서 시커먼 안경을, 꼴사납게 그것도 눈○○이 아닌 대가리에다 끼고, 시건방진 것 같으니라고…….”

여기저기서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꾸벅꾸벅 졸고 있던 내 옆자리 청년도 잠에서 깨어 배시시 웃고 있었다. 모두가 통괘하다는 표정들이었다. 나 역시 빙긋이 웃으며 다음에 일어날 일들을 기대하고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정작 무안을 당한 그 여학생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태연히 앉아 있었다.

여학생의 그런 행동에 기가 막혔는지 아니면 그만 시들해졌는지 그 사람은 슬슬 자리를 옮기더니 중간쯤 되는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다시 그 여학생 쪽을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니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뼈빠지게 일해서 공부시켜 놓았더니 저 잘난 줄 알고 콧대 세우고 다녀? 어른도 몰라보고 말이야. 그러니 요즘 나라꼴이 이 지경이 됐지. IMF가 다 뭐야, IMF가. 너희 같은 것들이 해외 여행이다 뭐다 하며 펑펑 쓰고 다녀서 나라가 요 모양 요 꼴이 됐어.”

그러더니 갑자기 그 사람은 “이 중에도 그런 죄 지은 사람이 있을 거야.” 하며 몸을 돌려 주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말에 동조하며 통쾌해 하고 있던 나는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와 눈이 마주칠까봐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팔걸이에 왼팔을 올려놓는 척하며 손으로 슬쩍 귀를 감쌌다. 귀걸이 때문이었다. 그날 따라 제법 큰 것으로 달고 나온 것이 마음이 쓰였다. 금방이라도 그 사람이 내게 달려와 삿대질을 해대며, 귀걸이다 목걸이다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너 같은 여자들 때문에 나라가 이 모양이 되었다고, 차 안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야단을 칠 것 같았다. 슬쩍 귀걸이를 떼어 버릴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런 내가 우스꽝스럽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이까짓 귀걸이가 뭐 어떻다고 하는 오기도 생기고 해서 그대로 있기로 했다. 그러나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여서 곁눈으로 흘끔흘끔 그의 행동을 훔쳐보았다.

두어 번 더 좌우를 살펴보던 그 사람은 무어라 웅얼거리며 다음 칸으로 넘어 가 버린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 나는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지은 죄도 없으면서 불안해 했던 것이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분수껏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나라안 사정은 공연히 나를 주눅들게 한다. 가진 자의 죄스러움이라고 해야 할까. 사치를 할 만큼 넉넉하지는 않지만, 몸을 고달프게 움직여야 목에 풀칠을 할까말까 하는 고생스런 생활을 별로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없는 사람들의 불행이 내 탓인 양 면구스럽기만 하다. 남을 짓밟고 올라 서 본 적도 남의 손에 들린 것을 빼앗아 본 적도 없이 주어진 내 몫에 순응하며 살아왔지만, 요즘 들어서는 왠지 다른 사람의 몫이었을지도 모를 양지(陽地)를 내가 차지하고 있는 듯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옛말이 있다. 팔자소관이라는 말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운명이라고 간단히 돌려 버리기에는 그들이 당하고 있는 어려움들이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러면서도 그런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어느 수필가가 고백했듯이, 얼어서 터진 거친 손 앞에서 내 손에 낀 장갑을 슬그머니 벗어버리는 것과 같은 미안함뿐이다. 막연히 그들이 겪고 있을 고통을 가늠해 보며 가슴 아파하거나 내 처신이 그들의 상처를 건드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할 뿐, 그들에게 내 몫의 행운을 성큼 떼어주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다.

있는 사람들이 많이 써 주어야 그 부스러기라도 먹고 살 수 있을 텐데 그것마저 없으니 살기가 더욱 어려워졌다고 하면서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던 어떤 상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래서일까 지은 죄는 없다고 하지만 그들에게 그 어느 쪽의 도움도 주지 못하고 있는 내 처지가 참으로 어정쩡한 것 같아 마음이 우울해진다.  

 

이혜연

수필공원으로 등단. 약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