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이야기

                                                                                              김선화

 요즘에는 도둑과 관련된 책들이 화제가 되는 듯하다. 처음에는 도둑들의 이야기가 뭐 좋은 것이라고 다루어지나 했는데, 책자에까지 오르내리는 도둑들은 도둑이긴 해도 섣불리 단정지어 말하기 어려운 비범함이 그들에게 있는 것 같다. 그런 것들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지 나도 때로는 큰 도둑들의 뒷이야기를 읽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도둑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있어온 것으로 조선 시대의 산적 ‘임꺽정’이나 허균의 소설 ‘홍길동’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들에 관해서는 어려서부터 익혀온 내용인데도, 단순한 약탈꾼이 아닌 의적(義賊) 쪽으로 무게가 실려 브라운관에 비쳐지는 것이 새삼스럽다. 가난한 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산적의 두목이 된 주인공이 탐관오리(貪官汚吏)들의 재물을 빼앗아 빈민(貧民)들에게 나눠주는 대목은 보는 이로 하여금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 그의 큰 도둑다운 위풍(威風)에서 사람들은 속이 시원타고 한다. 그런데 이미 오래 전의 이 이야기들이 요즘와서 재조명되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자칭 ‘대도(大盜)’라 말하던 조모씨의 이야기가 부각되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도둑질을 하되 소시민을 피하고 굵직굵직한 집만을 털었다는 그는, 많은 재물을 잃고도 신고조차 할 수 없었던 저명인사들의 사생활을 암암리에 고발한다. 게다가 한 탈주범은 현대판 홍길동이니 의적이니 하는 꼬리표를 달고 잘도 도망다닌다. 이러한 보도에 힘입어서인지 그는 실제 도주중에 어려운 이들을 도왔다는 기록을 남겨 두었다 한다. 또 이런 이야기들이 책으로 엮어져 서점가에 나돌고 있다. 마치 도둑질이 무슨 자랑거리라도 되는 것과 같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 뭔가 명확하지 않은 사회의 흐름이 사람들의 심리에 작용하는 것 같다. 그래서 엄연한 도둑이 의적으로 미화되는 것은 아닌지.

연전[年前] 충청도의 한 마을에 ‘소 도둑’에 관한 이야기가 돌아 떠들썩한 일이 있다. 소 한 마리를 도둑맞은 농가가 있는데, 하루는 그곳에 남루한 차림의 남자가 찾아왔다. 그리고는 주인을 향해 큰절을 하고, 1백만 원을 내놓으면서 옛날에 훔쳐간 소값이라 하였다. 남자는 소 판 돈을 도박판에서 잃어, 그 돈을 메꾸기 위해 남의 소를 훔쳤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런 도둑은 대도(大盜)의 재목은 아닌 것 같다. 소를 잃은 사람은 양심에 부대끼며 과오를 뉘우치고 온 도둑이 측은하기까지 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속담이 있듯이, 예전에는 소 도둑을 가장 큰 도둑이라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소 도둑 정도는 도둑이 아니다.

어느 금고 관리인은 유서(遺書)에 남기기를, ‘…에 대면 한낱 용돈에 불과한 것을 치사하게 캐려드는가.’ 하였다. 나는 몇 줄 안 되는 그 기사를 읽으며 묘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도둑질을 한 쪽도 도둑이요, 도둑을 잡으려 한 쪽도 도둑이다’고 씌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이렇게 말하는 나도 더러는 남의 것을 내 것처럼 탐낼 때가 있다. 그 첫번째 사건이 여남은 살 때의 일이다. 고향 집 근처의 이웃집 과수원에는 이른 봄부터 복사꽃이 피었다. 그리고 그 열매가 나날이 다르게 살쪄가나 싶더니, 한창 복숭아철이 되자 특유의 단내로 코끝을 자극해 왔다. 해마다 그맘 때면 “외밭에선 소피만 보고 일어서도 외 땄다는 말 듣는 법”이라며 어머니는 누누이 이르시곤 하였다. 그래서 코흘리개 동생들조차 복숭아밭을 향해서는 허튼 손짓 한 번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들의 색깔이 유난스레 붉게 보이던 초여름 한낮에 나는 기어코 일을 저질렀다. 살그머니 숨어들어 복숭아 세 개를 땄다. 그 후 지금까지도 그 일은 종종 꿈 속에 등장한다. 아이를 가질 때조차 나는 그 나무 주변을 배회하는 꿈을 꾸곤 하니, 내게는 간 큰 도둑의 자질이 없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그걸 누구랑 나눠 먹지도 않았으니, 큰 도둑다운 의기(義氣)는 이해하기도 어려운 게 아닌가 한다.

 

 

 

김선화

제1회 ‘한하운 문학상’ 수필 부문 대상 수상(98년).

수필집 『둥지 밖의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