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황찬호

 ‘고향이 어디세요?’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이북입니다’, ‘황해도입니다’, ‘장연(長淵)입니다’, ‘장련(長連)입니다’ 등 여러 가지로 나온다.

장련은 내 출생지이고, 장연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3학년까지 거기서 다닌 곳이요, 해주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까지 거기서 다닌 곳이요, 제2차 세계대전 후로는 쭉 서울에서 살았으니 이곳도 고향이라 할 수 있다. 묻는 사람에 따라서 또 상대가 알고 싶어하는 내용에 따라서 대답은 달라진다. 이북 5도 사람들이 모인 때도 해주로 갈 것인지, 장연으로 갈 것인지, 장련으로 갈 것인지 나 자신도 어리둥절해진다.

고향(故鄕)의 향(鄕) 자는 ‘시골 향’, ‘고향 향’이니 우리의 출생지를 의미하는 것만은 틀림없을 것 같다. 그러나 고향이라는 말은 우리가 거기서 태어난 어느 한정된 지점 내지 지역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 관련된 풍경, 냄새, 소리, 맛, 사람, 그 밖의 무수한 상념 등이 뒤엉켜 우리의 고향을 이룬다.

둥근 박들을 품에 안고 키우고 있는 초가집, 그 위에 널어놓은 빨간 고추, 한가롭고도 지루하게 돌고 있는 연자방아, 젊은이들의 애틋한 사연들을 감추고 있는 물레방앗간과 뽕나무밭, 그 옆을 스치며 흐르는 실개천, 그 옆 풀밭에서 그렇게 젊잖고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얼룩소 떼들도 우리의 고향이다.

고향의 풍경은 이 뿐만이 아니다. 해질 무렵 붉은 노을을 등지고 떼지어 날아가는 산까마귀, 흐트러짐없이 줄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떼, 달을 보고 짖어대는 삽살개들도 고향이다.

요사이 서울에는 하늘이 없다. 북두칠성도 은하수도 계수나무와 토끼한 마리도 없어져 버렸다. 며칠 전 별똥들이 쏟아져 내린다는 기상청의 예보를 듣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수리산 밑에까지 가서 5시까지 하늘을 지켜 보았지만, 서울의 별빛 때문에 은하수도 보이지 않고 어쩌다 별똥 하나를 보고 돌아오고 말았다. 이 사라진 별들이 아직도 우리네 고향에는 그대로 있다. 계수나무도 토끼도 고향에는 그대로 남아 있다. 하늘도 밤도 그대로 있다.

고향에는 장미도 라일락도 히야신스도 마로니에도 없다. 진달래, 찔레꽃, 동백꽃, 배꽃, 복숭아, 민들레, 산딸기가 할미꽃과 더불어 거드름 피지 않고 요란 떨지 않고 수수히 그리고 그렇게도 열심히 피어 있다. 이것이 다 고향의 풍경이다. 또 고향의 소리요 냄새다. 얼룩이 황소들의 호소 어린 어눌한 울음소리, 늦봄이면 뒷산에 메아리지는 그 서글프고 한스러운 뻐꾸기 울음소리, 꾸르럭거리는 산비둘기, 소쩍새와 부엉이 울음소리, 삽살개가 달을 짖는 소리. 그러나 소리 중의 압권은 뭐니뭐니 해도 가을 밤의 고요를 건드리는 다듬이질 소리다. 앞으로는 다듬이질 소리는 들을 가망이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창(唱)을 들을 때마다 나는 고향을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 민족의 향기일는지 모르겠다.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소.

 

라는 노천명(盧天命)의 시(詩)는 바로 이런 고향을 노래한 것이다.

고향에는 냄새가 있다. 우선 두엄 냄새다. 내가 다니던 보통학교(초등학교)에는 교사 뒤에 큰 농지가 있어서 학생들한테 농사 실습을 시켰었다. 그래서 큰 두엄칸이 있고, 우리들은 두엄풀을 베어다가 두엄칸에 깔아놓고 측간에서 오물들을 통에 담아다가 그 위에 붓고 흙을 덮어 삭여서 훌륭한 퇴비를 만들었다. 그 두엄 냄새는 익히고 나면 코를 막아야 할 만큼 고약하지도 않고 나름대로 슬그머니 정이 드는 그런 냄새로 변하는 것이다. 담배 연기에 찌든 사랑방 냄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술 익는 냄새가 풍겨올 때는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로 끌려 들어가게 된다. 이보다 더한 고향의 냄새가 또 있으랴.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朴木月)의 이 시(詩)야말로 우리 고향을 그렇게도 가슴에 와 닿게 그려낸 일품이다. 한 폭의 그림 속으로 살며시 풍겨오는 술 익는 내음새. 서울에서 자란 애들이 기억하고 있는 냄새는 어떤 것일까? 늙어서 그 냄새가 향수처럼 그리워질 것인가?

냄새와 더불어 고향에는 고향의 맛이 있다. 민족마다 키워온 음식 문화가 있어서 나름대로의 벗어나지 못하는 고유한 맛들이 있다. 우리의 맛은 역시 발효 음식의 그것일 것 같다. 된장찌개와 김치와 젓갈의 맛은 어느 누구에게나 예외일 수 없는 고향의 맛이다.

나는 미국에 처음 갔을 때 호화스러운 기숙사 음식에 감탄을 했었지만 얼마 안 가서 ‘고향’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견딜 수 없어서 야채에 핫소스를 뿌려 인스턴트 김치를 만들어 뱃속에 넣었더니 일종의 금단현상이 풀리며 마음과 몸이 편안하게 진정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해외로 조금 긴 여행을 하다 보면 누구나가 이런 생리적 향수를 처절할 정도로 느낄 것이다. 한국 음식점에서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를 먹고 나서야 몸이 풀린 경험은 나만 한 것이 아닐 것이다. 나는 지금도 김치전과 김치밥에는 넋을 잃는다. 김치밥은 특히 황해도 명물로 그립기 그지 없지만 자주 먹게 안 된다. 우리 집 조리사의 고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고향이란 어떤 구체적인 실체라기보다는 우리 마음 속에 깃들여 있는 그리움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가요 속에는 ‘아가씨’와 ‘처녀’가 무수히 나온다. ‘동백 아가씨’, ‘삼천포 아가씨’, ‘완도 아가씨’, ‘금산 아가씨’, ‘서울 아가씨’, ‘목화 아가씨’, ‘빨간 구두 아가씨’, ‘앵두빛 아가씨’, ‘소양강 처녀’, ‘앵두나무 처녀’, ‘나룻배 처녀’, ‘영주골 처녀’, ‘영산강 처녀’, ‘개나리 처녀’ 등등.

‘대머리 총각’ 등 총각이 아가씨나 처녀보다 적은 것은 가사를 쓰는 이가 대개 남성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어쩔 수 없는 가장 큰 그리움은 ‘처녀’와 ‘총각’일 것이니 이것이 대중가요의 주제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KBS ‘아침마당’의 잃어버렸던 부모 형제를 찾아 만나는 장면은 실로 애절하다. 먹을 것이 없어서 남의 집이나 고아원이나 외국 가정에 양자로 보낸 얼굴도 기억 못하는 부모가 뭐가 그렇게 그리워서 20년, 30년을 두고 애타게 찾으려는지 알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핏줄에 대한 그리움, 다시 말해 ‘핏줄의 고향’을 찾으려는 몸부림일 것이다. 찾아서 어쩌자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리워서 찾는 것이다.

지금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교포들이 몇백만 명이 될 텐데, 이들이 고국을 잊지 못하는 것도 그 원초적인 그리움 때문이지 고국이 그들한테 주는 어떤 도움 때문인 것은 아니다.

작년에 증권거래를 둘러싼 부정 의혹 속에 자살한 재일 한국인 2세 아라이 쇼케이(新井將敬) 중의원에 대해 같은 연배의 일본인 논픽션 작가 이시카와 요시미가 아사히 신문에 추도문을 기고했다.

그는 그 추도문에서 일본의 전 총리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崇) 같은 사람은 록히드 부정 사건으로 옥중에 수감중이었는데도 선거에 나오자 고향 사람들이 20만 표나 몰아주었지만, ‘품어 안아줄 고향이 없었던 아라이 씨가 택할 수 있는 길은 죽음뿐이었다’라고 하며, ‘아라이 씨의 고향은 피를 이어받은 한국도 자신이 태어나 자란 일본도 아니었다. 그의 고향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미래였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가 고향일 수밖에 없는 그런 인간은 도대체 누가 만들어 냈는가. 그것은 근대 일본이다’라고 했다.

이렇게 보면 고향의 개념은 한없이 확산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고향이란 결국 어떤 구체적인 실체라기보다는 우리들 마음 속에 곰삭아 앙금져 있는 그리움인 것 같다. 그리움이란 잡아놓고 나면 이미 그리움이 아니다. 다가 서면 또 멀리로 멀어지기 마련이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 그리던 고향은 아니려노

………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냐고

메마른 입술이 쓰디 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 정지용 ‘고향’

 

이런 것이 우리의 고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이나 추석에는 수백만 명이 고향을 찾아 이동한다. 어쩌면 우리 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짙은 고향의 정일는지 모르겠다.

나도 해주(海州) 광석개[廣石川]의 해운교 다리[海雲橋] 위에서 수양산을 한번만 바라다보고 쇼팽처럼 그 흙을 한 줌만 가지고 나올 수 없을까… 내가 죽기 전에. 그리고 일본 군대에 들어가기 전에 ‘센닝바리(千人計)’를 만들어 준 동기 해옥(海玉)이를, 그 손밖에 잡아보지 못한 지금은 고운 할머니가 되었을 그녀를 한 번만 다시 만나보았으면… 내가 죽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