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깊어가고

                                                                                               김채은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무심히 바라본 벽시계가 자정 가까운 시각을 가리키고 있다.

열두 시라고?

통화를 시작한 게 열 시 무렵이었는데 그렇다면 무려 두 시간이나 얘기를 나눴다는 말이 된다. 오래 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아무리 두 시간이 흐르다니.

두 시간… 두 시간… 뇌어보는 사이에 소리 없는 웃음이 입가에 번진다. 감기 끝이라 목이 안 좋고 옷을 껴입어도 자꾸 추워하던 내가 난방도 잘 안 된 마루에서 긴 시간 얘기를 나눌 친구가 있다! 얼마나 흐믓한 일이냐.

얼핏 떠오르는 대로 그럴 수 있는 친구가 서너 사람 더 있구나.

…캐서린 헵번의 자서전을 봤더니 이러이러 하고 저러저러 합디다… 미국 신간들을 원서로 독파한 후 정연히 펼쳐가는 친구의 독후감은 정신이 번쩍 들게 명쾌하기 그지 없고, 마주 앉은 이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만큼 수줍은 성격이지만 신앙에 정진하는 한 자매와의 통화는 머뭇거리는 내 신심을 단호하게 이끈다. 젊은 날에 겪은 힘들었던 일들을 함께 웃고 함께 울먹이며 서로 위로하던 선배와의 통화는 참 또 얼마나 정겹고 따뜻한가.

속 깊은 우정이라는 게 꼭 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만 형성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일주일에 두어 번 산을 함께 오르고 매일이다시피 자주 만나는데도 필요한 말만 주고받을 뿐인 말수 적은 친구도 있고,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가끔 나누는 짧은 통화만으로도 깊은 우애를 느낄 수 있는 먼 곳의 젊은 문우도 있으니 말이다.

자주 만나거나 안 만나거나, 긴 얘기를 나누거나 안 나누거나 그런 것과는 별 상관없이 그 앞에서 무작정 솔직해지고 뒷걱정 없이 편안한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믿어도 되는 좋은 친구라고 생각해 왔기에 나 또한 그런 친구가 되어주려고 딴에는 애를 쓰며 살아왔지 싶다.

월탄의 글 가운데 친구에 대해서 쓴 수필 한 편이 있다. 성격이 다른 세 사람을 등장시키고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그들의 인품에 대해 언급한 글인데, 실제로 선생에게 그런 친구들이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내가 보기로는 자신의 우정관을 피력하기 위해서 다분히 의도적으로 쓴 글이 아닌가 여겨졌다. 그러니까 세 사람 중 가장 형편없는 줄 알았던 친구가(문맥대로면 누가 봐도 그렇게 여길만 했다) 나중에(십 년인지 십오 년인지 아무튼 엄청 긴 세월이 흘러간 후) 알고 보니 사실은 제일 진실한 우정의 소유자더라…는 내용이었다.

처음 그 글을 읽고 나는 한참이나 소리내어 웃었다. 끝에 가서 반전은 시켰지만 바로 앞부분까지 그 친구를 참 몰상식하고 염치 없는 인물로 묘사했기 때문에 그게 사실이라 해도 우스웠고, 재미있으라고 윤색을 했다 해도(소설가니까) 우습기는 역시 마찬가지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토록 자주 만나고 오래 사귄 친구의 진면목을 어쩌면 그렇게 더디 알아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월탄이 누군가. 한 시대의 선각자이며 유능한 언론인이었고, 역사에 남을 대작을 몇 편이나 쓴 혜안의 소유자 아닌가. 필경 행간의 어디에 내가 읽어내지 못한 의미가 숨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글을 놓고 합평을 하던 날, 나는 다른 분들이 발표를 하는 동안 “결코 ‘웃긴다’는 표현을 해서는 절대로 안 돼!” 하고 몇 번이나 다짐을 하며 앉아 있었다. 그랬는데 막상 차례가 오자 언제 그런 다짐을 했더냐 하고 “선생이 오래 사셨기 망정이지 단명했더라면 그 친구분은 참… 어쩌구… 그래서 저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고 거침없이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좌중에 잠시 실소가 번졌고 그제서야 ‘아차’ 깨달았지만 이미 해버린 말을 어찌 해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만큼 나는 오해받은 월탄의 친구가 딱하고 측은했던 것이다.

그날 밤 잠을 설치며 단단히 결심한 바가 두 가지 있었으니, 하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오해할 만한 짓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신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진실을 잘못 분별하는 실수는 결코 저지르지 않으며 살아가야겠다는 것이었다. 살아오면서 그런 생각을 왜 안해 봤을까마는 그날의 정황이 새롭게 다짐하지 않을 수 없도록 나를 부추겼던가 보았다.

그러나 합평회에서 ‘결코’와 ‘절대로’를 몇 번씩 다짐하고서도 순식간에 다 잊어버리고 만 것처럼 나는 결심을 잘 하듯 망각 또한 잘해서 그 밤 불면의 결심도 별무 소득인 채 타고난 본성대로 헤매며 살아간다.

지난 달에 만났던 동창 모임일도 생각난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친구가 나를 바라보더니 웃음 가득한 얼굴로 말을 건네왔다.

“나는 말이지, 아무개가 이렇게 편안한 사람인 줄을 이제야 알게 됐지 뭐야.”

“?…… !……”

이런 문장 표현이 가능한 것인진 모르겠으나 아무튼 내 심정은 그때 그랬다. 월탄의 십오 년을 웃긴다고 공언한 나인데, 여고 일 학년 때부터 계산하면 무려 사십 년 가까이 흘러간 지금 이런 말을 듣다니, 참으로 딱한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로도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앞부분에 든 몇몇 예화에 자기는 언급하지 않았으니 그럼 자기는 뭐냐고 따져오는 친구가 있으면 그때 참 뭐라고 대답 해주면 좋단 말인가. 여기쯤에다 “나에게는 ‘그 사람이 거기 있지…’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하고 흐뭇해지는 그리운 친구가 몇 사람이 있다”라고 쓴다고 해서 그의 서운함이 풀릴 것 같지는 않으니 말이다. 고은(高銀) 시인이 왜 ‘만인보(萬人譜)’씩이나 짓고 있는지 이해가 가고도 남을 일이다.

오십 년쯤 살아온 사람들에게 남은 삶은 갈수록 쓸슬할 것이고, 언젠가는 제 몸 추스리기가 힘에 겨울 날도 다가올 것이다. 그런 때 쓸쓸함과 고단함을 서로 기댈 친구마저 없다면… 아, 그런 인생은 너무 서글퍼!

밤은 깊어가는데 잠은 안 오고 부질 없는 생각은 끝없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