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료작-

벽난로 앞에서

                                                                                               박철호

 이십 년 전 석탄을 개서 불을 지핀 군대 내무반에서의 벽난로 체험 이후에 모처럼 이역 만리 뉴질랜드에서 벽난로 앞에 앉는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뉴질랜드에서 이처럼 낭만적인 벽난로를 사용하게 되리라는 것을 조금도 예측하지 못했다.

수년 전 캐나다에서 유학할 때 교포 가정의 벽난로 앞에서 종종 담소를 즐기던 때가 없지는 않아서 서양식 벽난로 문화가 전혀 낯설지는 않다. 그렇지만 캐나다에서는 내 집도 아닌데서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벽난로 앞에서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갖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러나 뉴질랜드에서의 이 벽난로는 비록 월세집의 유일한 난방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하지만 어려서 유난히 불장난을 좋아했던 내겐 모처럼 가져보는 행운이라는 생각도 든다.

뉴질랜드는 사계절이 있는 온대지방이지만 겨울이 그다지 춥지 않으므로 보통의 가정집에서는 거실의 벽난로가 유일한 난방 시설이다. 서민들의 침실에서는 고작 뜨거운 물주머니를 끌어안고 자거나 전기 히터를 켜서 방안 공기를 덥히곤 한다. 그러므로 뉴질랜드의 겨울 저녁을 가족과 함께 거실에서 보내느라 저녁마다 벽난로에 불을 지폈다. 그것을 위해서 창고에는 미리 잘 쪼개진 장작을 가득 쌓아 놓았다.

오래 된 싸구려 집이었지만 장작불 앞에서는 고국에서 즐겨보지 못한 별장 생활의 낭만에 젖을 수 있어서 좋다. 벽난로가 있는 별장은 TV 드라마에서나 보던 것인데 잠시나마 별장의 주인이 된 듯한 기분을 누리게 되니 부자가 된 느낌에다 향수도 어지간히 달래져 좋다.

뉴질랜드의 이 목조집에 세를 들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하루는 벽난로에서 한아름의 장작을 태우고 종이 박스에 재를 담아 바깥의 창 밑에 두고는 가족이 모두 외출을 했다. 밤늦은 시간에 외출에서 돌아와 보니 재 속에 감추어진 불꽃이 살아남아 종이 박스를 태우고 나무판자로 된 벽까지 태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행이 정도가 심하지 않아서 화재 신고를 해야 하는 지경까지는 이르지 않았어도 하마터면 하룻밤 사이에 집 전체를 태울 뻔했다.

그러나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판자 벽의 불탄 흔적을 한동안 집주인에게 고백하지 못하고 마음을 졸이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곤혹스럽다. 그런데도 벽난로 앞에 앉기만 하면 여전히 습관처럼 불피우기를 즐기고 있으니 내마음 어디쯤에 화마(火魔)의 화신(化身)이라도 숨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어렸을 땐 시골에서 구공탄이 주요한 난방 재료에다 취사 연료였지만 장을 담그는 날이나 큰일을 치르는 날이면 마당에 가마솥을 걸고 제재소에서 사온 쭉때기로 불을 땠다. 서양식 벽난로는 아니었지만 말하자면 옥외의 벽난로라고나 할까.

화로의 아궁이에 장작 몇 개를 걸쳐놓고 불쏘시개로 불을 지펴 활활 불꽃이 타오르게 하는 일은 순전히 내 몫이었다. 매운 연기가 내 쪽으로만 온다고 몸을 틀어대곤 하면서도 타들어가는 나무를 지켜보며 불을 쬐는 즐거움은 매우 컸다. 그때 불 앞에서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지금도 도무지 알 수가 없지만, 불을 피우는 그 자체가 즐거운 놀이였던 것만은 틀림없다.

불장난을 하면 오줌을 싼다는 어머니의 성화도 그땐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온통 머릿속엔 불 생각뿐이었다. 어느 날 순간적인 역풍으로 불꽃이 얼굴을 덮쳐서 눈썹을 그을린 까닭으로 어머니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고서도 불을 지피는 날이면 어김없이 불 앞에 앉아 예의 그 불놀이를 즐기곤 했다.

오늘도 화마(火魔)에 사로잡혀 벽난로 앞에 앉은 나는 포개놓은 마른 장작 사이로 치솟는 불꽃과 불꽃의 잔영을 살피면서 숯처럼 탄화된 감성의 부활을 꿈꾼다. 이 벽난로에서 펼치는 불꽃의 유희와 탄성은 유년의 내 눈에 비쳤던 그때의 불꽃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불꽃과의 친밀한 침묵의 대화만이 전에 없던 새로운 모습이다. 무릎팍이 뜨거워지면 뒤로 물러나 앉았다가 불꽃이 사그라들면 다시 다가간다. 홍난파가 작곡한 ‘사랑’이란 명가곡의 간절한 곡조와 함께 탈 대로 다 타라고 하는 메시지가 들려온다. ‘지금 너는 주어진 생을 제대로 태우고 있는가?’ 하는 물음도 들린다. ‘왜 최선을 다하지 않는가.’ 하는 지미 카터 전(前) 미국 대통령의 말도 불꽃 속에서 튀어 오른다. 나무도 어느 시기에 이르러 화력이 좋은 재질과 크기가 되는 것처럼 사람의 인생 여정에도 최대로 에너지가 충전되고 발산되는 시기가 있다고 하는 일갈(一喝)이 터져나오기도 한다. 환청(幻聽) 같지만 결코 환청이 아닌 내 안의 음성이 눈앞에서 불꽃으로 일어나는 것을 본다.

이제 40대의 고개에 올라섰다. 한창 일해야 할 젊은이다. 살아서는 그늘이 좋고 죽어서는 화력이 좋은 나무가 되기 위해서 아직 스스로 갈고 닦아야 할 것이 많고 이웃과 더불어 해야 할 일도 많다. 뒤를 돌아보면 제대로 타지 못해 숯도 재도 되지 못한 채 나뒹구는 잔해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노(老)교수님의 실험을 도우며 학문의 기본을 익히던 모교에서의 석사 과정과 최고 학위를 얻기 위해 애쓰던 캐나다 유학 시절의 정진만이 제대로 나를 태웠던 흔적이다. 그러나 그것도 가족의 희생을 불쏘시개로 하여 태운 것이니 그리 내세울 것은 못된다. 주변 가족의 아픔을 줄이고 성취의 보람과 기쁨을 그들과 온전히 공유할 수 있는 삶이 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적지 않다.

 

 

 

 천료 소감

기다렸던 봄비와 함께 반가운 천료 소식을 받았습니다. 아직도 부끄럽기 만한 글솜씨임에도 불구하고 수필문단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뽑아 주신 계간수필 편집위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오래 된 갈망으로 여전히 목마른 영혼에게 한 모금 생수를 허락하신 주님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옆에서 격려해 주신 가족, 친지 여러분들께 밝고 건강한 글로 보답해 드릴 것을 다짐하며 문우 여러분의 아낌없는 지도편달을 당부드립니다. 부디 자기도취가 아닌 자아성찰의 계기가 되어 날마다 거듭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박철호

 

1956년 生. 강원대, Alberta대 졸.

강원대 식물응용과학부 부교수.

시집 『東江 모래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