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회 추천-

산과 물 사이

                                                                                                  권태숙

 전망이 좋고 그렇지 못함에 따라 아파트 값이 꽤 차이나 난다는 신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같은 지역, 동일 평수라도 한강이 보이는 곳이 일천만 원에서 삼천만 원까지 더 비싸다고 한다. 콘크리트의 도시 서울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살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답답한 시멘트 벽 대신 하늘을 이고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는 강물이 펼쳐져 있다면 얼마나 쾌적할까. 삶의 어려운 순간도 때로 밀려오는 우울하거나 답답한 마음도 쉬 풀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도 한때 그런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었다.

어려서부터 산보다는 강이나 바다를 더 좋아했다. 도회지 한복판에서 자란 탓으로 생활 속에서 느낀 구체적인 감정은 아니었고, 어쩌다 간 여행이나 소풍에서 맛본 기분이었다. 산은 왠지 답답하게 느껴지는 반면 강은 그 색깔부터 청량했다. 시원스레 가슴을 적셔오는 물줄기를 바라만 보아도 좋았다.

중학교 시절 ‘인자(仁者)는 산을 좋아하고 지자(智者)는 물을 좋아한다’는 ‘仁者樂山 智者樂水’란 글귀를 배웠다.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이치에 통달하여 막힘없는 것이 흐르는 물과 같으므로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정의와 진리에 안주하고 쉬 마음이 변치 않는 것이 변함없이 한자리에 있는 산과 같으므로 산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강을 더 좋아했던 나는 지혜로운 사람이 어진 사람보다 멋있어 보여 자신이 지자(智者)라도 될 것처럼 까불댔다.

사회 초년생이 되어 맞은 첫 휴가 때 동햇가를 달려 경상북도의 맨 위에 있는 죽변으로 갔다. 사람으로 아우성인 해수욕장보다 바다를 마음껏 보고 싶어 등대를 찾았다. 등대 앞 마당에 주저앉아 바라보던 바다, 하늘 끝까지 이어진 망망대해, 이 세상 모든 것을 포용할 것 같은 너그러움, 초록과 파랑의 여러 혼합색의 오묘함, 죽도록 아름답다는 말을 실감한 곳이었다. 오랫동안 일어설 줄 모르고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때 ‘내 스스로 죽음을 택해야 할 때가 오면 저곳에서 죽고 싶다. 조그만 배를 하나 구해서 파도에 떠밀려 육지로 되돌아 올 염려가 없는 먼 곳까지 가서 사라지고 싶다.’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바다에서 왜 죽음을 생각했을까.

지난 해 봄, 친구가 해운대에 집을 마련했다고 놀러오라고 했다. 거실에 앉아 바다를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부러워했다. 그런데 지난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친구는 다시 못 올 길을 떠났다. 여행을 하기 위해 나섰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막내가 고등학생인데 방학이 되기도 전에 외국 여행길에 오른 친구가 평소의 그답지 않아 이해되지 않았다. 별장 같은 집을 두고 여행이 그리 급했을까. 아스라이 수평선까지 닿은 바다는 어떤 존재로 그 앞에 있었을까. 삶의 순간에 솟구치는 여행에 대한 욕구를 잠재우지는 못했나 보다.

어쩌다 본 강과 바다, 여행에서 소풍에서 또는 호숫가 찻집에서 바라다 보는 물들은 순간 가슴을 환하게 열어주고 머릿속을 말갛게 비워 준다. 그러나 매일 눈만 뜨면 보이는 아득한 물은 상쾌한 기분만 주지는 않을 것이다. 한없는 넓음으로 인해 오히려 막막해지고 우울증을 안겨주기도 할 것이다. 때로 비도 내리고 눈도 오고 풍랑도 일겠지만 그도 잠시일 뿐 언제나 푸른 채로 변함없는 물이다. 그 단조로움 역시 삶의 활력소는 되지 못한다. 지루하게 되풀이 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 줄 힘은 항상 그대로 있는 강줄기보다 철따라 옷 바꿔 입는 산에 있을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산을 오르는 일이 잦아진다. 운동삼아 오르기도 하지만 산의 묘미를 조금씩 알게도 되었다. 때맞춰 피는 아기자기한 야생화, 생명력이 넘치는 녹음, 매료시키는 화려한 단풍, 순리를 깨우치는 낙엽, 또 설경, 이런 변화 하나하나가 새롭고 기쁨을 준다. 전에는 멋진 산이 아니며는 그리 오르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동네의 야트막한 뒷산도 정이 간다. 가녀린 풀꽃 한 송이가 얼었던 대지를 밀고 봄을 알리는 정경이 반갑고, 암벽 사이 한 줌 흙이라도 디디고 자라는 어린 소나무가 대견하다. 물은 그저 바라보면 화안하고 시원하지만 생명을 느끼지는 못한다. 그러나 산은 계절에 민감한 생명체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어 좋다. 까마득한 아래를 보며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쉬고 마음 속의 응어리를 날려 보내는 것도 산이 주는 덕이다.

4월이 중순을 넘으면서 나무들은 윤기나는 어린 잎들로 봄을 피워낸다. 진달래와 산벚꽃이 연두빛 나무들과 어울려 파스텔톤을 이룬 산은 생명의 환희로 넘친다. 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에 산 정기를 받으면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가끔 바다가 그립다. 그러나 투명한 소리로 지저귀는 새들이 살고 향긋한 산나물이 손짓하고 골짜기 물 소리가 시원한 산 가까이에서 살고 싶다. 들어가지 못하는 한강보다 생각날 때 오르내릴 수 있는 관악산이나 북한산, 아니면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조그만 야산의 한 자락이라도 바라보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