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原稿紙)

                                                                                           白妊鉉

 나는 지금 원고지에 글을 쓰고 있다. 마감이 급해 팩스로 우송하라는 주문이었지만, 이처럼 여러 장을 팩스로 한다는 것은 좀 무리일 것 같아 망설인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원고지에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컴퓨터를 익히는 사람이 많아지면 원고지에 글 쓰는 작업도 분명 한계가 올 것 같아 지금도 웬만한 사람들은 워드 프로세서를 이용하여 글을 쓴다. 부러운 일이다. 이런 추세가 보편화되면 원고지가 필요없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십여 년 전, 글을 쓰는 한 후배가 컴퓨터로 글을 쓰는 시대가 반드시 올 것이라며 컴퓨터를 배우자고 하였다. 그러나 기계 만지는 일에 자신이 없고 현실적으로 당면한 문제도 아니어서 망설이는 동안 그 후배는 컴퓨터를 들여 오고 소설 몇 권을 워드로 베껴 내더니 지금은 그 분야의 선수처럼 능숙해졌다. 그의 예견이 맞아서 시대가 점점 그렇게 변해 가고 있다. 일단 배워 놓은 사람들은 기계의 정확성과 능률성을 기꺼이 인정한다. 신춘문예나 문학작품 모집에 컴퓨터 작업을 요하는 것은 당연한 상식으로 되어 있다.

가끔 활자로 쓴 편지를 받게 될 때가 있다. 규격화된 에이 포(A4) 용지에 정형화된 기계적인 글씨, 정확하고 세련되어 보이기는 해도 인간적인 체취가 느껴지지 않아 건조한 느낌이 들곤 한다. 마치 공문서를 받아 보는 기분이다. 그러나 이제는 익숙해져서 처음에 가졌던 공허함에서 벗어나고 있다.

여러해 전, 작고 문인들의 육필 원고 전시회가 있었다. 과거 우리 문단을 풍미(風靡)했던 원로 대가들의 육필을 대하는 감회는 특별하였다. 오랜 세월을 보존하는 동안 원고지는 퇴색되고 훼손된 글자도 없지 않아 있었으나 모두 개성 있는 필체 속에 작가로서의 자존심과 치열한 정신세계, 그리고 따뜻한 인간적인 훈기가 숨쉬고 있는 것 같았다.

글 쓰는 사람이 귀하게 대접받던 시절, 원고지는 문필인들의 전유물이었으며 그 자체가 지성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었다. 원고지는 그냥 종이가 아니었다. 시대를 이끌어가는 위대한 정신도, 독자들의 가슴을 뒤흔드는 불후의 명작도 원고지 위에서 탄생하였던 것이다. 원고지 앞에서 고뇌하는 작가의 모습은 심오하고 숭고해 보인다.

‘의사 지바고’의 남자 주인공은 시인이었다.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절망적인 위기 상황에서도 그는 시를 썼다. 온 세상이 흰 눈으로 덮혀 있고, 북극의 추위가 펜 잡은 손을 입김으로 녹여야 하는 외롭고 추운 밤, 문 밖에서 울부짖는 늑대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그는 하얀 백지 위에 시를 쓰고 있었다. 모든 의식을 한 줄의 시작을 위해 몰두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그 유명한 명작 속에서 오로지 그 장면만이 깊게 각인되어 빈 원고지 앞에 앉을 때마다 정신을 가다듬게 한다.

백설보다 눈부셨던 ‘의사 지바고’의 하얀 백지와 칸칸이 무엇인가를 쓰면서 채워가는 원고지, 나는 어릴 때부터 종이를 좋아했고 원고지에 글씨 쓰기를 좋아하였다. 글 쓰기를 좋아해서 원고지를 쓰게 된 것이 아니라 원고지를 좋아하다 보니까 글을 쓰게 된 것 같다.

내가 원고지를 처음 본 것은 일제 말, 일본 병사들에게 위문 편지를 쓸 때였다. 몇몇 사람에게 원고지를 나눠 주면서 편지를 쓰게 하였다. 처음 보는 종이였다. 칸칸이 줄이 쳐지고 사이사이 빈 공간이 있어서 공책의 줄하고 달랐다. 선생님은 한 칸에 한 글자씩 쓰고 띄어쓰기를 정확히 하라고 일러 주었다. 빈 칸을 한 자 한 자 메꾸어 가는 것이 재미있었고, 다 쓰고 나서 보면 같은 말인데도 무엇인가 달라 보였다. 원고지가 어떤 사람들이 쓰는 것인가를 알게 된 것은 한참 더 자란 후였다.

내게 있어서 원고지는 항상 귀중하고 특별한 종이였다. 글을 쓰지 않으면서도 자주 사서 모았다. 사는 것만으로도 즐거웠고, 내 곁에 푸짐하게 쌓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흐믓했다. 오늘도 많은 작가들이 원고지와 씨름하면서 창작에 몰두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쩐지 내가 그런 세계에 가까이 접근해 있는 것 같아 위로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시대의 조류는 어쩔 수 없어서 원고지가 없어질 날이 올지도 모른다. 종이 대신 컴퓨터 디스켓이 서적의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미 백과사전 등의 사전류는 책보다 디스켓 판매가 더 많다고 한다. 컴퓨터를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은 문맹이나 다름없이 될 것 같다.

운전을 못해도, 신식 기계의 작동을 못해도 시대에 뒤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데, 컴퓨터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원고지가 차츰 뒤안길로 물러서게 된다면… 정든 물건을 잃었을 때처럼 허전할 것 같다.

“새 시대에는 새 노래”라는 러시아 속담대로 빨리 컴퓨터를 배우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일에 도전을 모색하기엔 건강도 의욕도 따라 주지 않는다. 또 오랜 습성대로 원고지에 써야 생각이 정돈되고 글이 써진다. 이 습관을 바꾸기도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다행히 주변의 몇몇 분이 끝까지 원고지에 쓰겠다고 해서 든든하다.

아마 나도 그렇게 될 것이다. 어느 때고 시대를 앞서 가는 사람과 뒤쳐져 가는 사람이 공존하게 마련이니까 갈등하지 않겠다고 다짐해 본다.

요즘도 나는 답답하고 우울한 기분일 때 시내 대형 서점으로 원고지를 사러 간다. 컴퓨터 용지에 밀려 점점 한 옆으로 밀려나 있다. 권좌에서 떠밀린 폐왕처럼 측은한 생각이 든다. 여기에 서서 시대의 변천을 다시 한 번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원고지는 아마도 20세기의 유물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