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결혼한 사람

                                                                                                     박영자

 세계가 하나라는 말은 사람만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충청남도 천리포 수목원에는 19만 평 대지에 세계 각국의 식물 6,500종이 한곳에 모여 나무의 천국을 이루며 자라고 있다.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다양한 토질의 환경이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식물을 수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목련과에 속하는 나무 한 종류만도 450종이 넘으며, 감탕나무과는 370종이나 된다. 목련꽃으로는 백목련과 자목련 두 가지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던 나는 한 종류의 나무가 그토록 많은 품종이 있다는 것이 신비스럽기까지 하였다.

수필산책 문우회에서 가는 수목원 방문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몇 년 전에 제주도 식물원에 다녀와서 느낀 것은, 땅을 일군 주인공은 나무를 닮았다는 것과 뿌린 만큼 거둔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생각은 이곳 수목원에서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이곳은 다르게 느껴졌다. 그것은 희소 식물이나 멸종 위기의 식물들을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배양 분류하여 소스(source)가 분명한 품종은 유전자 보존을 철저히 검토 보존하여 자연생태의 복원과 자생지 복원으로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있었다.

초가 지붕을 닮게 지어놓은 수목원 사무실 앞에 버스가 닿자, 40여 회원들의 시선은 물가에 혼자 서 있는 미국인 노인의 평화스러운 모습에 집중되었다. 버스 끝자락에 앉아 평소에는 말이 없던 ㅂ이 전에 없이 소리를 높혀 말했다. 이곳에 사는 저 노인은 행복할 것이라고. 나무처럼 선하게 보인다고. 그러면서 이곳 원장님인 것 같다고. 멀리 있어도 인품의 향기가 전해지는 것일까 반신반의하던 ㅂ의 말은 적중했다.

우리를 안내해 주는 직원 뒤를 따라 식물원을 들어섰다. 나무를 위해 사람이 다니는 길은 좁게 만들어져 있어 어린 시절 오솔길을 걷는 듯했다. 안내원은 어린 싹이 새 순을 틔우니 길 밖의 선은 밟지 말아 달라고 당부를 하였다. 길 좌우의 나무와 나무 사이는 여유를 두어 땅에 닿는 가지 하나도 나무의 원형 그대로 두어 나무를 보는 마음도 여유롭고 편안하였다. 독일가문피(Picea abies Invensa) 나무는 위를 향해 크는 나무와는 달리 아래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자란다. 그 모습이 벌을 서고 있는 어른을 닮아 보였다. 우리는 너무 겸손해서 오만해 보이는 나무라고 했다. 연못가에 서 있는 낙우송(落羽松)은 숨을 쉬기 위해 연못가에 뿌리를 드러내고 있다. 이곳에서 늘상 보아오던 벚꽃나무도 다르게 보여 이름을 물어 보게 된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식물원이 된다는 안내자의 말을 들으며 내 집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긴 듯한 심정이 되었다. 그것은 우리 나라를 제2의 조국으로 삼고 귀화한 민병갈(閔丙渴;Gaul Fenris Nillen) 씨의 고향이 미국이어서가 아니다.

가난한 갯마을을 일구어 세계 각국의 특이 식물을 한곳에 배양하는 일은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그보다 나는 민병갈 씨가 서양인으로 한국인도 잊혀져 가고 있는 정서와 문화를 이어가고 있는 동양적 인품에 가슴 벅찬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근엄하면서도 온화하고 천진함마저 드리운 그는 옛 우리의 아버지, 그 아버지를 닮아 보였다. 한국에서의 삶도 우연이라기보다 필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이 패망하기 일 년 전, 미군 장교로 일본군 포로들을 신문할 때 부산에서 끌려온 한국인 정신대원의 겁에 질려 있는 표정을 보고 차라리 저토록 짓눌린 한국을 도우려 자원하였다고 한다. 민병갈 씨 자신의 말대로 한국은 전생에 인연이 있었던 듯하다고 말하는 그는 효도 지극하였다. 안동 수몰지에서 한옥을 이곳으로 옮겨와 어머니를 위해 한옥집을 지어 목련집이라 불렀다. 집 아래로 봄이면 목련이 피고, 그 아래로 펼쳐진 바다, 102세까지 이곳에서 살다 자식 품에서 떠난 그의 어머님은 얼마나 다복했을까싶다.

화학을 전공한 민병갈 씨는 처음부터 식물원을 시작할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니었다. 바다가 좋아 주말이면 찾았던 천리포 마을에서 한 노인이 찾아와 낭새섬(닭섬이라고도 부른다)이 마주 보이는 언덕의 6,000평을 구입해 줄 것을 수차례 부탁하자 그의 청을 거절할 수가 없어 시작한 일이 오늘의 수목원이 되었다.

지난 식목일 날 민병갈 씨를 찾아온 기자의 인터뷰 질문은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이기도 하였다. 평생 독신을 지키시는데 후손도 없이 외롭지 않느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수목원과 결혼했으니 나를 독신으로 보면 안 되죠, 내 자손은 수목원에 자라는 나무와 풀들입니다. 내가 죽은 뒤에도 내 분신과 같은 나무들은 수백 년 더 살겠지요. 나는 그들이 살아갈 생명의 토양이 한치도 줄지 않게 내 무덤을 만들지 말도록 유언하고, 제 시신은 나무들의 거름이 되게 할 것입니다.”

민병갈 씨를 보며 나는 매화를 아내로, 학을 자식으로 삼고 일생을 독신으로 살다간 중국 북송 시대의 시인 임포를 떠올렸다.

50년 전 어린 나무를 심고 아름드리 나무를 바라보는 민병갈 씨 눈은 아들과 함께 늙어가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박영자

수필공원으로 등단(94년). 송현 수필 회장.